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DJ, ‘뜨거운 포옹’ 할까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8.07.29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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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동계 중심으로 두 전직 대통령 화해 추진 움직임…지역 감정 해소ᆞ민주화운동 복원 기대
▲ 2006년 1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민주화추진협의회 인사들이 모여 광주 5ᆞ18 국립묘지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대병원 특실 12211호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입원해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7월21일 입원해 다음 날 늑막 내부에 혈액이 고이는 ‘혈흉’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김기수 비서실장은 “건강에 다른 이상은 없고 수술도 잘 되었다”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김 전 대통령이 입원한 병실에는 눈에 띄는 난 화분이 하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쾌유를 기원하며 보낸 난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YS)과 김대중 전 대통령(DJ),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숙명의 라이벌인 두 사람이 이제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최근 정가 물밑에서 힘을 얻고 있다. 단순한 관측 차원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향후 흐름이 주목된다. YS로 상징되는 상도동과 DJ로 상징되는 동교동의 화해는 분열했던 한국 민주화 세력의 복원이자 영·호남으로 갈라진 지역 감정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경쟁 의식이 워낙 강해 급진전되기까지는 여전히 변수들이 있다.

그동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변화의 물꼬는 2005년 9월부터 트였다. 이번에는 DJ가 YS에게 난을 보냈지만, 그때는 YS가 DJ에게 전화를 했다. 그해 8월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한 DJ는 폐에 물이 차는 폐부종 증세로 한 달 만에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그러자 정가에 ‘DJ 건강 이상설’이 돌았다. YS가 DJ에게 전화를 한 것이 이때였다. 상도동의 한 관계자는 “쾌유를 기원하며 안부를 묻는 짧은 통화였다”라고 말했다. 동교동의 한 관계자도 “병원에서 퇴원한 직후 YS가 전화를 걸어왔었다”라고 확인했다. 당시 YS가 DJ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은 두 사람의 화해를 바라는 상도동계 인사들의 강권에 따른 것이었다. 사정이 어려울 때 위로 전화를 해 화해로 가는 물꼬를 트자는 주변의 의견을 YS가 받아들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화해’ 분위기는 계속 유지되지 못했다. 건강을 회복한 DJ가 이후 호남 방문길에 나서고 YS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탄생하면서 상도동계를 중심으로 ‘YS와 DJ의 화해’가 다시 힘 있게 거론되고 있다. 그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현실 정치권에 있는 상도동계의 맏형 격인 김무성 의원이다. 그는 “돌아가시기 전에 두 분이 화해하는 것이 지역 감정을 푸는 지름길이다. 두 분이 손잡고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는 것이 내 소원이다”라고 말했다.

김의원의 말은 민주화추진협의회(약칭 민추협)의 최근 움직임과도 맞물려 있다. 김의원은 동교동계인 박광태 광주시장과 함께 민추협 회장을 맡고 있다. 민추협은 지난 7월5일 서울 여의도에서 중구 무교동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유래홍 민추협 사무부총장은 “직선제로 개헌하겠다는 국민에 대한 항복 선언인 6·29 선언을, 민추협은 이곳 무교동에 있던 사무실에서 맞았다. 교통도 편리하고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였던 곳이기 때문에 다시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사무실을 옮겼다”라고 설명했다.

▲ 1998년 2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이 김영삼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측 인사들, 민추협 사무실 개소식에서 공감대 확인

7월7일 있었던 개소식에는 김무성 의원과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상현 전 의원, 김영래·박희부 전 의원 등 100여 명이 몰렸다. 유부총장은 “그날도 동교동 사람들은 상도동에 가서 진언하고, 상도동 사람들은 동교동에 가서 진언해 YS와 DJ가 ‘화합’하는 자리를 만들자는 말들이 오갔다. 연말 민추협 송년회 때 두 분을 모시자는 얘기도 많았다”라고 설명했다. 민추협은 앞으로 매달 한 번씩 모임을 갖고 공감대를 넓혀가기로 했다. 김의원은 “민추협의 제일 중요한 목표가 두 사람이 화해하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물밑 흐름도 이렇고 YS와 DJ측도 화해 필요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둘 다 상대방이 먼저 손을 내밀기를 바랄 뿐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동교동의 한 관계자는 “상도동이 문제이지 우리는 항상 열려 있다”라고 말했다. 상도동의 한 관계자는 “두 사람의 상황이 맞아 떨어지면 가능하지 않겠느냐”라고 내다보았다.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으며 물리적인 나이가 화해를 강제하고 있다는 것 등은 희망적인 관측을 낳는다.

유래홍 민추협 사무부총장은 “두 사람의 화해는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생긴 앙금을 털어내는 것일 뿐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꼭 이루어져야 하고 그렇게 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동국대 정치학과 박명호 교수는 “지역 감정 해소와 민주화 운동 복원 등 의미가 깊을 뿐더러 전직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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