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외교의 중심 에펠탑이 떠받치나
  • 파리.최정민 통신원 ()
  • 승인 2008.07.2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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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코지, ‘지중해연합’ 이끌어 ‘강한’ 프랑스 면모 과시

ⓒEPA

사르코지가 지중해연합의 발족을 성사시킴으로써 외교 역량을 과시하며 ‘강한 프랑스’의 길을 열어놓았다. 사실 사르코지는 티베트 사태를 둘러싸고 중국과 맞서는 등 거침없는 외교 행보를 펼치다 최근 뜻하지 않은 난관에 직면한 바 있다. 오는 8월 프랑스를 방문할 예정인 달라이 라마를 접견하지 말라고 쿵취안 프랑스 주재 중국 대사가 정식으로 요구하고 나온 것이다. 중국 대사의 발언은 일본에서 열린 서방 선진 8개국 정상회담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이 후진타오 중국 주석에게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직후 터져나왔다.

그동안 올림픽 개막 행사에 참석할지 여부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했던 사르코지가 ‘유럽연합 순회 의장국 수장 자격의 방문’이라는 분명한 명분을 앞세워 화해 움직임을 취했음에도 역공을 당한 것이다. 더군다나 거기에 한 술 더 떠 “달라이 라마를 만날 경우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라는 협박에 가까운 주 프랑스 중국 대사의 발언은 프랑스 외교가를 술렁이게 했다. 사르코지는 “내 일정을 짜는 것은 중국 정부가 아니다”라며 단호하게 거부했지만, 프랑스 언론들은 그동안 중국의 인권 문제에 입을 닫고 중국과의 실리 외교에 집착해온 사르코지 정부의 행보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북유럽 국가들까지 참여한 대규모 국제회의

사르코지의 이런 곤혹스러움을 덮어버린 것은 7월13일 파리에서 있은 지중해연합의 발족이었다. 사르코지가 취임 직후부터 제안한 원대한 구상이었으나 숱한 논란을 빚었던 지중해연합이 실제로 결실을 본 것이다. 더구나 이번 정상회담은 그동안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왔던 유럽연합 내부의 국가들을 배제하고 치르기로 했으나 막판에 북유럽 국가들까지 가세하면서 43개국이 참가하는 대규모 국제 회의가 되었다.

회담은 7월13일에 치러졌으며, 장소는 파리 샹젤리제에 위치한 그랑팔레였다. 1897년 만국박람회 행사장으로 세워진 4만㎡의 이 대형 공간은 올림픽 프레스센터를 방불케 하는 국제회의장으로 변모했고, 인접한 샹젤리제 일대의 모든 교통이 전면 통제되었다. 그리고 회담 이튿날인 7월14일, 43개국의 정상들은 샹젤리제 거리에서 치러진 국가 행사인 프랑스 혁명기념일 공식 퍼레이드에 참석했다.

매년 주빈국을 지정해 군대 사열 첫 퍼레이드를 장식하는 관례에 따라 올해는 이번 회담을 성사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유엔이 초청되었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주빈 자격으로 사르코지 대통령의 옆자리에서 퍼레이드를 관람했다. 43개국 정상들이 함께 한 단상의 광경은 프랑스가 국제 외교의 중심에 섰다는 것을 뽐내기에 충분했다. 물론 우아한 정장을 한 대통령 부인 카를라 브루니도 빠지지 않았다. 행사를 생중계한 프랑스 방송은 “이렇게 성대한 프랑스 혁명기념일 퍼레이드는 없었다”라고 평했다. 나딘 모라노 고용부 차관은 “7월14일은 역사적인 날이 되었다. 파리에서 평화가 세워졌으며 그것은 사르코지의 지중해 구상 덕분이다”라고 말했다. 성대한 행사 직후 쿵취안 중국 대사는 카메라를 들이대는 프랑스 방송 기자들에게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화려하게 치러졌으나 그렇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유럽연합 내부의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친밀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으나 회담 이튿날 합의문 발표를 두고 팔레스타인 외무부 장관이 이의를 제기하는 등 불씨가 여전히 남았다. 극도로 긴장 관계에 있는 시리아와 이스라엘을 50cm 간격으로 행사장에 앉히는 데는 성공했으나 두 정상은 눈도 맞추지 않았다.

