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드라마가 아닌 100년 사업이다”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8.10.2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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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50주년 맞은 고은 시인 / “제2의 6·25가 온다고 해도 절망하지 않는다”

ⓒ시사저널 임영무

시인은 마치 집나간 자식을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대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고생했어.” 시인의 눈가에 웃음이 번졌다. 경기도 안성에 사는 고은 시인을 찾아간 날은 단풍이 소리 없이 내리는 날 오후였다. 불과 며칠 전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북적였던 시인의 집 주변은 조용했다. 바람만이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가운데 귀여운 강아지 네 마리가 손님을 보고 꼬리를 흔들었다.

시인은 일행을 먼저 자신의 서재로 안내했다. 책의 바다였다. 위 아래 할 것 없이 큰 책, 작은 책, 파란 책, 빨간 책들이 가득했다. 책은 서재를 넘어 거실로 진출해 있었다. 문득 책 속의 문자들이 튀어나와 시인에게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거실에 자리를 잡자 시인은 구석에서 무언가를 뒤적이더니 조그마한 소반에 페트병에 담긴 복분자술과 잔을 들고 왔다. “누가 직접 만들었다며 가져온 것이야. 한 잔 하지. 그래야 사진도 잘 찍고 인터뷰도 잘돼. 나는 어제 세게 마셨어.” 일행은 한바탕 웃었다. 본격적인 인터뷰는 복분자술 세 잔을 마신 뒤 진행되었다. 시인은 “그동안 내 언어는 부드럽지 않았다. 이제 부드럽고 싶다”라고 말했다.

올해 등단 50주년을 맞았다.

우연히 그렇다. 50년은 개인의 시간이라기보다는 한국 현대시 100년 안에 참여한 시간이다. 50년을 돌아다볼 때 나 자신의 자취만이 남겨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문득 이런 우화가 떠오른다. 옛날 고대 중국에 황제가 있었는데 침실에 수준 높은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림 속에 물이 흐르는 시내가 그려져 있었는데, 어느 날 황제가 궁정화가를 불러서 그림 속에 있는 시내를 지우라고 했다. 물이 흘러가는 소리 때문에 밤마다 잠을 설친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그림일 뿐인데! 그림 속 시내가 지워진 다음 날부터 황제는 잠을 잘 잤다고 한다. 황제에게 잠을 가능케 했던 없어진 시냇물을 회복해서 다시 그림 속에서 시냇물 소리가 밤새도록 들리게 하는 것이 나의 시의 행로가 아닐까 여겨지는 것이 등단 50년을 맞은 요즘의 감회이다. 앞으로도 지난 50년에 가까운 시간이 내게 배당이 된다면 여전히 나는 시냇물 소리가 너무 시끄러우면 지울 것이고, 황제가 잠에 너무 깊이 빠지면 다시 그려 잠든 영혼을 일깨워야겠다는 생각을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하고 있다.

고은의 문학 세계를 관통하는 일관된 맥(脈)이 있다면?

맥? 어떤 뜻에서는 함부로 고백할 수 없는 무엇일 터이고, 또 어떤 뜻에서는 무엇이라고 명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일 터이다. 차라리 나는 백지의 명제를 갖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 시대의 그림을 그린다. 이미 그릴 의도나 그려지는 형태가 있다면 다른 것을 덧칠하기가 매우 힘들다. 그 전 것도 애매해지고 새로 만들어지는 것도 애매해진다. 나는 늘 백지 한 장으로 돌아간다. 그 시대 속에서 내가 꿈꾸는 무엇인가가 다시 그려지고, 그려지곤 한다.

어떤 한 가치의 원점만을 갖고 평생 일원론적으로 지켜나가는 행위는 내게 불가능하다. 내 욕망은 세계의 어느 시간에도 속하고 싶고 어느 공간에도 갈 곳이 있다. 하나만 물으면 대답을 못하는 벙어리라고나 할까. 모든 곳에서 다 내 시의 흔적을 만나고 싶다. 한 군데에 비석처럼 멈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들짐승처럼 달리고 꿈꿀 것이다.

