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한국을 넘어 아시아로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8.10.2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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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난민 지위 인정’ 등에 중요 역할…인권학교 운영 등 교육 활동도 눈에 띄어

▲ 아시아 ngo 활동가들이 '광주아시아인권학교' 수업에 참가하고 있다. ⓒ518기념재단제공

지난 9월25일 한국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아시아인들의 인권과 관련한 의미 있는 사건이 있었다. 대법원이 미얀마 출신인 마웅마웅소 씨 등 8명에게 난민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번에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이들은 1988년 버마 민주화항쟁을 이끈 이른바 88세대로 1990년대에 한국에 와서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 지부에서 활동해왔다. 이들이 난민 신청을 낸 것이 2000년, 무려 8년 만에 나온 결말이다. 최종 결정이 이루어지기까지 2005년 1차 불허 통지, 2006년 난민불허처분취소소송에 대한 원고 일부 승소 판결, 법무부의 항소 및 상고 등의 과정을 거쳐왔다.

하지만 지난 9월4일에는 정반대의 결과도 있었다. ‘버마행동 한국’의 뚜라 대표를 포함해 이 단체 소속 8명이 제출한 난민 인정 신청에 불허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법무부는 이들의 활동이 미얀마 정부의 박해를 받을 정도가 아니라고 밝히면서 미얀마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인도적 차원에서 체류할 수는 있도록 했다. ‘버마행동’측은 즉시 이 판결에 대해 이의신청을 했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외국 난민의 인권에 관해서 한국은 열악한 환경이다. 난민 문제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고 전문가도 별로 없다”라고 말했다.

서로 다른 결과를 낳기는 했지만 이들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벌여온 지난한 투쟁 과정에는 본인들의 노력과 함께 한국 시민 사회의 도움도 있었다. 법적 부분을 담당한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함께하는 시민행동 등이 미얀마인들의 난민 인정을 위해 함께 노력했다. ‘버마행동’ 소속 8명에 대한 불허 결정에 대해서는 공감, 함께하는 시민행동, 국제 민주 연대 등 17개 시민단체들이 법무부의 결정에 항의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한국 내의 아시아인에 대한 인권이 일보 전진하는 데 아시아 NGO 연대가 조그만 힘을 발휘한 것이다.

한국에서 NGO 활동의 아시아 연대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이다. 1999년 서울 NGO 세계대회가 열리면서 아시아 연대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한국을 중심으로 한 연대 활동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하지만 한국 NGO들의 아시아 연대 활동이 최근 들어 다소 주춤해졌다.

국내 문제에 치중해 아시아 연대 활동 확대는 아직 더딘 걸음

참여연대, 환경연합 등 규모가 큰 한국 NGO들은 국제 연대를 담당하는 부서를 갖추고 있지만 세미나, 포럼 등을 개최하는 것 외의 활동은 활발하지 않다. 국제민주연대의 최미경 사무국장은 “아시아 지역 문제보다 국내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생각 때문에 아시아 연대 활동에 대한 관심이 준 것으로 보인다. 시민들의 참여와 기부 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장에 직접 가보는 것이 중요해 상당한 비용이 필요하다는 점도 아시아 연대 활동을 확대시키기 어려운 이유이다”라고 말했다.

성공회대 박상필 교수는 “아시아 연대 활동에서 한국 NGO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경제적 위상으로 보면 아시아에서 일본의 NGO가 선두 역할을 하는 것이 맞겠지만 아시아 국가 대부분이 역사적으로 일본에 대해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NGO가 이런 역할을 맡기는 쉽지 않다. 한국의 NGO가 나서야 한다. 하지만 사실 기대만큼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성공회대 NGO 대학원은 지난 2007년부터 아시아 지역 NGO 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석사과정 프로그램인 ‘아시아 시민 사회 지도자 과정(MAINS)’을 운영하고 있다. 아시아연대기구인 ‘새로운 대안 사회 건설을 위한 아시아교류(ARENA)’, ‘5·18 기념재단’ 등의 시민·사회 단체와 기업들의 협력을 받아 MAINS는 수강생들에게 수업료와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다.

▲ '버마 8888민주항쟁' 20주년을 맞아 버마민족민주동맹 한국 지부 회원과 시민 단체 관계자들이 버마 대사관 앞에서 버마의 민주화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MAINS는 한국의 시민 사회를 매개로 해서 아시아 각국의 시민 사회가 학문적·인적인 차원에서 활발하게 상호 교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1년 4학기 강의와 6개월의 원격 논문 지도 과정 동안 한국 사회와 변화,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민주화 등의 과목을 배운다.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은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활발한 NGO 활동을 전개해나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MAINS 담당 조교인 전미현씨는 “인도·태국·미얀마·중국·이라크 등지에서 온 NGO 활동가들, 언론인·교사 등이 교육을 받고 있다. 올해 졸업생 1기를 배출했기 때문에 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찾기는 힘들지만 아시아 연대 활동에 힘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소규모 NGO들, 각국과 학문적·인적 차원 교류 활발해

5·18 기념재단도 지난 2005년부터 아시아 NGO 활동가들을 위한

‘광주아시아인권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광주아시아인권학교’는 2005년에 두 번, 그 이후에는 매년 한 번씩 열려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한다. 초급 실무자, 중급 실무자, 지도자 등 세 그룹 25명으로 선발된 아시아 NGO 활동가들이 3주간 교육을 받게 된다. 이수생 중 우수한 학생 5명을 선발해 MAINS에서 더 심도 있는 공부를 할 기회를 주기도 한다.

‘광주아시아인권학교’도 MAINS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민주주의 경험과 아시아 시민 사회 활동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아시아 시민 사회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김찬호 교류위원회 팀장은 “아시아의 시민 사회 운동가 중에서 젊은 활동가들,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유망주들이 교육에 참가한다. 학생들이 민주주의의 역사가 살아 있는 도시에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네트워크 공간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다. 2007년 광주아시아인권학교에 참가한 필리핀의 다마소 막부알 씨가 올해 아시아공정선거감시단 의장이 되었으며 이 밖에도 많은 시민 사회 활동가들이 인권학교 참가 후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과 시민 사회 성장을 알게 되어 좋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MAINS와 ‘광주아시아인권학교’ 등의 교육을 통한 아시아 연대 활동은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아시아인 NGO 활동가들에게도 좋은 기회를 제공해준다. MAINS 1기 졸업생인 NDL 한국 지부의 내툰나잉 총무는 1994년 한국에 들어와 14년간 체류 중으로 지난 2003년 정치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는 한국 시민 사회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미얀마의 민주화 투쟁과 민주화 이후 미얀마의 나아갈 길에 대해 준비할 계획이다. 한국에서 민주화 세력이 집권한 후에도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해 여전히 투쟁 중인 ‘버마행동’의 뚜라 대표는 “학교에서 정식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없었지만 한국 사회에서 배우는 것이 많다. 기회가 되면 MAINS에 들어가 정식으로 공부하고 싶다. 하지만 나보다도 미얀마의 젊은 활동가들이 그런 기회를 많이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제대로 공부할 기회가 적은 미얀마의 젊은이들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고마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 연대의 필요성에 대해 “아시아의 연대는 필수적이다. 미국, 유럽 등이 미얀마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아시아 지역 안에 있는 국가들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아시아 국가들이 인권 문제에 대해 그 정도의 열정과 관심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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