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대통령’ 10%가 만들라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8.07.01 11: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 앞두고 투표율 저조 우려 조직 선거 되고 인지도 높은 후보 유리할 수도쓴소리
지난 6월24일 오후 서울광장. 어김없이 촛불의 행진은 계속되었다. 이날 촛불문화제는 네 번째 맞은 의제별 집회로 ‘공교육 정상화’를 주제로 한 토론이 펼쳐졌다. 교육 문제는 중·고생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게 한 ‘배후’ 중 하나다. 이명박 정부의 ‘4·15 교육 자율화’ 조치에 대해 이들은 ‘미친 교육’이라는 손 팻말로 응답했다.

토론회에서는 의제가 교육인 때문인지 교육감 선거를 알리는 홍보물이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바로 서울시 교육감 선거다. 한 주부는 “시민들이 직접 교육감을 뽑는 7월30일, 여기 있는 촛불의 힘으로 제대로 된 사람을 뽑아달라”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반응은 신통치 않은 것 같았다. 지역마다 ‘교육 대통령’으로 여겨지는 교육감 선거 자체가 교육의 수요자들에게 별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돈 선거’ ‘조직 선거’ 논란이 끊이지 않은 채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는 교육감 선거의 실상은 어떠한가.

ⓒ시사저널 임영무
부산 15.3%, 충북 17.2%에 그쳐…주민 직선제 취지 무색

2007년부터 관련법이 바뀌어 각 시·도별 교육감 선거가 주민 직선제로 치러지고 있지만 몇몇 지역에서 펼쳐진 선거 결과는 암담하다는 생각부터 들게 만든다. 투표율부터 그렇다. 2007년 2월14일 치러진 부산 교육감 선거의 최종 투표율은 15.3%로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설동근 교육감이 재선으로 당선되었는데 그의 득표율은 33.8%로 ‘부산 시민이 뽑은 교육감’이라는 대표성에 회의가 들게 한다.

이같은 상황은 1년 반이 흘렀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6월25일 실시된 충북 교육감 선거는 그야말로 ‘요식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포상금까지 내걸며 투표를 독려했지만, 최종 투표율은 17.2%에 머물렀다. 특히 현 교육감 한 명만이 후보로 나와 ‘왜 선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마저 갖게 한다. 주민 직선제의 취지가 무색하다.

지난해 12월19일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충북·울산·경남·제주 교육감 선거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낳았다.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와 기호가 같은 2번이 모두 당선된 것이다. 당시 다른 후보들은 예상이라도 한 듯 교육 정책을 알리기에 앞서 ‘기호와 정당은 무관하다’라는 홍보전을 펼쳐야 했다.

오는 7월30일 치러질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저조한 투표율이다. ‘교육감을 주민들이 직접 뽑는지 모르는 교사도 적지 않다’라는 말이 나올 만큼 교육감 선거에 대한 인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형편이다. 서울시 선관위에서 주민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공모전 등 행사를 실시하고 시내버스 안내 방송 등을 통해 홍보를 펼치고 있지만 아직은 반응이 썰렁하다. 본격적인 선거운동 기간이 여름휴가 기간과 맞물린 데다 투표일이 휴일이 아니라는 점은 우려를 현실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선거에 뛰어든 예비후보들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예비후보는 김성동 한국교육문화포럼 회장, 이규석 중앙대 교육대학원 교육학과 겸임교수, 이인규 아름다운학교 운동본부 상임대표, 박장옥 한국청소년연합 자문위원, 이영만 호원대 겸임교수, 주경복 건국대 교수, 장희철 행정사 사무소 대표 등 7명이다. 여기에 공정택 현 교육감이 7월 초 선거사무실을 열고 재선 도전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지역에 비해 예비후보가 많고 후보 면면이 갖는 사회적 위상도 높은 편이라 선거전이 불붙을 경우 치열한 경합이 예상된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받아들이는 우려는 앞서 실시된 교육감 선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예비후보측은 “투표율이 낮을 경우 조직 선거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또 인지도가 높은 후보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교육감 선거가 주민 직선제로 바뀐 이유 중 하나가 조직 선거 병폐 때문이다.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실시되었던 학교운영위원회 전원 투표에 의한 교육감 선출 방식은 후보의 조직력이나 자금 동원력에 의해 당락이 좌우되었다. 35차례 치러진 선거에서 총 2백53건의 위법 행위가 적발되기도 했다. 당선자가 구속되는 사례도 여럿 있었다. 2005년 김석기 울산 교육감이 사전 선거운동 혐의로 취임 하루 만에 구속되었고, 2004년 대전 교육감 선거에서는 오광록 당선자가 당선 무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시사저널 황문성
주민 직선제로 바뀌었지만 낮은 투표율이 예상될 경우 결국에는 조직과 이를 움직이기 위한 자금이 선거를 좌지우지할 수밖에 없다. 이는 현 교육감에게 유리한 선거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다른 예비후보측은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정책의 허와 실을 알려서 올바른 후보를 선택하도록 해야 하는데 실제 선거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선거자금 문제는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광역 단체장 선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치러지는 만큼 선거에 들어가는 예산이 적지 않다. 서울의 경우 총 3백32억원을 선거 관리 비용으로 배정받은 상태다. 2009년 4월9일 있을 경기 교육감 선거에는 총 4백억원의 선거 관리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잇따르는 이유다.

