깃발은 올렸지만 앞날이 캄캄하네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8.06.2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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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국가 된 코소보, 발칸 반도 화약고 되나

ⓒAP연합

코소보의 헌법이 6월15일 발효되었다. 지난 2월17일 독립을 선포한 지 4개월, 유엔의 관할 보호를 받은 지 9년 만이다. 이로써 1991년 유고슬라비아 분할과 함께 발칸반도의 ‘고아’로 전전하던 코소보는 6백여 회의 전쟁과 5백년에 걸친 유혈 투쟁 끝에 독립과 헌법을 보유한 정상 국가의 조건을 갖추었다. 그러나 앞으로 유엔 대신 누가 코소보를 관리하느냐 하는 문제로 벌써부터 갈등 조짐이 보인다. 또 다른 발칸 위기가 생겨나리라는 우려도 팽배하다. 헌법의 골자는 유엔의 코소보 관할권을 다수의 알바니아계에게 이양하는 것이다. 유엔은 알바니아계에 대한 밀로세비치 정권의 인종 청소를 종식한 1999년부터 코소보를 관장해왔다.

파트미르 세지우 대통령은 수도 프리슈티나에서 거행된 헌법 선포식에서 새 헌법을 ‘고난과 희생을 딛고 얻은 역사적 문서’라고 찬양했다. 그러나 그는 다가올 분쟁을 예감한 듯 식을 조촐하게 거행하고 서둘러 끝냈다. 한 민족이 독립을 선포하고 헌법을 발효했다는 것은 경사이자 축복이다. 그런데도 코소보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 인구 10만명이 조금 넘는 세르비아계가 2백만명인 알바니아계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종족은 각각 별도의 생활권을 이루며 원수처럼 살고 있다. 세르비아는 알바니아에 포위된 육지 속의 고도 같은 격리 지역에서 살면서 여러 가지 차별을 받다 보니 알바니아인들을 곱게 볼 수가 없다. 유엔이 그동안 이들 사이에 완충 지역을 만들어 간신히 평화를 유지해왔으나 수시로 충돌이 일어났다. 코소보는 지난 2월 미국과 유렵연합(EU)의 지지를 받아 독립했다. 그 후 약 40여 개 국가가 독립을 승인했으나 세르비아와 러시아는 코소보의 독립에 한사코 반대하고 있다. 이유는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한 유엔 결의가 안보리 승인을 거치지 않아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독립 이후 코소보 누가 관리하나가 고민거리

서방의 입양 고아 신세가 된 가난한 코소보는 1만6천명 나토군의 보호를 받고 있다. 향후 문제는 어떤 국제기구가 코소보를 보호하느냐 하는 것이다. 헌법은 EU가 유엔의 역할을 넘겨받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세르비아와 러시아는 불법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이런 장애를 극복하고 코소보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EU와 미국의 숙제다.

EU는 2천2백명의 감시군을 파견하려 했으나 세르비아와 러시아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유엔은 할 수 없이 임시로 코소보를 관할하면서 EU 군대의 진입 기회를 노리고 있다. 국제위기관리그룹의 코소보 지사장 알렉스 앤더슨은 이 엉거주춤한 상황을 ‘레임덕의 표본’이라고 말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경찰·사법 제도는 물론 독립과 민주주의 자체가 붕괴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근본 문제는 세르비아가 알바니아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일개 성이라는 것이 세르비아측의 일관된 주장이다. 헌법이 발효된 날 분단 도시 미트로비차에서는 정체불명의 괴한이 경찰서에 총을 쏘았다. 어느 사원에는 세르비아 국기가 내걸리기도 했다. EU의 코소보 특사 피터 페이스는 10월까지 EU 감시단이 파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때까지의 과도기는 유엔이 관할권을 행사한다. 하지만 모든 과정은 세르비아의 협조 여부에 달려 있다.

