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장사 해도 너무하네
  •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 ()
  • 승인 2008.08.19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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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3사, 광고 수입 혈안에 시청자들 ‘울컥’
▲ 방송사들의 올림픽 중계 중복 편성으로 국민의 짜증이 늘어나고 있다. ⓒ시사저널 황문성

요즘 케이블 TV가 여름 비수기에도 불구하고 때 아닌 올림픽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KBS·MBC·SBS 등 지상파방송 3사의 천편일률적인 올림픽 중계방송에 질린 시청자들이 잇따라 케이블 TV를 신청하기 때문이다. 지상파방송협의체인 한국방송협회는 지난달 “전파 낭비를 방지하고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8월8∼24일 베이징올림픽 기간 주요 경기를 번갈아 중계하는 순차 방송에 합의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 방송 3사의 올림픽중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예전 올림픽이나 월드컵의 중계 형태에서 그다지 진전되지 않은 ‘생색내기’ 수준이었다. 당시 방송 3사는 축구와 야구의 예선 경기만 공동중계단을 구성해 축구는 2사 1경기, 야구는 1사 1경기씩 중계하기로 합의하는 데 그쳤다. 대표팀이 본선에 진출할 경우 모든 방송사가 중계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두었을 뿐만 아니라 레슬링·수영·유도·양궁·탁구 등 메달 유망 종목에는 따로 규제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중복 편성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수영 박태환 선수의 경우 자유형 400m 경기를 세 방송사가 하루에 수십 차례 방송을 하는 바람에 감격스런 금메달 소식마저 질리게 만들었다. 같은 날 올림픽 6연패를 달성한 여자 양궁단체전을 비롯해 한국 선수가 메달을 딴 경기 모두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시청자들은 아침에 눈을 뜨는 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 올림픽 중계를 보아야 되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유도·핸드볼 등 메달권에 진입한 한국 선수들의 경기나 야구·축구 같은 인기 종목만 똑같이 방송하다 보니 나머지 우리나라 선수들이 출전하는 비인기 종목은 자연스럽게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시청자들은 요트·조정·카약 등의 종목에는 한국 선수들이 출전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들 비인기 종목의 선수들이 16강이나 8강에 진출할 경우 방송 3사는 자막을 통해 간단히 처리할 뿐이다.

게다가 방송 3사는 세계적인 선수들의 명승부나 개막전 전부터 관심을 모았던 경기, 다이빙이나 체조처럼 볼거리가 다양한 경기도 한국 선수가 출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계 일정에서 뺐다. 그래서 큰 관심을 모았던 미국 드림팀과 중국 만리장성의 농구 대결은 물론 호나우두가 나선 브라질의 축구 경기조차 TV에서 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시청자들은 이번 올림픽 중계방송을 보면서 “올림픽이 세계의 스포츠 축제가 아니라 전국체전 같다”라고 비꼬기도 했다.

스타 해설위원 영입 경쟁 … ‘있으나 마나 한 해설’도 눈총

결국 이런 중복 편성은 올림픽 중계 내용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올림픽 중계는 통일된 국제신호로 제작되기 때문에 전세계 시청자들은 똑같은 경기 장면을 보게 된다. 따라서 방송사들이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지나치게 튀는 해설과 자극적인 멘트로 일관하는 경향이 심해졌다. 방송 3사는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은 스타 선수나 감독을 각 종목 해설위원으로 영입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하지만 이렇게대거 투입된 상당수의 스타 선수와 감독 출신의 해설위원들이 반말·막말 해설에서부터 잘못된 정보 제공, 고함만 치는 있으나 마나한 해설로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방송 3사가 이처럼 올림픽 중계방송에 ‘올인’ 하고 있는 것은 국제올림 픽위원회(IOC)에 지불한 거액의 중계료와 올림픽으로 인해 새롭게 유발 되는 광고 수입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방송 3사는 국제축구연맹(FIFA)에 2천5백만 달러(약 2백39억원)의 중계료를 지불했을 뿐만 아니라 특집 프로그램 제 작등에 막대한 제작비를 썼다. 당시 방송 3사가 월드컵으로 기대했던 광고 수입은 총 8백억원 규모. 이 중 실제 판매된 광고는 전체 물량의 60%대인 6백억원 안팎이었지만 방송사들은 각각 2백억원 안팎의 수입을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즉, 방송 3사는 늘 중계권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시청자 주권이나 질높은 스포츠 중계 보장이 아니라 이윤창출과 시청률 제고를 위해 월드컵이나 올림픽에 올인하는 것이다. 특히 요즘 뉴미디어 환경의 도래로 지상파 TV의 시청률이 계속 추락하는 상황에서 올림픽과 월드컵은 절호의 기회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방송 3人사 이전투구식 경쟁은 지난2006년 SBS가 2010년부터 2016년 동·하계 올림픽 중계권과 2010년·2014년 월드컵 중계권을 엄청난 금액으로 단독 계약하는 사태로 이어져 큰 논란을 야기했다.

하지만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한국과 같은 상황은 찾아볼 수 없다.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와 민영 방송사들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IOC로 부터 공동으로 베이징올림픽 방송권을 구입한 뒤 방송사별로 방송 시간을 안배해 중복 편성을 피하고 있다. 이번 베이징올림픽에서는 NHK가 1백98시간, 민방 지상파는 약 1백73시간 중계를 할 예정이다.

인기 종목의 경우 제비뽑기로 결정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가타지마 고스케가 금메달을 딴 수영 100m 평영 결승전은 NHK가, 금메달 후보 노구치 미즈키가 출전하는 여자 마라톤은 니혼TV,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된 남자 육상 100m 결승은 TBS, 전통적으로 일본의 강세가 점쳐지는 유도 남자 100kg급 및 여자 78kg급 결승전은 후지TV가 중계하는 방식이다. 제비뽑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시청자들에게 더많은 채널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는 인식이 일본 방송가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금까지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큰 이벤트의 시청권에 대한 법적 규제가 없었다. 2006년 독일월드컵 직후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이 지상파 방송 3사가 동일 시간대에 같은 경기를 중계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지만 언론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통과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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