하지만 교육감이 갖는 막대한 권한을 감안한다면 올바른 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기회비용으로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선거 준비에 한창인 한 예비후보측은 “교육감 선거는 국가의 미래를 뽑는 중요한 선거다. 많은 돈이 든다고 하지만 교육 재정으로 들어가는 돈에 비하면 큰돈이라고 볼 수도 없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서울시 교육감이 다루는 예산은 6조1천억원대에 이른다. 웬만한 시·도 예산보다 많다.

여기에다 10만명의 교직원 인사권도 갖고 있어 교육감은 그야말로 ‘교육 대통령’이나 다름없다. 고교 신입생 배정 방식, 외국어고 설치 여부, 0교시 수업 실시 여부 등 각종 교육 정책에 대한 결정 권한도 교육감이 쥐고 있다. 누가 교육감이 되느냐에 따라 논란을 거듭해온 교육 현안이 어떻게 처리될지가 판가름 나는 셈이다.
후보 자격을 놓고도 뒷말이 나온다. 관련법에 따르면 ‘후보자 등록 신청일부터 과거 2년 동안 정당의 당원이 아닌 자’여야 한다. 교육이 정치에 휘둘리지 않도록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대부분의 후보가 사실상 정치적 성향을 지닌 상황에서 이같은 자격 조건은 형식적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선거 자금 한도액 34억원…“그런 큰돈 가진 후보 몇이나 될까”

이는 선거 자금과도 맞닿아 있다. 서울의 경우 후보 개인이 쓸 수 있는 선거자금 한도액이 34억6천만원이다. 기본액 4억원에 인구 수 1천20만명을 곱해 나온 액수다. 정치자금법에 따라 선거 자금은 후보 개인 재산에서만 조달해야 한다. 후원회를 둘 수도 없고 정당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도 없다.

문제는 이만한 큰돈을 재산으로 가진 후보가 많지 않다는 데 있다. 대부분 교육자 출신인 이들이 조달하기에 턱없이 높은 액수라는 것이다. 한 예비후보측은 “평생을 교육자로 살아온 분이 어떻게 그런 돈을 갖고 있나. 아마 다른 후보들 처지도 마찬가지일 거다. 후원금은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교육만 하신 분들이 그런 인적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대다수 예비후보측은 선거 기간 이전이라도 TV 토론회 등을 통해 정책 대결이 펼쳐질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교육감 선거가 언제 있다’라는 식의 홍보보다 유권자인 주민들이 후보의 자질을 검증하고 정책의 차이를 살필 수 있도록 정보 제공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수 선거컨설턴트는 “교육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선거가 지금처럼 치러져서는 곤란하다. 후보의 성향이 어떠한지 또 어떤 교육 정책을 구상하고 있는지 등을 유권자에게 알리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