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강경 수술은 로봇이 더 잘해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8.07.0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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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암센터, 원격 수술로 돼지 담낭 제거해 세계 최소형 복강경 수술 로봇, 한국이 개발

지난 5월3일 돼지 한 마리가 국립암센터 수술대에 놓였다. 곧이어 돼지의 복부를 절개하지 않은 채 몇 개의 구멍을 뚫고 담낭을 제거하는 복강경 수술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집도의는 보이지 않았다. 로봇팔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수술을 끝냈다. 수술을 진행한 김영우 국립암센터 위암센터장은 수술대에서 무려 40km나 떨어진 서울 코엑스의 로봇 콘솔(consol)에서 로봇을 조정하고 있었다. 돼지의 담낭은 원격 수술로 제거된 것이다.

이날 시연은 의학계에서 획기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우선 환자의 복부를 절개하지 않은 채 몇 개의 구멍만 뚫어 의료기기를 삽입하고 수술하는 복강경 수술을 로봇으로 한다는 점이 주목되었다. 복강경 수술은 이미 여러 암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대장암 가운데 결장암을 수술할 때 복강경 수술을 한다. 보통 15~20cm 복부를 절개하는데 복강경 수술은 1cm 이하 구멍을 몇 개만 뚫으면 치료가 가능하다. 절개 부위가 적어 수술 후 회복이 빠르고 흉터도 적게 남는다.

복강경 수술에 로봇을 이용하면 원격 수술이 가능하다. 바로 코앞에 있는 환자를 수술하는 것이나 지구 반대편에 있는 환자를 수술하는 것이나 큰 차이가 없다. 의사가 로봇을 작동하는 콘솔과 실제로 환자를 수술하는 로봇은 인터넷처럼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센터장은 “복강경 수술에 로봇을 이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원격 수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방에 있는 암환자가 특정 의사를 찾아 서울까지 와야 하는 불편함을 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위급한 환자를 이송하다 생명을 잃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이날 수술에서는 기존 로봇보다 10분의 1 정도로 작은 세계 최소형 복강경 수술 로봇을 우리가 개발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이 로봇은 이전 로봇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기술을 선보인 것이다.

로봇팔이 자유롭게 움직여 구부러진 장기도 수술 가능해

무엇보다 로봇팔에 변화가 생겼다. 기존 로봇팔은 구부러지지 않아 젓가락 수술(chopstick operation) 또는 바보 수술(dummy operation)이라고 불렸다. 이번에 개발된 로봇팔은 5개의 관절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김센터장은 “로봇팔이 자유롭게 움직이므로 결장암과 같이 구부러진 장기 부위도 정밀하게 수술할 수 있게 되었다. 약 3~5년 후 이 로봇이 상용화되면 암은 물론 심장 판막 수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의사는 환부를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영상을 보고 로봇을 조종해 수술한다. 지금까지 영상은 2차원이었다. 문제는 의사가 수술 부위의 깊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여러 번 수술을 통해 의사가 깊이를 감으로 익힐 수밖에 없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3차원 영상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수술 로봇은 단순한 의료 장비라기보다 의료 정보 기기다. 시뮬레이션 수술이 가능하므로 환자를 수술하기 전에 미리 모의 수술을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암 수술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손으로 수술할 경우 의사가 장기를 당기는 힘을 조절할 수 있지만 로봇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수술이 미숙할 경우에는 자칫 장기를 손상시킬 수도 있다. 현재 느낌을 전달하는 터치 피드백(touch feedback) 기능을 갖춘 수술 로봇도 개발 중이다. 김센터장은 “물론 로봇으로 수술할 수 없는 암도 있다. 그러나 공간적·시간적 이유로 적절한 수술을 받을 수 없었던 암환자들이 어디에서든지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된 점은 고무적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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