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하나 제대로 못 만들어서…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8.10.21 17:0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쌀 소득 직불금’ 파동 일파만파 2005년 개정된 법률, 허점투성이

▲ 이봉화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위)의 쌀 직불금 부당 수령으로 비롯된 '직불금 사태'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연합뉴스

쌀소득 직불금 사태’가 정계와 관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이봉화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의 부당 수령 파문으로 비롯된 이번 사태는 지난 10월14일 감사원이 ‘쌀 소득 등 보전 직접 지불 제도 운용 실태’를 공개하면서 기름을 끼얹은 형국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 2006년 직불금 수령자 99만8천명 가운데 공무원, 기업체 임·직원, 의사·변호사 등 28만명이 부당하게 직불금을 받아간 것으로 파악되었다(118쪽 표 참조). 그러자 정계와 관계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 들썩이고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철저한 조사를 벌이겠다”라며 민심 수습에 나섰고, 행정안전부는 공무원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여기에 각 시민·사회 단체들은 부당 수령자 명단을 공개하라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고, 일부 실수령자가 공개된 정치권에서도 여야 공방이 치열하다. 이명박 정부는 올 상반기에 촛불 정국으로, 하반기에 ‘쌀 직불금 정국’으로 또 한 차례 심한 홍역을 앓고 있는 셈이다.

지자체 전담 직원 단 1명…관리 시스템도 ‘구멍’

쌀 직불금 사태는 이미 2005년 ‘쌀 소득 등의 보전에 관한 법률’(이하 ‘쌀 소득 보전법’)이 개정될 당시부터 잉태된 것으로 분석된다. 감사원 감사 결과, 직불금 수령자 가운데 17~28%가 비농업인으로 추정되고 있는 반면 실제 농업인 가운데 13~24%는 직불금을 수령하지도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작 직불금을 받아야 할 농업인은 받지 못한 채 받지 말아야 할 비농업인이 부당하게 수령한 것이다. 이는 직불금을 지급하는 자료인 ‘농지 원부’ 등 실경작자 확인 시스템이 부실한 데다, 직불금을 집행·관리하는 지방자치 단체의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쌀 소득 보전법’ 시행안에 따르면, 자치 단체는 직불금 지급 대상자 등록과 지급 그리고 사후 관리 등을, 한국농촌공사는 농지의 형상과 기능 유지 점검 등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잔류 농약 검사를 하도록 하는 등 운용 주체가 분산되어 있다.

하지만 대다수 자치 단체에서 직불제를 담당하는 직원이 한 명에 불과한 데다, 업무 역시 다른 일과 겹쳐 있어 직불제만 전담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경북 경주시의 한 읍사무소의 경우, 공무원 1명이 31개 마을, 1천9백12농가(2천88㏊)의 직불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더군다나, 직불제 담당자가 지역의 농림 사업과 공공 근로 사업 등 다른 업무까지 이중삼중으로 맡고 있어, 직불금 신청자에 대한 현장 확인은 물론 사후 관리도 부실하게 처리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자치 단체와 한국농촌공사 등에서 쌀 소득 직불제 업무를 분산·수행하고 있지만, 업무 협조가 상당히 미흡하다는 문제점도 있다. 한국농촌공사가 용인시 등 8개 시·군을 점검한 결과, 농지로 등록되어 있는 8천5백51필지는 저수지나 물류 창고, 축사 등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한마디로 부적격 농지이기 때문에 쌀 소득 직불금을 받을 수 없는 곳들이었다. 이에 해당 시·군에 이를 통보했으나, 8천5백51필지 가운데 8백37필지에 대해 쌀 소득 직불금 1억1천만원을 지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자치 단체와 한국농촌공사의 손발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시스템이 부실하다 보니, 한 농지를 갖고 지주와 실제 경작자가 각자 다른 주소지에서 신청해 이중으로 직불금을 타먹는 어처구니없는 사례도 횡행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지주와 실경작자 모두에게 직불금이 중복 지급된 것은 2005년 3천2백26건, 2006년 1천9백70건으로 모두 5천1백96건이었으며, 금액으로는 12억3천9백18만4천1백20원에 달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지방 자치 단체의 전담 인력과 조직을 확충하거나, 전국적인 전담 기관을 지정해 관리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주문한다.

또한 ‘쌀 소득 보전법’ 개정 당시 쌀 소득 직불금 지급 상한제를 폐지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농림부는 쌀시장 개방에 따른 농민 피해를 줄이기 위해 2001년부터 ‘논 농업 직접 지불 제도’, 2002년에는 ‘쌀 소득 보전 직접 지불 제도’를 병행해서 운용했다. 그러다가 2005년 3월 두 제도를 통합한 ‘쌀 소득 보전법’으로 개정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직불금 지급 상한제는 2001년 2㏊→ 2003년 3㏊→2004년 4㏊로 확대되다가, ‘쌀 소득 보전법’이 개정되면서 갑자기 폐지되었다. 

농림부에 따르면, 2005년 상한제를 폐지한 이후 모두 1백3만여 농가 가운데 99만여 농가(96%)는 5백만원 미만의 직불금을 지급받았다. 반면 3만9천여 농가(4%)는 5백만원 이상을 수령했는데, 그 가운데 44개 농가는 5천만원 이상을, 8개 농가는 1억원 이상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돈’에 양도소득세 면제에…논 부자들만 ‘일거삼득’

충남에 사는 ㄱ씨는 1백50억원대의 상당한 재력가이다. 부동산 임대업 등 3개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 연봉만 8억6천만원에 달한다. 여기에 1백67㏊(50만평)의 농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일꾼들을 고용해 실제 농사를 짓고 있어 직불금을 받을 자격까지 있다. 만약 직불금 상한제가 있었다면 2005년과 2006년 2년 동안 직불금으로 6백만원 정도만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상한제가 폐지되었기 때문에 그는 2년 동안 1억원 이상을 수령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 관계자는 “대농가 위주인 미국에서는 직불금 상한제를 적용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구체적인 사전 검토와 국민적인 합의도 없는 상태에서 직불금 상한을 폐지했다. 그 결과 농가 소득을 보전해준다는 취지는 무색해졌고, 직불금 혜택이 대규모 기업농에 집중되면서 형평성 문제를 낳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문제들이 드러나자 농림부는 뒤늦게 ‘쌀 소득 보전법’ 개정에 나섰다. 지난 10월7일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는데 주요 골자를 보면 △실제 경작자 확인 작업 강화 △직불금 지급 면적 상한제 △일정액 이상 농업외 소득자 지급 제한 △신규 농업 진입자 지급 제한 △부당 신청 제재 강화 등이다. 하지만 국회에서 법률 개정 절차가 남아 있어, 어떤 모습으로 바뀌게 될지는 좀더 지켜보아야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쌀 직불금을 부당하게 수령한 지주에게 직불금은 ‘공돈’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바로 직불금을 신청하고 수령해야만 농업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더 많은 농지를 소유해도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특히 8년 동안 농사를 짓는 것처럼 위장하면 ‘양도소득세’를 면제받을 수 있는 혜택도 부여된다. 한마디로 지주에게 쌀 직불금은 ‘일거삼득’인 셈이다. 그런 달콤한 유혹에 빠져 재미를 본 지주들이 적지 않은 만큼 ‘쌀 직불금 사태’는 당분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