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매혹시킨 '프랑스의 부드러운 힘'
  • 파리.최정민 통신원 ()
  • 승인 2008.07.0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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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코지 대통령 부인 브루니, 잇단 국외 순방에서 큰 인기

ⓒ로이터
"사르코지는 카를라 브루니의 수행원인가?” 프랑스의 좌파 주간지 <마리안>의 6월25일자 기사 제목이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이 지난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공식 방문한 것을 두고 현지 언론이 브루니의 일거수일투족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나온 기사다. 실제로 현지에서는 파파라치들과 사진 기자들이 브루니에게 몰려들어 사르코지의 정치적 발언들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Sous sa charme!(그녀의 매력에 빠졌다!)” 현재 서방 언론들의 반응이다. 이미 지난해 두 연인의 만남 초기부터 거의 모든 유럽 언론들은 이들의 모습을 다루었다.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 록스타 믹 재거 전 애인과 데이트’-영국의 데일리메일. ‘사르코지 커플 네티즌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다’-스위스 일간지 제네바 트리뷴. ‘사르코지가 나에게 말했어요’ -벨기에 일간지 르 스와. ‘가수 캬를라, 사르코지의 마음의 여인인가?’-스페인 엘 문도. ‘사르코지-브루니, 새로운 커플’-이탈리아 라 스탐파.

‘사르코지 세실리아를 잊다-새로운 불꽃 캬를라 브루니’-이탈리아 라 레퓌블리까.

유럽 언론이 쏟아낸 기사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과는 달리 이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사르코지가 이혼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새로운 연인을 만나는 모습을 프랑스 여성들이 곱게 보아줄 리도 만무했다. 한 여성 잡지는 “적어도 이혼 후 예의상 기본적인 애도 기간을 갖지 않은 것을 두고 많은 여성 지지자들이 이탈했을 것이다”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실제로 둘의 관계가 심하게 노출된 것이 사르코지의 지지율이 추락한 한 원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언론의 텃세는 브루니 쪽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과거 남성 편력이 줄기차게 도마에 올랐으며, 누드 사진 경매가 화제가 되는 등 ‘영부인으로서 합당한가?’를 두고 여론이 분분했다. 급기야 사르코지의 어머니가 아들의 재혼을 탐탁하지 않게 생각한다는 언론의 보도가 이어지며, 이들의 미래에 빨간불이 켜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적어도 이혼한 독신남이 국가 수반으로 지낸다는 것이 공식 행사에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데 공감대가 있었다. 모든 것은 일단 멋있고 보아야 하는 프랑스의 정서상 아름다운 영부인이 나쁠 것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 커플에 대한 곱지만은 않은 시선이 결정적으로 반전될 수 있었던 것은 영국 방문이었다.

전통적으로 영국 국빈 방문의 경우 행사의 의전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대대로 프랑스 영부인들이 영국을 방문할 때 가장 관심을 모았던 것은 ‘영부인이 어떻게 여왕에게 인사를 하는 것인가’였다. 여왕 앞에서 여성들은 무릎을 살짝 굽혀 인사하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늘 그렇지만은 않았다. 지난 사회당 정부의 프랑스와 미테랑 대통쓴소리 곧은소리령 부인이었던 다니엘 미테랑 여사는 좌파 운동가답게 무릎을 굽히지 않고 당당히 악수를 청했고, 지난 대통령 시라크의 부인인 베르나데트 여사는 프랑스 귀족 출신답게 무릎을 굽혀 인사했다.

따라서 이번 공식 방문을 두고 개방적인 것으로 보이는 카를라 브루니가 어떻게 행동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국제적 시선을 의식한 탓일까? 회색 톤의 깔끔한 코트와 모자를 쓰고 등장한 브루니는 무릎을 살짝 굽히며 인사했다. 프랑스의 언론인이며 왕실 전문가인 스테판 베른은 당시의 방문을 생중계하며 “완벽하고 능숙하게 의식을 마쳤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당시 영국 언론들도 브루니의 의상 및 움직임을 세세하게 보도했으며, 사르코지는 기자회견장에서 영부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준 아내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EPA

모델ᆞ가수 출신으로 아름다움과 지적인 이미지, 단호함이 잘 조화


영국 방문 이후 이어진 국외 순방에서 브루니는 사르코지 옆에서 부드러운 이미지와 화술로 주목되었다. 적어도 영어는 사르코지보다 나았던 브루니는 통역을 맡기도 했다. 이를 두고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프랑스의 부드러운 힘-카를라 브루니’라고 논평했다. 브루니의 이러한 이미지 반전이 성공한 것은 무엇보다 그녀가 머리가 빈 연예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지적인 것을 목숨만큼 소중히 생각하는 프랑스의 풍토에서는 미인이고 섹시하며 S라인의 몸매를 갖추었어도,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지 못하면 한낱 정치 풍자나 코미디 풍자의 소재로 전락하는 것이 다반사다. 그것은 미스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06년 미스 프랑스였던 알랙상드라 로젠필드의 경우 미인임에도 약간은 어눌한 말투와 한 발짝씩 늦는 반응 때문에 숱하게 코미디언들의 놀림감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브루니의 경우는 달랐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톱 모델로 풍미했던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는 ‘아름다움과 지적인 이미지, 차갑고 단호함의 가공할 만한 조화’로 요약된다. 당시 패션업계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이렇게 증언한다. “그녀의 취미는 사람들을 집에 초대해 시를 읽어줄 것을 청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녀를 지탱해주는 힘이었는지 모른다. 당시 대개의 모델들이 물 위에 흔들리는 병마개(코르크 마개)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가는 우아한 유람선이었다.”

그녀의 음반 작업 또한, 뛰어난 가수는 아니지만, 적어도 정신 나간 가수는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지난 앨범의 타이틀곡이자 히트곡인 <누군가 나에게 말해요>의 경우 직접 기타를 치며 읊조리듯 부르는 노래는 마치 1970년대의 존 바에즈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이 앨범은 2백만장의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그녀가 과거의 연인이었던 믹 재거와의 관계를 “자랑스럽다”라고 말하거나 에릭 클랩튼과의 관계 또한 당당히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그녀의 남성 편력의 대상이기 이전에 음악적인 면에서 실질적인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브루니가 지난 대선에서 사르코지를 찍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미 그녀의 주변이나 주변 인사들의 증언을 둘러보아도 그녀는 분명 좌파다. 지난 달 이민자들 관리를 위해 유전자를 검사하기로 한 법안이 상정되자 이를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는데, 브루니는 이 시위에 동참했다. 적어도 남편의 정부에 반기를 든 셈이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사르코지의 전처인 세실리아가 사르코지의 정치적 선택이나 인사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면(엘리제궁의 대변인인 다비드 마티뇽도 세실리아계 인사다) 브루니는 그러한 정치적 영향에 대해 분명히 선을 그었다. 브루니는 최근 좌파 일간지인 리베라시옹과의 인터뷰에서 “이민 문제요? 그것은 너무 복잡해요. 난 그런 문제를 다룰 만한 능력이 없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적어도 프랑스 국민에게 치맛바람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대목이다.

이제 사르코지는 오는 7월부터 순번제인 유럽연합의 의장직을 수행한다. 물론 유럽연합 정상회담의 경우 국가 수반들만이 주로 참석하기에 브루니를 동반하는 자리는 그렇게 많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브루니의 행보로 미루어 적어도 인기를 떨어뜨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브루니가 이미 유럽을 매혹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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