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반경 넓혀 ‘친노’ 끌어모아?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8.09.23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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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인터넷 토론 사이트 개설 10월1일 서울에서 첫 특별 강연도 열 계획
▲ 8월30일 봉하마을 잔디공원에서 열린 민주당 경남도당 전진대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원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뉴시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지난 9월18일 인터넷 토론 사이트 ‘민주주의 2.0’을 공식 오픈한 데 이어 오는 10월1일에는 봉하마을을 떠나 서울에서 첫 특별 강연을 갖는다. 노 전 대통령측은 ‘정치 활동과 무관하다’라는 입장이지만 정치권은 온·오프 라인에서 보폭을 넓히는 전직 대통령의 행보를 예사롭지 않게 바라보는 분위기이다. 특히 대선 패배 후 정치적 동면에 들어갔던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최근 들어 각종 모임과 연구소를 개설하며 부활의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면서 ‘친노(親盧) 진영의 정치 세력화가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라는 관측을 낳고 있다.

‘깨어 있는 시민이 시민주권 시대를 엽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민주주의 2.0’은 노 전 대통령이 직접 기획한 ‘작품’이다. 재임 시절부터 ‘참여’와 ‘소통’을 위한 토론 광장을 구상해온 노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개발 상황을 꼼꼼히 챙기면서 사이트 개설에 공을 들였다. 당초 계획보다 오픈 시기가 늦어진 것도 ‘민주주의 2.0’만의 특성을 강화하려는 노 전 대통령의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주의 2.0’은 정식으로 공개되기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인터넷 대통령’으로 불렸던 노 전 대통령의 정치 활동 공간으로 활용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높은 관심은 사이트 개설과 동시에 입증되었다. 노 전 대통령이 올린 첫 글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아 1만 건의 조회 수를 훌쩍 넘겼다. 방문객이 몰리면서 사이트가 일시적으로 ‘다운’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유롭게 대화하되 깊이 있는 대화가 이루어지는 시민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것이 ‘민주주의 2.0’의 취지이다”라고 밝혔다. 한 주제를 중심으로 문답, 토론, 연구 등을 깊이 있게 진행함으로써 수준 높은 지식을 생산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축적·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2.0 개설은 친노 세력 전열 재정비 신호탄” 해석도

기존 미디어와의 차별화도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은 “우리 사회에는 미디어도 많고 인터넷 세계에도 많은 의견과 주장이 넘치고 있지만, 기존의 미디어 세계는 한쪽의 목소리가 너무 커 균형 있는 소통의 장이 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떤 주제든 집중적이고 깊이 있는 대화를 거치면 사실에 좀더 가까이 갈 수 있고, 지식의 깊이도 깊어질 것이다”라고 기대했다. 노 전 대통령의 이같은 인식은 국정 운영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판단의 근거가 되어 여론을 형성하고 이로 인해 정책 추진에 어려움을 겪은 데 따른 문제 의식이 반영되었다는 설명이다.

‘민주주의 2.0’의 운영은 전적으로 시민 참여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게 노 전 대통령의 설명이다. 당장은 시스템 관리 등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으로 운영진을 구성하지만, 앞으로 여건이 되면공익적 성격의 재단을 구성해 운영 주체가 되도록 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은 직접 토론에 참여하지 않고 ‘노공이산’이라는 아이디로 사이트 운영을 위한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트 개발에 참여한 김종민 전 청와대 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은) 토론 내용에 대한 발제나 찬반 의견을 내는 것은 적절치 않고, 토론 진행이나 시스템 개선에 관해서는 참여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의 역할과 무관하게 ‘민주주의 2.0’이 친노 진영의 ‘인터넷 진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각종 현안을 주제로 한 토론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재평가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 영향력이 어느 정도일지 예단할 수는 없지만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질 경우 응집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민주주의 2.0’ 개설을, 그동안 각개 약진하던 친노 세력이 전열을 재정비하는 ‘신호탄’으로 보는 정치적 해석도 나온다. 여기에는 노무현 정부 인사들의 움직임이 최근 들어 부쩍 활발해진 상황이 맞물려 있다. 두 갈래 기류가 형성되는 분위기이다. 먼저 연구기관 설립을 통한 보폭 넓히기가 진행 중이다.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최고위원은 지난 9월9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더 좋은 민주주의 연구소’ 개소식을 가졌다. 현역 의원이 아니라는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정치인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하겠다는 선언으로 풀이된다.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이 기획위원장을 맡아 힘을 보탰다. 천 전 대변인은 “21세기 새로운 진보 세력의 재집권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큰 꿈을 갖고 연구소를 추진했다”라고 밝혔다. 안최고위원은 연구소 개소 이후 당내 발언권을 점차 키워가고 있다.

앞서 지난 9월5일에는 학자 출신의 노무현 정부 고위 인사들이 주축이 된 ‘한국미래발전연구원’이 공식 출범했다.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김우식 연세대 명예교수가 이사장을 맡았고,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 성경륭 한림대 교수, 이정우 경북대 교수와 사회정책수석을 역임한 김용익 서울대 교수 등이 이사진으로 참여했다.

기획운영실장을 맡은 김성환 전 청와대 정책조정비서관은 “정당과 기업으로부터 자유로운 연구소로서 미국의 진보 성향 민간 연구단체인 ‘브루킹스 연구소’와 같은 싱크탱크를 지향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특정 정치권과 연계 없이 독립적인 연구 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라는 설명이다. 김비서관은 “지난 정부에서 정책을 결정해본 전문가들이 참여한 만큼 무책임한 비판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정책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 9월9일 ‘더 좋은 민주주의 연구소’ 준비위원회 사무실 개소식에서 준비위원장인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왼쪽 두 번째) 등이 축하 떡을 자르고 있다. ⓒ뉴시스

친노 진영 중심으로 민주당 안팎 영남 세력 결집할지 주목

다른 한편으로는 친노 진영 내 영남 정치인들의 행보가 활발해지고 있다. 경남 김해가 지역구인 최철국 의원은 당내의 ‘영남 배려’를 요구하고 나섰다. 경남도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의원은 “정책적으로 영남을 배려하고 인재 영입에도 힘써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추석 연휴 기간 봉하마을을 찾았던 그는 노 전 대통령도 ‘영남에 대한 배려 없이 대선에서 승리하기는 힘들다’라는 뜻을 내비쳤다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8월30일 민주당 지도부가 참석한 경남도당 전진대회에서도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정당이 되려면 반드시 영남을 잡아야 한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친노 진영 중심으로 민주당 안팎의 영남 정치 세력이 결집에 나설지 여부가 주목된다. 최의원은 당장은 아니지만 영남 세력이 모여서 힘을 발휘하는 방안에 대해 그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을 떠나 대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의 다음 행보도 관심사이다. 경북대에서 ‘생활과 경제’ 강의를 맡아 진행 중인 유 전 장관은 아직까지 정치 일선에 복귀하지 않은 상태이다.

노 전 대통령이 뚜렷하게 부각되는 대선 주자가 빨리 나타나지 않은 데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는 대목도 민주당이 지지 기반을 확대하고 인재 영입에 나서야 한다는 충고로 읽힌다. 차기 대선 주자 간 경쟁이 치열한 한나라당과 달리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은 인물난을 거듭해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오는 10월 10·4 남북정상선언 1주년을 맞아 열리는 기념 행사 및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 봉하마을로 내려간 이후 처음으로 서울로 올라와 특강을 갖는다. 이명박 정부에 남북 화해 협력을 주문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이 또 다른 ‘정치적 발언’에 나설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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