하나의 철학적인 배경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어떨까?

내 자신의 입에서 어떤 사상에 근거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가령 불가(佛家)에서는 니르바나를 이야기한다. 고통과 즐거움까지도 벗어나는 완벽한 낙원을 말한다. 니르바나의 궁극의 경지가 무여열반(無餘涅槃)인데 나는 이것을 무주열반(無駐涅槃)으로 바꿨다. 머무름이 없이 늘 떠돌고 찾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온전한 행복이다. 영원한 순환, 영원한 이동, 영겁회귀와도 통한다. 떠도는 동안에 나오는 노래들이 내 시이다. 나도 내 단일체가 아니다. 세계의 모든 요소들이 결합해 나라고 명명해 주었을 뿐이다. 자아는 끊임없는 운동체이다. 운명의 동작을 약칭해서 운동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올해 시집도 내고 화가로도 데뷔했다. 그런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다.

나는 원로가 아니라 여전히 신인이다. 지난 50년 동안 나는 이 신인이라고 하는 영광을 한 번도 어디에다가 양보한 적이 없다. 지금도 나는 신인이다. 내 살아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거꾸로 산다. 지난날 했어야 할 일을 지금 하고 있다. 이상하게 뭐든지 늦다.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에 폐허 위에서 실존주의를 받아들였는데 나는 10년 뒤쯤 구조주의가 자리 잡을 때에서야 뒤늦게 실존주의를 파고들었다. 결혼도 50세 넘어서 했으니 늦었다. 커피도 지난해부터 마시기 시작한다. 옛날에는 찬물과 소주 외에는 승인하지 않았다. 커피는 저 세상에서나 먹는 것이지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존재가 삶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면 당연히 앞으로도 지금보다 결코 한가할 수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업을 마치고 시집을 냈을 때 느낌이 어떤가?

술을 마신다. 사람들은 저 사람이 저렇게 술만 먹는데 언제 글을 쓰냐며 기이하게 여긴다. 오래된 나에 대한 수수께끼 같은 것이다. 작업이 끝났을 때는 쾌감과 도취가 필요하다. 그래서 폭음한다. 사람들은 글 쓰고 나타난 것은 가정하지 않고 술 먹는 현장만 생각한다. 지금까지도 그렇다. 시집이 나오면 무지무지하게 황홀하다. 마치 몸에서 날개가 나오는 것 같다. 비상감이 생긴다. 가슴이 고동친다. 진정한 신명은 지칠 줄 모르는 신명이라는 것을 경험한다. 여전히 나는 음악적이다. 북소리가 나고 장구소리가 나고 얼씨구 하는 춤사위가 있다. 몸으로 느낀다.

그림 전시회를 열어 화제가 되었다. 그림과는 인연이 있나?

어릴 때 나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외삼촌의 서가에 반 고흐에 관한 책이 있었다. 너무 일찍 그 책을 펼치게 되었다. 그때부터 반 고흐를 숭앙했다. 중학교에 가서 미술부에 들어갔다. 늘 방과 후에는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가 전쟁이 났다. 그 이후는 무엇이 되겠다는 꿈같은 것은 용납이 안 되는 현실이었다. 폐허에서 살아남았지만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였지 먼 훗날 무엇이 되겠다는 것은 사치스런 것이었다. 그 폐허를 떠돌며 나는 시인이 되었다.

그림을 보는 데 익숙하다. 가능하면 많이 본다. 당사자들이 요청해 ‘천경자론’ ‘변종화론’ 같은 화론도 썼다. 하지만 내 손이 움직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올해 갑작스럽게 충동이 왔다. 경기도 평택에 있는 한 조각가의 작업장에서 17일간 그림을 그렸다. 잠벵이만 입고 옆에 소주병 하나 놓고 작업했다. 오산비행장 밑이었는데 비행기의 이착륙 소리가 사나웠다. 지진이 일어나는 것 같은 움직임 속에서 나도 더 폭음을 내며 작업했다. 소음이 장애물이 아니라 작업을 더 고양시켜주는 유혹체가 되었다. 아주 좋았다.

영어 바람이 거세다.

