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은 보수도 진보도, 좌도 우도 아니다”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8.12.09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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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국가인권위 위원장 인터뷰 / “인권위는 정부에 쓴소리 하라고 만든 기관”

ⓒ시사저널 이종현

세계인권선언 60주년, 제헌 60주년을 맞는 올해는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해이다. 안위원장은 “내 나이도 올해 60이다. 1948년생들은 특별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입장은 달라도 이 세월을 살았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남다른 의미가 있는 해였던 만큼 그가 겪어야 했던 고민 또한 남달랐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가 이끄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살얼음판을 걸었다. 물론 지금도 끝난 것은 아니다. 여당 의원들은 ‘인권위 폐지’를 주장했고, 예정에 없던 감사원 감사를 받기도 했다. 지난 정권의 색깔이 배어 있는 이른바 ‘코드 기관’으로 찍혀 눈총을 받기도 했다.

12월1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무교동에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실에서 만난 안위원장은 “인권은 진보도 보수도, 좌도 우도 아니다”라며 ‘보편적인 가치로서의 인권’을 강조했다.


인권위원장으로 취임한 지 2년이 넘었다. 되돌아보면 어떤가?

인생이 자기 계획대로 되는가.(웃음) 교수로 있으면서 나름으로 문제 제기도 하는 등 세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문제를 제기하기는 쉬운데 일을 맡는 것은 문제를 푸는 것이다. 처음에 인권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했을 때 개인적으로는 불편함을 예상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힘들기 때문에 안 맡는다는 것은 비겁한 것이라고 말했다. 맡기로 결심하면서 인권위 내부를 안정시키고 독립 기관의 수장으로서 일하기 위해 무엇보다 반드시 임기를 채우겠다고 다짐했다. 목표의 3분의 2는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나머지는 앞으로 이루어야 한다.

인권위는 생긴 지 7년이 지나면서 사람으로 비유하면 독립된 자격으로 자기 혼자 학교를 갈 수 있게 되었다. 배경은 다양하지만 인권이라는 보편적인 잣대로 보면 어느 정도 공통 분모가 생겼다.

그 사이 정권이 바뀌었다.

나는 평소에 인권은 진보도 보수도 아니고, 좌도 우도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인권은 이런 것을 초월한 개념이라는 신념을 갖고 행동해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평가하기보다는 양쪽으로 정치적인 이념을 가지고 평가하는 정서가 있다.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졌고 노무현 정부에 이어졌으니 특정 성향의 정부가 만든 것이 아니냐, 일종의 프로젝트 기관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요즘에 와서 인식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 같다. 인권위의 고유한 업무와 권한·한계에 대해 인식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도 계속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인권위의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권위는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안 되고 다른 후보가 되었더라도 생겼어야 할 기관이다. 한국 사회가 필요한 것도 있지만 국제적인 추세이고 규칙이다. 1993년 유엔이 나라마다 국가인권위를 설립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른바 ‘파리 원칙’이다. 1993년에는 10개국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1백20개국이다. 인권위가 만들어지는 것은 이처럼 시대적인 흐름이다.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인권위는 특정 정권과 관계없는 기관이다. 둘째, 유엔이 권고한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독립 기관화하라는 것이다. 유엔에서는 4년에 한 번씩 인권위 승인 심사를 하는데, 독립되어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심사 기준이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에서 한때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옮기면 어떻겠냐는 안을 낸 적이 있다. 인권을 잘 챙기려는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국제적인 규칙에 맞지 않기 때문에 유엔고등판무관실에서 인수위에 “위험한 일이다. 국제적으로 의심을 받을 것이다”라는 서신을 보내 접게 한 적이 있다.

‘독립’을 내용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제일 중요한 것이 행정부로부터의 독립이다. 인권위는 정부에  쓴소리를 하라고 만든 기관이다. 그만큼 독립성이 중요하다. 이래서 위원들의 임기도 보장했고, 인적 구성을 다원화했다. 아직 우리 사회에 국제적인 규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인권위도 국가 기관인데 왜 의견이 다르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인권위는 다르라고 만든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또 왜 정부하고 의견이 같으냐고 하는데 인권위는 시민단체로부터도 독립하라고 만들었다.

경제적으로 위기를 맞으며 상대적으로 인권의 중요성을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경제 문제 이면에는 왜 잘 살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개인이 잘 사느냐, 공동체가 잘 사느냐 할 때 나라는 공동체이다. 특정 계층만 잘 살아서는 안 된다. 이웃 공동체를 배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는 세계 10대 국가 수준이다. 하지만 OECD 국가 중 복지 예산은 30개 국가 가운데 30등이다. 엄청 뒤져 있다. 늘어난 것이 그 정도이다. 뒤져 있는데, 더 줄인다면 사회 통합에 부담이 된다. 경제적 약자에 대한 문제는 같이 가면서 조금씩 나눠서 가야, 단계적으로 조금씩 올려야 나라에 힘이 생긴다.

