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지난 먹을거리 유통기한은 없었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8.08.2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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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제과업체인 오리온이 유통기한을 조작했다가 들통났다. 시중에 팔리고 있는 식품 중 얼마나 유통기한을 지키고 있는지 파악조차 안 되고 있다. <시사저널>은 식품류의 유통 실태를 밀착 취재했다.

ⓒ연합뉴스

소비자들이 식품을 구매하기 전에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유통기한이다. 10명 중 7명이 ‘유통기한을 보고 물건을 산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제품의 포장이나 용기에 표기된 유통기한이 곧바로 제품의 신뢰도와 연결된다는 뜻이다.

문제는 시중에 나도는 식품 중에 상당수가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변조된 제품이라는 것이다. 완제품의 경우 폐기해야 할 제품도 유통기한을 바꾸면 감쪽같이 소비자들을 속일 수 있다. 관계 당국의 단속에도 한계가 있다. 현행 시스템으로는 개별 식품의 이력을 일일이 추적하지 않는 한 변조된 사실을 밝혀내기가 어렵다. 이런 단속의 허점을 악용한 업체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이들 업체는 소비자의 건강은 뒷전인 채 오로지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있다.

최근에 발생한 오리온의 허쉬초콜릿 유통기한 조작 사건이 대표적이다. 유명 제과회사인 오리온의 유통기한 조작은 가히 충격적인 것이다. 오리온은 쓰레기통으로 가야 할 초콜릿의 유통기한을 임의로 조작한 후 다시 시중에 내다 팔고 이득을 챙겼다.

오리온의 유통기한 조작은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오리온은 파주에 있는 굿모닝글로벌에 소분을 맡기면서 용기와 스티커 등 일체를 제작해서 넘겼다. 비닐에서 플라스틱통으로 포장을 바꾸면서 유통기한까지 바꿨다.

▲ 식약청에서 압류한 오리온의 허쉬초콜릿 미니어처 제품.

버릴 초콜릿을 날짜 조작해 내다 팔아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 조사에서 소분업체인 굿모닝글로벌은 오리온의 유통기한 조작 사실을 몰랐다고 해명했다. 포장을 교체하고 라벨을 붙인 단순 작업만 맡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군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포장지와 라벨을 교체하면서 유통기한이 다른 것을 몰랐을 리 만무하다. 다만 오리온의 우월적 지위 때문에 알면서도 모른 척 넘어갔을 수는 있다.

이럴 경우 굿모닝글로벌에 대한 처벌 기준이 없다. 식약청 관계자에 따르면 굿모닝글로벌은 이번 일로 타 회사와의 거래가 끊어질 상황에 처했다고 한다. 식약청 식품안전관리과 이상모씨는 “현재 유통 판매 중인 허쉬초콜릿 미니어처 제품 전량을 수거하고 있다. 영업정지 처분 등의 행정 제재와 검찰 고발 등이 잇따를 것이다. 굿모닝글로벌에 대해서도 제재를 검토 중이다”라고 밝혔다.

오리온의 유통기한 조작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 것은 한 소비자의 제보다. 이 소비자가 제품에서 벌레가 나왔다고 식약청에 신고하자, 수입 서류를 통해 역추적한 결과 유통기한 조작이 드러났던 것이다. 만약 소비자의 신고가 없었다면 오리온의 허쉬초콜릿은 여전히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었을 것이다.

<시사저널>은 식품 유통기한 조작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한 건의 제보를 받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미국산 허쉬초콜릿과 동일한 제품에서 죽은 파리가 나왔다는 것이다. 회사원 이남석씨(32)는 지난 2월13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불쾌하기 짝이 없다.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선물용으로 코스트코 일산점에서 허쉬초콜릿 미니어처를 구매한 후 이 중 하나를 개봉해서 먹다가 죽은 파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즉시 카메라를 꺼내 초콜릿과 파리를 촬영한 후 제품을 구매한 코스트코 일산점에 전화로 항의했다. 코스트코측은 “무조건 새 제품으로 바꿔줄테니 문제의 초콜릿을 일산점으로 가져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씨는 해당 제품을 코스트코 일산점으로 가져가지 않고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이던 한나라당 박재완 의원실에 신고했다. 당시 박재완 의원실에서 일했던 변준혁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실 비서관은 “이씨가 허쉬초콜릿에서 파리가 나왔다며 의원실에 알린 사실이 있다. 당시 17대 임기가 끝날 무렵인 데다 의원실의 사정으로 이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지난 3월에는 코스트코코리아에서 수입·판매하는 미국산 냉동야채 ‘유기농야채믹스베지터블’에서 야생쥐의 일종인 ‘뒤쥐’가 발견돼 식약청이 긴급 회수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식품의 유통기한 조작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해마다 몇 건씩 관계 당국에 적발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얼마나, 어떻게유통기한이 조작되어 시중에 유통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국내 유명 제과회사에서 16년간 일한 경험이 있는 안병수 후델식품건강연구소 소장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유통기한 조작이 가능하다. 유통기한을 조금 늘려도 문제가 없는 완제품의 경우 폐기하지 않고 다시 시장에 내놓겠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지금 시중에는 유통기한이 조작된 제품들이 수없이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 제공