우리는 영토 안에서만이 아니라 수많은 외부 공간에서도 살아야 한다. 세계의 모든 언어와 관계를 성립시켜야 한다. 이것은 국민의 커다란 사명 중 하나일 것이다. 다만 다른 문자나 언어 속에 묻힌다는 것은 문화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언어는 전달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영혼·정신이 내포되어 있는 문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없애면 저쪽 나라의 언어 속에 들어가 객체 속에 떠돌게 된다. 이처럼 무서운 함정을 가진 것이 한국의 외국어 광풍이다. 이럴 때 시인들의 역할은 모국어를 가장 아름답게 형상화해서 오늘과 내일의 삶의 양식에 기여하는 일이다.

최근 유명 연예인 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나 역시 몇 번인가 자살을 시도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남달리 그쪽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삶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써 사는 것이다. 죽음 역시 그가 혼자 죽은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일부가 죽는 것이다. 절반 이상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지만 절반 가까이는 사회가 죽인 것이다. 역설적으로 타살을 의미한다. 나는 선진을 바라지 않는다. 발전의 마지막 단계가 선진인데 그 끝은 죽음이다. 아파트들이 고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라. 그곳은 바람이 지나가는 공간이지 삶의 공간이 아니다. 발전이라는 허명 속에 바람이 살아야 할 자리에 사람이 기어올라 살고 있는 것이다. 생체에도 큰 반란이 올 것이다. 생명에 대한 무서운 함정이 발전의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다.

남북 관계가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민족 구성원이 하나로 통합되는 위대한 경사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나는 통일이 그렇게 다급하게 오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통일은 하나의 드라마가 아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 같은 그런 통일은 바라지 않는다. 통일은 100년 사업이다. 분단은 하루아침의 사건이었지만 통일은 100년 동안 이루어내야 할 사업이다.

통일은 전혀 없었던 역사상 초유의 새로운 행위이다. 점이 아니라 선이다. 우리는 지금 선의 일부를 가고 있다. 다음에는 다른 분들이 이어서 갈 것이다. 전체를 총칭해서 통일이라고 말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가 남북공동선언을 이루어낸 역사적인 행위만이 기여가 아니다. 노무현 정부 말기의 10·4 선언이 그 당시만의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지금은 험한 고비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다음이 있다. 역사는 진화한다. 움직인다. 암흑 시대에도 역사는 정체되지 않고 움직였다. 지금은 좀 쉬는 때이다. 이명박 정부도 후반기가 되면 문을 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분단의 벽은 점진적으로 허물어지고 낮아지고 결국 없어질 것이다. 그런 시대로 가고 있다. 최악의 상황을 가상해 제2의 6·25가 온다고 해도 통일에 절망하지 않는다. 통일은 멈추는 법이 없다. 통일 이후까지가 통일이다. 오래 걸린다. 옛날에 한민족이었다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자주 만나는 것만이 서로 낯선 관계를 조금씩 줄여나갈 수 있다. 현 정부도 이전 정부의 연속성을 가져야 한다. 현 정부는 새롭게 창시한 정부가 아니라 이전 정부를 승계한 것 아닌가. 속히 계승하는 행위로 돌아서야 한다.

이명박 정권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사실 행복한 시대, 영광의 시대만 살아온 적이 없다. 숱한 문제와 만났고 그것을 헤쳐왔다. 갈등과 모순의 연속을 살아왔다. 나는 이 시대도 정치 중심으로만 인식하고 싶지 않다. 시대를 관통하는 흐름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아픔의 흐름이다. 어쩌면 더 많이 아픔이 남아 있는 흐름 속에 있을지 모른다. 이 정부가 들어서면서 황금기를 만들어내겠다고 해서 화려한 구호를 만들어냈을 때 얼마나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입에서도 그런 말이 없어졌다.

나는 처음부터 어떤 커다란 기대를 하지 않았다. 다만 이전에 있었던 좋은 가치들을 파묻어버리고 비석들을 다 없애고 자기 비석만 세우려는 수작을 한다면 역사에 커다란 죄과를 남기는 것이라는 경고는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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