더구나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참석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 1983년의 베이루트 테러와 레바논의 라피크 알 하리리 전 총리 암살의 배후로 지목되는 시리아 정부의 어떠한 입장이나 사과도 듣지 않은 채 국가 기념식에 참석하게 했다는 것은 프랑스 내부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쟈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 또한 시리아 대통령이 참석하자 이번 행사를 보이콧했다는 후문이다. 시라크 전 대통령은 암살된 레바논의 전 총리인 라피 알 하리리와 각별한 사이로 알려졌으며, 퇴임 후 살고 있는 센 강변의 볼테르 거리에 있는 주택 또한 하리리 총리 가문 소유다.

이런저런 문제에도 이번 지중해연합이 성공작이라는 데에는 대체적으로 이견이 없다. 전체 정상들이 함께한 기념 촬영이 없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일단은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는 자체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프랑스 지역 정치학 연구소의 프레데릭 엔셀 연구원은 “이번 회담으로 당장 이스라엘과 시리아 간에 평화가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중해 주변의 여러 연합체를 하나로 묶는 시도는 앞으로 흥미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비롯해 대량 살상 무기 방지는 물론 지중해연합 국가들의 에너지 및 운송, 학생 교류에 이르기까지 각 방면의 문제를 공동으로 대처한다는 구상은 일단 한발짝 진전되었기 때문이다. 파스칼 모나파스 국제전략문제연구소 소장은 “1995년에 실패한 바르셀로나 조약을 되살렸다는 점에서 의심할 수 없는 사르코지의 성공작이다”라고 평가했다.

시리아 대통령 참석으로 프랑스 내부 반발 일으키기도

통상적으로 프랑스의 외교 의전에서, 국빈 방문의 경우 최소한 6개월 전에 모든 세부 사항과 함께 그 준비가 마무리된다. 일례로 사르코지가 인도를 방문했을 때, 간디 추모공원을 방문하면서 대통령이 신발을 벗어야 하는 경우가 생기자 기자들의 카메라 각도까지 미리 막아놓았을 정도로 치밀했다. 그러니 이번 회담에 사르코지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충분히 짐작이 되는 대목이다. 사르코지는 각국 정상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참석을 요청했다고 한다. 실제로 1년 전까지만 해도 사르코지의 구상이 실현될 것이라고 보는 인사는 거의 없었다.

독일과 유럽연합 국가들은 드러내놓고 불편한 심기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사정이 달라져 2년 주기로 되어 있는 지중해연합 정상회담 개최국의 자리를 놓고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사르코지는 취임 초기부터 일관되게 주장해온 ‘강한 유럽’과 ‘강한 프랑스’라는 구상안을 조금씩 실천에 옮기고 있는 셈이다.

이제 사르코지에게 남은 과제는 제동이 걸린 리스본 조약을 어떻게 반전시키는가에 달려 있다. 지난 7월10일 유럽연합 의회를 방문한 사르코지는 유럽의회 의원들과 열띤 토론을 벌여 강한 인상을 남겼다. 간간이 영부인인 카를라 브루니에 관한 농담까지 섞어가며 토론을 주재한 사르코지를 두고 한스 게르트 푀터링 유럽의회 의장은 “지난 29년간 유럽연합에서 3시간30분 동안 의장이 모든 질문에 답하는, 이렇게 열띤 토론은 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일단 사르코지는 특유의 저돌적이고 치밀한 준비로 주도권을 잡은 셈이며, 그가 앞으로 남아 있는 난제들을 어떻게 대처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까다롭다. 날씨만큼이나 변덕이 심해 외교하기 어려운 상대다. 순진함이 통하지 않는 외교 무대에서는 나름의 방식이다. 9·11 사태가 터지자 3일 만에 외국 수반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정상은 시라크였지만, 이라크 전쟁을 두고 쌍수를 들고 반대한 것도 시라크였다. 사르코지 또한 미국으로 휴가를 가는 등 우애를 과시했지만, 서방 선진국 회담에서 부시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최근 미국·일본 등과 연이어 미숙한 외교 행태를 보이는 이명박 정부도 어쩌면 프랑스의 여우 같고 치밀하며 변덕스런 방식을 한 번 배워보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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