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대질’ 정치 국감, 정기국회와 분리시켜라
  • 유창선 (정치평론가) ()
  • 승인 2008.10.2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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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 기간 20일에 피감 기관 500곳은 애초부터 무리…정치 공방 행태 못 버리면 제도 개선해도 ‘백약이 무효’

▲ 유창선 (정치평론가)

올해 국정감사도 마찬가지였다. 18대 국회 첫 국정감사도 행정부를 상대로 한 입법부의 감사라기보다는 여야 간 정치 공방의 장이 되어버렸고, 정책 국감은 구호로만 그치고 말았다. 우리 국회의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드러내온 고질적인 문제들은 이번 국감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여기에다가 국감 중반까지 미국발 금융 위기가 모든 이슈들을 덮어버리면서 국감에 대한 관심을 실종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18대 국회의 원구성이 늦게 되어서 그랬는지 여야 의원들의 준비 부족도 눈에 띄게 드러났고, 과거와 같은 ‘스타 의원’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18대 국회의 첫 국감은 이래저래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렸다.

무엇이 문제인가. 그동안에도 국정감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어왔지만, 이번 국감을 거치면서 그 목소리는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정치권 밖에서는 물론이고 각 당 의원들, 특히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 현행 국감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국회의장 직속으로 설치되어 있는 국회운영제도개선자문위원회에서도 국감에 대한 제도적 개선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만간 위원회의 안을 마련해 국회의장에게 보고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선 자문위에서도 검토하고 있다는, 국감을 정기국회와 분리시키는 방안은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사실 정기국회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새해 예산안을 심사하고 처리하는 일이다. 그 다음으로 한 해 동안 논의된 법안들을 처리하는 일이다. 정기국회 회기가 길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결코 만만치 않다. 그런데 지금은 국감이 정기국회 한복판에 놓여 있다. 정기국회 시작부터 국감이 끝날 때까지 의원들은 온통 국감 준비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의원들이 새해 예산안에 관심을 돌리는 것은 국감이 끝나고 나서야 가능하다. 국감을 정기국회와 분리시켜 정기국회 이전에 국감을 위한 회기를 따로 잡으면 좀더 효율적인 국감이 가능해질 것이고, 국감과 정기국회가 모두 살 수 있는 윈윈의 결과가 기대될 수 있을 것이다.

중요성 덜한 기관은 격년제로 하는 방안도 있어

또한 국감의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의 국감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진행된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20일인 국감 기간에 5백곳에 이르는 피감 기관을 대상으로 제대로 된 감사를 한다는 것이 애당초 무리이다. 말이 20일이지 주말을 빼면 보름 남짓한 기간이다. 관심을 모으는 피감 기관에 대해서는 집중적인 감사를 하기도 하지만, 관심이 덜한 피감 기관에 대해서는 보고나 듣고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래서 과거부터 “이런 식으로 하려면 무엇 하러 모든 피감 기관들을 다 대상으로 삼느냐”라는 지적이 있어왔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이게 대한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덜한 기관에 대해서는 굳이 매년 국감을 실시할 것이 아니라 격년제로 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감을 위한 별도의 회기를 갖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국감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다. 아예 상시 국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럴 경우 연중 국감 속에서 행정부가 실무적으로 안게 되는 부담이 너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난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번 국감에서도 초선 의원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 의욕을 갖고 첫 국감에 임했던 초선 의원들이 가장 많이 토로한 애로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질의응답 시간이 워낙 짧게 정해져 있어 문제를 제대로 파헤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 같은 경우는 “개그맨 노홍철이나 이성미의 따발총 말솜씨가 없으면 낭패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의원들의 충분하고도 집중적인 질의를 위해서도 여러 개선책이 필요하다. 굳이 모든 의원들이 모든 현안에 대해 마이크를 잡고 국감장에서 질의응답을 펼칠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내용은 서면으로 묻고 서면으로 답하는 방식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서면 문답을 통해 미진한 점들을 국감장에서 더 묻고 답하는 방식이 된다면 대단히 효율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의원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있어야 실현이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

해마다 국감이 끝나고 나면 비효율적인 국감에 대한 반성과 함께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거론되어왔다. 그러나 막상 근본적인 틀의 개선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해마다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모습이다. 이번의 경우는 마침 18대 국회의 첫 국감이었다는 차원에서 초선 의원들의 제도 개선 요구도 많은 분위기이고, 국회운영제도개선자문위원회에서도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니 차제에 반드시 제도 개선의 결실이 맺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제도 개선에만 모든 것을 기대할 문제는 아니다. 제도 개선은 어디까지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아무리 제도 개선이 이루어진다 해도 국감에 임하는 여야 정치권의 행태가 변화하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이번 국감에서도 정치권의 낡은 행태는 여실히 드러났다. 어떻게든 국감을 정치 공방의 장으로 삼으려는 모습은 여야 불문이었다. 이번 국감이 전·현 정권 사이의 책임 공방전으로 전개된 것이라든가,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힘겨루기의 장이 되어버린 것이 단적인 예였다. 국감 본연의 구도여야 할 국회와 행정부 간의 구도는 무너지고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혹은 여야 간의 대결 구도로 진행되었다.

여나 야나 이념 대결에 몰두해 ‘꼴불견’

▲ 민주당 서갑원 의원(맨 오른쪽)이 국정감사장에 경찰을 배치한 것과 관련해 항의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애당초 이번 국감을 지난 10년 ‘진보 정권’의 실정을 파헤치는 장으로 삼겠다고 했던 한나라당이 전례 없이 전·현 정권 간의 대결 구도에 불을 붙인 셈이었다. 국감 도중에 느닷없이 ‘노봉하’를 조사해야 한다며 봉하마을 문제를 들고 나온 것도 정치 국감의 전형이었다. 물론 민주당 역시 정치 국감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었다. 경제정책 문제, 특히 당면한 금융 위기 문제 등에 대해서도 민주당의 접근법은 정치 일변도였다. 물론 야당 입장에서 경제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우선하는 과정에서 나온 모습일 수는 있겠지만, 야당 역시 정치 국감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더 심각한 것은 쟁점 현안들을 이념 대결로 몰고 가는 여야의 모습이었다. 한나라당은 진작부터 ‘좌편향의 수정’을 내걸고 이념적인 접근법을 구사했다. 지난 한 해 동안 행정부가 한 일을 대상으로 하는 국정감사에서 ‘진보 정권’ 10년의 실정을 바로잡겠다는 것이 적절한 것이었는지 의문이다. 이념 국감의 시도였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이같은 이념적 공세를 비판했지만, 이념적 접근을 시도한 것은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18대 국회 첫 국감의 결과는 우리 정치와 국회가 가야할 길이 아직도 멀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낡은 국감 문화의 청산을 통한 새로운 국감의 탄생이라는 요구는 결국, 우리 정치 문화의 변화라는 근본적인 숙제와 맞물려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제도를 개선하는 노력과 함께, 정치권이 보여주는 낡은 행태의 변화가 거듭 요구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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