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까지 파먹는 ‘탐욕의 대국’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8.10.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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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 파탄의 원인과 어두운 현실 고발한 현장 리포트

▲ ‘나는 뚱보가 아니다’라고 쓴 13세 미국 소녀의 배. ⓒ문학수첩 제공
    미국발 금융 위기가 세계를 뒤흔들자 미국에서 살다 최근에 한국으로 돌아온 친구가 미국의 지인을 걱정했다. 그의 지인은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으로 집을 얻어 살고 있고, 또 이런저런 대출을 받아 사업을 하고 있는데 아마도 지금쯤 ‘쪽박’ 신세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런 추측을 뒷받침하듯 <르포 빈곤 대국 아메리카>도 신자유주의의 메카인 미국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고발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의 현장부터 들려주는 저자의 말을 듣고 있으면 과연 그곳이 ‘기회의 땅’이었는지 의심하게 된다. 지금껏 우리가 막연히 품어온 잘 먹고 잘 살고 뭐든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온 경제 대국 미국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만든다.

이 책은 저자인 일본인 저널리스트가 한 이민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멕시코 이민자 마리오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세 아들까지 온 가족이 빚 갚느라 몇 년을 고생하고도 상환 연체에 집값 폭락으로 감당할 수 없는 빚만 안은 채 집에서 쫓겨났다. 마리오의 아내는 지난 세월을 떠올리며 “정말 짧은 꿈이었다”라고 말했다. 마리오 가족은 바닥에 구멍이 난 배에 올라타 온 가족이 필사적으로 물을 퍼내는 꿈을 꾼 것이 아니었을까.

▲ 츠츠미 미카 지음 / 고정아 옮김 /문학수첩 펴냄
미국의 주택 경기가 침체에 빠져들기 시작했을 때 업자들이 새로 주목한 대상은 불어나는 불법 이민자와 저
소득층이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은 과격한 시장 원리가 경제적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은  ‘빈곤 비즈니스(빈곤층을 대상으로 시장을 확대하는 비즈니스)’였던 것이다. 뉴욕의 금융 분석가는 이미 2007년 여름의 상황에서 “위험에 무방비 상태인 저소득층을 ‘상품’으로 삼아 시장 원리에 편입시키려 했던 것은 커다란 잘못이었다”라고 말했다. 많은 미국인들이 미국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 던져주는 ‘희망’이라는 미끼에 걸려들어 폭주하는 시장 원리에 끌려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재 미국에서 터져나오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검증하다 보면 국경·인종·종교·성별·연령 등의 온갖 범주를 뛰어넘어 세계를 양극화시키는 격차 구조와 그것을 먹이 삼아 계속 돌고 도는 시장의 존재, 일순간에 사람들을 집어삼키는 괴물 같은 폭주형 시장 원리 시스템과 맞닥뜨리게 된다고 역설했다.

빈곤을 숨기는 ‘일그러진 미국’에 대한 보고

미국의 빈곤층 아이들은 그래도 굶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맞다. 오히려 ‘빈곤 아동’들 중에는 비만아가 많다. 미국의 한 교사는 “정부는 모르고 있다. 저 아이들의 비만의 원인이 빈곤이라는 사실을…”이라며 개탄했다. 빈곤 아동의 낮은 교육 수준과 비만도는 비례한다고 말하는 이 교사는 “가난한 가정에서는 매일 값싸고 조리가 간편한 정크푸드나 패스트푸드, 튀김류가 중심이 된다”라며 굶어 죽지 않는 대신 싸구려 음식을 먹고 포동포동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아이들이 되어간다고 덧붙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영양에 관한 지식조차 없다. 이들은 생활 보조를 위해 정부가 제공하고 있는 푸드 스탬프를 사용해 무조건 칼로리 높은 음식을 살 수 있는 한 사들인다. 미국 농무성의 데이터에 따르면 2005년 미국 국내에서 ‘기아 상태’를 경험한 인구는 3천5백10만명(전 국민의 12%)이었다.

저자는 가난한 계층이 많은 지역에 실시되는 무료·할인 학교 급식이라는 거대 시장을 노리는 패스트푸드 체인도 미국의 국민 비만율 상승을 심각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주장했다. ‘국제비만협회’는 2010년에는 미국 어린이의 절반 이상이 비만아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자들은 진짜 비극은 자연 재해보다 재해 기관의 민영화로 인해 피해 지역에 대한 원조를 소홀히 한 탓에 주민들을 사회의 극빈곤층으로 전락시킨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무역센터 옆 빌딩에서 근무하던 중 9·11 사태를 경험한 저자는 그 후 저널리스트로 변신해 미국의 변화를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고 군대 모병관의 권유로 입대하게 된 아들을 둔 한 여인을 만나면서 이 책의 테마인 ‘미국의 빈곤’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고 한다.

“정부가 국민의 개인정보를 장악하고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국가의 중추 기능은 민영화되고 사회보장비는 삭감되었다.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미국은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미디어들은 앞 다투어 ‘애국심’이라는 이름 아래 이라크에서 싸우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결과적으로 전쟁에 차출된 것은 그 안에서 만들어진 빈곤층들이었던 것이다.”

이 여인의 말처럼 미국의 빈곤 현실, 그리고 빈곤층이 겉보기에는 민주적인 방법으로 ‘전쟁’에 편입되는 사실이 이 책에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

이렇게 중류층이 사라지고 일부 부유층과 대다수 빈곤층만 남게 된 미국의 사회 현상을 들여다보면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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