친 서방적인 보리스 타디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최근 총선 이후 친 EU 성격의 연립정부 구성을 시도했다. 그의 당은 총선에서 과반수 획득에 실패했다. 그는 세르비아의 협력 없이 코소보의 미래는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새 헌법의 기능을 위태롭게 하는 움직임은 벌써 나타났다. 세르비아의 코소보 담당 각료는 세르비아가 지배하는 북부에 별도의 의회를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코소보는 둘로 갈라진다. 격리 지역에 사는 세르비아 주민들은 EU나 새 헌법이나 자신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새 헌법이 일부 사람들에게는 행복일지 모르나 전기도 수도도 없는 빈민굴에서 사는 우리에게는 달라질 것이 없다”라고 냉소를 보냈다.

ⓒEPA


세르비아 “우리의 협력 없이 코소보 미래 없다”
코소보는 또 하나의 역사적 고비를 넘었다. 어쩌면 이 나라의 미래는 지나온 과거만큼 기구할 것이다.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이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했을 때 합스부르크 왕조, 러시아와 오토만 제국의 멸망을 예견한 사람은 없었다. 지금 세르비아는 EU에 도전하고 있다. 이 도전의 결과가 파란만장한 과거를 재현할 수도 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은 대부분의 세르비아인들이 EU 가입을 원함에도 세르비아가 하는 행위는 EU의 희망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미국과 27개 EU 회원국 중 20개국 등 41개국은 세르비아의 입장과는 달리 코소보를 인정했다. 하지만 러시아, 브라질, 중국, 인도 같은 대국들의 경우 코소보의 독립 승인을 꺼리고 있다. 스페인과 이집트 그리고 대부분의 무슬림 국가들도 코소보를 거부한다. AP 통신은 이 미묘한 대치 상황이 발칸의 냉전을 야기할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코소보는 말로만 독립을 했을 뿐 실제로는 이미 분열되었다. 세르비아는 북부 미트로비차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유엔과 EU가 불법으로 간주하는 선거까지 치렀다. 결과적으로 코소보는 알바니아와 세르비아로만 분열된 것이 아니라 유엔 관할 지역과 비관할 지역으로도 갈라졌다. EU의 한 외교관은 유엔이나 EU의 코소보 관할 작전은 체면치레에 불과할 뿐 EU의 구상은 사실상 무산되었다고 실토했다.

알바니아인들은 왜 코소보 독립에 반대하는가? 그들에게 코소보는 역사적 고향이자 자존심의 상징이다. 1999년 나토의 유고 공습 때 1만명의 알바니아인들이 사망한 이후 다수의 알바니아인들과 소수의 세르비아인들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둔 북부 지역에서 서로 등을 돌리고 살아왔다. 코소보는 이때부터 사실상 두 개의 국가가 된 셈이다.

코소보를 잃은 세르비아인들은 어머니를 잃은 아이처럼 슬퍼한다. 분노와 함께 배신감마저 느낀다. 지난 2월 독립 선포 당시에는 폭동이 일어나고 미국 대사관을 비롯해 외국 대사관 대여섯 곳에 불까지 질렀다. 세르비아 전역이 증오로 들끓었다. 코소보의 독립을 저지하려는 세르비아인의 결의가 마지막 발작으로 끝날지 발칸 반도를 뒤흔들 대지진의 전조가 될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두 인종 간 증오가 너무 뿌리 깊고 5백년의 역사가 피로 얼룩졌기 때문이다. 슬로보단 밀로로세비치의 독재를 타도하기 위해 함께 손잡고 거리를 누볐던 어제의 동지는 어느새 원수로 변했다.

유혈 분규의 씨를 부린 사람은 밀로세비치다. 그는 인종 청소라는 이름으로 알바니아인들을 학살함으로써 세르비아가 코소보를 지배할 수 있는 도덕적 법적 근거를 상실했다. 이것이 알바니아인들의 인식이다. 하지만 코소보 독립을 반기는 워싱턴과 브뤼셀의 정책 분석가들은 코소보에 대한 세르비아의 끈끈한 인연을 과소 평가한 측면이 있다. 코소보의 독립은 1991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와 함께 유고슬라비아가 분할된 이후 발생한 일련의 독립 분쟁 가운데 최악의 사건이다. 산산조각 갈라지는 유고 연방을 속절없이 바라보던 몬테네그로도 2006년 세르비아와의 유대를 마감했다. 밀로세비치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을 때만 해도 세르비아는 희망에 부풀었다.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언젠가는 EU에도 가입해 잘사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코소보의 독립은 모든 기대를 앗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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