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으로 벼린 칼끝, 세계를 찌른다
  • 기영노 (스포츠 평론가) ()
  • 승인 2008.08.0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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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 펜싱 대표팀, 세대 교체 성공해 2004년 ‘노메달’ 불명예 씻기 기대…대진표ᆞ컨디션 좋으면 메달 ‘우르르
▲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국가대표 선수 공개 훈련에서 남자 펜싱의 최병철 선수(왼쪽)가 공격 연습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펜싱은 한국 올림픽 역사상 가장 큰 이변을 일으켰던 종목이다.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기대하지도 않았던 김영호가 남자 개인 플뢰레에서 금메달을 따낸 일이 그것이다.
펜싱은 세계 상위 랭커들이 토너먼트로 우승을 가리기 때문에 별로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종목이다. 그런데 세계 무대에서 ‘무명’이나 다름없던 김영호가 세계 정상권 선수들을 차례로 꺾고 펜싱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차지한 것이다. 더구나 이상기도 남자 에페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해 대한민국 팀은 펜싱에서 최고의 성적을 올렸었다. 그러나 4년 후에 벌어진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노메달에 그치고 말았다. 세대 교체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국제 대회 출전 경험 쌓아 최상의 전력 자랑

이번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세대 교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국제 대회 출전 경험을 쌓은 선수들의 전력이 4년 전 아테네올림픽에 비해 한 단계 올라섰다.
펜싱은 남자 에페 단체전을 비롯해 남녀 에페, 플뢰레, 사브르 개인전에 모두 10명을 출전시키는데 1차 목표는 색깔을 불문하고 2~3개의 메달을 따내는 것이다. 1차 목표를 이룬 다음에는 시드니올림픽의 쾌거에 이어 8년 만에 금메달을 따려고 한다.

펜싱은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 대다수가 세계 랭킹 10위권 안팎에 자리를 잡고 있어, 당일 대진표와 컨디션에 따라 순위가 뒤바뀌는 경우가 많다.
베이징올림픽에서 가장 기대를 모으고 있는선수는 올 들어 실력이 급상승한 남자 에페의 정진선과 여자 플뢰레 남현희다.

두 선수 모두 메달을 따도 한국이나 국제 펜싱계에서 전혀 이변이 아니라고 말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을 받고 있다. 정진선, 남현희 외에 아테네올림픽에서 16강까지 올랐던 남자 플뢰레의 최병철은 세계 랭킹이 8위까지 올랐다.

최병철은 변칙적인 스타일 때문에 심판 판정에서 불이익을 종종 받는 것이 약점이지만, 거리 감각을 찾으면 누구도 막기 힘든 공격적인 펜싱을 구사해 메달권까지 치고 올라갈 가능성을 갖고 있다.
펜싱에서 여자 사브르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여자 사브르에서는 김금화와 이신미가 투톱 역할을 하고 있다. 김금화와 이신미는 빠른 스피드와 발놀림을 앞세워 메달을 노리고 있는데, 세계 랭킹은 김금화가 14위, 이신미가 9위다.

남자 사브르의 오은석은 순발력과 두뇌 플레이가 좋은 데다 펜싱 선수로서 경기 경험이 많아 이변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있다. 오은석은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개인전 동메달을 따낸 바 있고, 올해 헝가리 부다페스트 그랑프리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최근 세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점이 정진선과 비슷하다.

정진선과 남현희는 메달 따지 못하면 이변

정진선과 김승구, 김원진, 주현승이 함께 나서는 남자 에페 단체전은 8강부터 대진이 시작되어 2차례만 이기면 메달을 딸 수 있다. 전통적인 펜싱 강국인 헝가리,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권 국가의 벽이 워낙 높아 메달권 진입이 만만치 않다.

조희재 올림픽 대표 감독은 “펜싱 올림픽 대표팀은 전반적인 전력이 아테네 때에 비해 한 단계 좋아졌다. 어차피 세계 랭킹 10위권을 오르내리는 수준급 선수들의 실력에는 큰 차이가 없다. 당일 대진표와 컨디션에 따라 메달 개수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조심스러운 전망을 하고 있다.

정진선, 남현희 모두 7월 국제펜싱연맹(FIE) 순위에서 나란히 4위에 올랐다. 베이징올림픽 본선에서도 시드 배정 규정상 4강까지는 자신보다 랭킹이 떨어지는 선수들과 대결하게 되어 있어 메달 획득 가능성이 크다.
정진선은 지난해까지 세계 랭킹 93위에 머물러 있었지만 올해 들어 급격하게 상승세를 보여 한국 남자 에페 역사상 처음으로 5위권 안에 들었다.

정진선의 경우, 올해 쿠웨이트 그랑프리 대회 2위를 시작으로 5차례의 국제 대회 메달을 따낸 무서운 상승세가 올림픽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여자 플뢰레에서는 남현희가 2006년 랭킹 1위를 차지한 적은 있지만 에페에서 한국 선수 가운데 세계 랭킹 5위권 안에 들기는 정진선이 처음이다.

정진선은 한국 선수로는 드물게 먼 거리에서 공격해 들어가는 펜싱을 구사하는데, 1백85cm로 키가 크고 유연성이 좋다. 특히 지난해부터 꾸준히 많은 경기를 치르면서 외국 선수들을 상대해 노련미가 생겼다.
정진선은 올해 FIE 랭킹 1위인 베네수엘라의 실비오 페르난데스와 3위 이탈리아의 마테오 탈리아리올 등을 상대로 각각 1승을 기록한 것을 비롯해 랭킹 상위권 선수 대부분을 상대로 좋은 전적을 거두고 있다.

정진선은 8월10일(일요일) 팀 동료 김승구·김원진과 함께 남자에페 개인전에서 금메달에 도전한다.
남현희는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개인과 단체 2관왕에 오르는 등 한국 펜싱 사상 처음 세계 1위에 올랐다.
이후 줄곧 세계 랭킹 ‘톱 4’를 고수해온 남현희는 성형파문으로 잠시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지난 5월 그랑프리와 월드컵 대회에서 잇따라 3위 안에 들면서 컨디션 회복을 알렸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지인 <스포츠일러스트레이트>는 최근 베이징올림픽 특집호에서 남현희를 은메달 후보로 꼽았으나, 당일 컨디션에 따라 충분히 금메달도 바라볼 수 있다. 남현희는 대회 초반 순조롭게 예선을 치를 경우 준결승부터 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 기록을 가진 발렌티나 베잘리와 조반나 트릴리니 등 이탈리아 선수들과 맞붙는다.

특히 현역 군인인 발렌티나 베잘리는 남현희의 스피드를 이용한 공격을 되치기하는 능력이 탁월해 주의해야 한다. 남현희는 8월11일 팀 동료 정길옥과 함께 여자 플뢰레 개인전 금메달에도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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