대형 유통업체보다 영세 상점들이 더 위험해

지난 2005년 7월 소비자시민모임 안산지부가 조사한 ‘가공식품 유통기한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주택 밀집 지역 영세 상점들이 대형 유통업체에 비해 재고 관리가 상대적으로 부실한 것을 알 수 있다. 조사 결과에는 주택가 소형 유통업체 85곳 중 33개(39%) 업소에서 유통기한이 경과한 제품을 판매했다. 적발된 제조업체는 43개였으며, 유통기한이 1년 이상 초과한 제품도 22%나 되었다.

<시사저널>은 식품회사의 유통기한 조작과 방법에 대해 다각도로 취재했다. 실제 유통업체의 매장을 다니면서 유통기한 표기의 적절성과 정확성을 직접 확인했다. 유통기한이 조작되었는지의 여부를 소비자가 눈으로 식별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유통기한이 조작된 완제품의 경우 매장에 내보내기 이전 단계에서 유통기한 조작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현행 우리나라의 식품유통 구조상 제조회사, 소분업체, 대형 마트 등에서는 유통기한 조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만큼 식품 이력 관리가 허술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수산물을 비롯해 유통기한 의무 표시 대상 품목이 아닌 자연산물의 경우에도 유통기한을 임의로 변경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유통 매장의 수산물 코너에서 이중으로 붙어 있는 라벨을 뜯어보면 종종 유통기한이 지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식품의 유통기한 조작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일반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 중 하나가 ‘유통기한이 지난 원재료의 재사용’이다. 식품 제조회사에서 완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해외에서 수입하는 원재료가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원재료의 유통기한은 보통 1년 정도라고 한다. 대량으로 수입하기 때문에 주로 배를 이용해 들여오고 있다. 배는 항공기와는 달리 수입에서 통관 절차 등을 거치다 보면 시간이 꽤 걸린다.

막상 원료를 수입해도 완제품의 판매실적이 저조하면 한동안 창고에 보관하게 되는데 이러다 보면 유통기한을 넘기게 된다. 이런 경우 원재료를 폐기해야 하지만 고가의 원료이거나 변질되어도 크게 위험하지 않으면 유통기한이 지나도 사용하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대표적인 유통기한 조작 방법은 포장용기나 포장지에 붙은 라벨을 교체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보통 소분업체가 이용된다. 오리온의 경우처럼 교체할 포장용기와 유통기한이 조작된 라벨을 소분업체에 넘겨서 일률적으로 바꾸는 방법이다. 수입산 가공 버터 등 식자재 판매 업소에 납품하는 원재료의 경우에도 유통기한이 지난 원료의 라벨을 제거한 후 스티커를 바꿔서 유통시키는 일도 있었다. 이때 유통기한은 업자들 맘대로 정해진다.


인터넷 쇼핑몰도 안전 사각지대

대형 식품 판매업소인 백화점·할인점 등은 판매하고 남은 생선류 등의 포장지와 라벨을 뜯어내고 새로운 제품인 것처럼 포장한 다음 제조 연월일, 유통기한을 허위로 조작한 후 진열하기도 한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식품도 안전 사각지대다. 한 인터넷쇼핑몰은 유통기한이 지난 깡통 제품(통조림, 분유, 캔 등)을 싼값으로 대량 구매한 후 용기에 표기된 유통기한을 아세톤으로 지우고 조작해서 판매하기도 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폐기하기 직전에 빼낸 후 유통기한을 조작한 후 시중에 넘기는 일도 있다. 이런 경우 무허가 폐기물 처리 업체와 수입 식품 도매업자들이 공모하는 것이 다반사다. 소비자시민모임 우혜경 대외협력팀장은 “기업의 도덕 불감증이 심각하다. 무조건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이 소비자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처벌조항이 약한 것도 이런 문제를 부추기는 원인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을 팔다가 걸린다고 해도 벌금을 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처벌을 엄격히 하고 제도적인 방지책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식약청은 제품의 생산부터 유통, 소비까지 모든 단계의 식품 이력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식품이력추적관리제도’ 시범 사업을 지난달부터 실시하고 있다. 우선 남양유업의 ‘명품유기농’ 외 11개 제품과 매일유업의 ‘3년 정성 유기농 맘마밀’ 외 11개 제품 등 총 24개 영·유아용 이유식 제품에 한정하고 있다. 시범 기간은 오는 12월까지 5개월간이다.

식약청은 이번 시범 사업 결과를 토대로 문제점을 보완해 국민건강에 파급 효과가 큰 식품부터 이력 추적 시범 사업 품목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2013년부터 의무화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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