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자서전을 냈다. 제목은 <동행>. 김 전 대통령이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라는 부제를 직접 달아주었다. 책머리에서 밝혔듯 이여사는 ‘사형수로부터 대통령이 된 사람의 동반자’로 46년의 세월을 보냈다. 1962년 결혼 이후 ‘극한적 고통과 환희의 양극단을 극적으로 체험한 삶’을 살았다.
그런 만큼 <동행>은 ‘개인의 기록이지만 파란곡절로 아로새겨진 우리 현대사의 뒤안길’이기도 하다. ‘길고도 먼 길을 걸어오면서 몇몇 굽이마다 강렬하게 남아 있는 생활의 기억들’을 담은 책 속에는 역사의 현장에서 만난 낯익은 인물들에 대한 여러 평들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고 육영수 여사에 대해서는 “따뜻하고 반듯한 성품을 지녔으며, 남편의 독재를 많이 염려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속 야당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분이다”라고 기억했다. 두 정적의 안사람으로서 여러모로 비교되었던 육여사는 공교롭게도 김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이 결혼한 날인 1972년 8월15일 운명했다.
“생전에 세 번 육여사와 만났다. 결혼 전 1961년 9월에 여성단체협의회 주최 전국여성대회를 마치고 김활란, 황신덕, 이숙종 등 여성 지도자들과 함께 청와대를 방문해 육여사 바로 뒤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국회의원 부인들 초청 오찬에 참석해 악수를 했으며, 1971년 대선 선거운동 때는 전주에서 뒷모습을 보았다. 뒷모습 역시 우아하고 품격이 있어 보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고에 대한 회상도 있다. “우리 내외는 ‘기쁘지 않으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박대통령의 불행한 죽음을 기뻐하지 않았다. 장기 독재의 종식은 환영할 일이었지만 ‘암살’이라는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는 비열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애석해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그랬듯이 박대통령도 조만간 국민 앞에 스스로 굴복할 수밖에 없었는데 ‘궁정 모반’이 일어났다고.”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DJ는 애석해해
이른바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사형을 받은 남편의 구명을 위해 1982년 전두환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난 사실도 밝혔다. 당시 권력 실세였던 허화평씨의 주선이었다. 2시간 남짓한 만남이었는데 “스스럼이 없었다. 이 얘기 저 얘기 끝이 없었다”라고 전했다. “사형을 시키려 했던 ‘수괴’의 안사람을 상대로 동네 복덕방 아저씨가 아주머니 대하듯이 일상적으로 대했다. 때로는 바지 자락을 올리고 다리를 긁적거리면서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독특한 분이었다.”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 전직 대통령을 초청해서 다시 만난 자리에서도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인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대통령 테이블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그리고 배우자 테이블에서는 이순자 여사가 화제를 유쾌하게 이끌었다.”
정치적 동지이자 경쟁자였던 김대중·김영삼 두 정치인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여사는 “두 사람은 독재 앞에서는 동지였다. 그러나 그 밖의 문제에서는 물과 기름 같은 사이였다”라고 평했다. 시작은 같았다. 195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거제도에서 자유당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한 사람은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순탄한 주류의 길을 걸었고, 또 한 사람은 가시밭길 비주류의 길을 걷게 되었다.
“군사 정권 이후에 김대중은 재야와 감옥에서, 김영삼은 제도권과 집에서 독재와 투쟁했다. 동교동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면, 상도동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생존 방식을 고민했다. 성격 또한 달랐다. 한 사람은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해 단순 유쾌하고 즉흥적인 ‘감’의 정치인이었다. 또 한 사람은 자수성가해 집념이 강하고 논리적이며 ‘원칙’을 중히 여겼다.”
6·15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을 당시 직접 공항으로 영접하러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예전까지의 풍문과는 전혀 다른 인물”로 기억했다. “그는 갈색 인민복식 점퍼 차림에 연한 색깔 렌즈의 금테 안경을 쓴 모습이었다. 비교적 건강해 보였다. ‘참을성이 없고 신경질적’이라던 그간의 풍문과는 무척 다른 인상이었다.”
백화원 영빈관에서는 미리 도착해 있던 김위원장이 이여사가 먼저 들어가도록 예우했다고 한다. 이여사는 영빈관에서 잠시 환담을 나눌 때부터 김위원장을 눈여겨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는 대통령은 물론 장관과 수석 등 수행원들에게까지 두루두루 배려와 예의를 차리면서 좌중을 휘어잡고 주도했다. 거침없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무엇보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여유로움이 돋보였다.”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기록도 있다. 2000년 2월3일 미국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연사를 맡았을 때였다. 5백여 명의 미국 정계 및 외국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연설을 마친 후 이여사는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힐러리 여사와 단독으로 환담을 나누었다.
“힐러리와는 두 번째 만남이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가 퍼스트레이디로 끝날 사람이 아니라고 보았다. 능력 있는 여성의 야망은 격려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는 매우 유능하고 매력적인 여성이다. 전문직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영부인이 된 힐러리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힘이 느껴졌다. 그는 클린턴에 결코 뒤지지 않는 실력과 젊음을 겸비한 여성이다.”
“힘이 된 아내에게 감사한다” 출판기념회에 나온 DJ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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