 어려워지면 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약해진다. 그럴 때 목소리를 내기 위한 주장이 나올 수 있다. 그때 정부가 어떤 식으로 듣느냐, 안 듣느냐가 중요하다. 자율권 문제인데 현명하게 풀어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 전체를 통합하는 데 지장이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유난히 법치가 강조되고 있다. 법치와 인권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기본적으로 같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질서를 너무 앞세우면 사람들의 목소리를 탄압하는 경향이 있다. 양쪽이 서로 보완 관계에 있기 때문에 한쪽이 강하게 하면, 특히 집행 권한을 가진 쪽에서 법치를 내세우면 단기적으로 통할지 몰라도 궁극적으로 수긍을 안 한다. 법치는 자발적인 시민사회의 성숙을 통해 이루어지지 공권력을 통해 진압하는 형식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법치는 중요하다. 하지만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는 인권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립 개념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인권의  가치를 법치 속에 포함시키는 것이 진보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 과정에 있다.

올해 들어와 인권위는 폐지가 거론되고 감사원 감사를 받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얘기하는 쪽에서 좌파, 좌파 할 때 나는 그 개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앞에다 ‘친북 좌파’라고 붙이기도 하던데 이런 것은 있을 수 없다. 대한민국 인권위 아니냐. 굳이 성격을 분석해 좌가 무엇이냐고 할 때 소수자 입장에서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좌라면 당연히 인권위는 좌에 서는 것이다. 거기에 서서 쓴소리를 하라고 만든 것이 인권위이다.

인권위의 업무 가운데 정치적인 잣대나 시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사건은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이 일상적인 사건이다. 약한 사람 입장에서 보라는 것이고 이것은 이념과 관계없다. 인권위는 지난 정부와도 불편한 관계가 많았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촛불 집회 때 경찰이 과도하게 진압해 참가자들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발표했는데.

촛불 집회와 관련한 인권위의 입장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인권위원들의 의견이 5 대 5로 팽팽했다고 보도했는데, 사실과 다르다. 거의 만장일치였다.

최근에는 인권위가 정부에 추천한 대한민국 인권상 후보를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아 파문이 일었다.
인권위가 주는 상 가운데는 인권위원장 이름으로 주는 것이 있고 정부의 훈장을 통해 주는 상이 있다. 훈장을 통해 주는 것은 우리가 행정안전부에 추천하는데, 행정안전부는 절차와 기준을 갖고 거르는 권한이 있다. 3년째 추천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행정안전부가 독자적인 판단권을 행사해 상을 상신하지 않았다. 이론적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인권위가 종이호랑이가 되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있다.

(웃음) 오히려 힘이 더 세진 것 아닌가. 왜? 인권위는 집행권이 없다. 정부에 권고하는 것이다. 권고를 잘 수용하면 힘이 생길까, 의견이 다를 때 더 힘이 생길까. 인권위는 국제적으로 위상이 높은 편이다. 이유가 뭐냐면 정부하고 불편한 관계에 많이 섰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정부와 불편한 관계에 섬으로써 위상이 높아진다. 요새 와서 인지도가 더 높아졌다.

정부가 중립적이라기보다는 입맛에 맞는 인권위원들을 임명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가능하다. 하지만 어떤 배경의 사람을 임명하든 간에 상식이 있다면 대부분의 인권 사건에서는 소수자 입장에 서게 되어 있다. 일을 해보면 별 문제 안 된다. 단, 다른 나라보다 인권위원들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검증이 약하다. 유엔으로부터도 지적받고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국회와 협의해 인권위원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투명한 절차를 보완하는, 즉 인사청문회 등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아직 우리 사회에 인권 분야에서 취약한 지점이 있다면 어디인가.

먼저 정신 장애인 문제이다. 신체 장애인은 지난 10년간 제도적인 개선이 많이 이루어졌다. 법도 생겼고, 국제 네트워크도 있고, 지원 단체도 많아졌다. 하지만 정신 장애인은 편견의 벽이 너무 심해 엄청난 인권 유린이 일어나고 있다. 인권위는 이와 관련해 국가인권보고서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내년 6월에 나올 것이다. 일반인과 언론이 갖고 있는 편견을 깨는 데 주력할 것이다.

또, 우리 사회는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다.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스포츠와 관련해서도 인권 유린이 심각하다. 공부도 안 시키고 운동 시키는 나라는 선진국에 없다. 이제는 국가 스포츠에서 개인·사회 스포츠로 이동해야 한다. 아동·노인의 인권 문제도 중요하다.

인권위 활동과 관련해 앞으로 주력하려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앞에서 말한 정신 장애인 보고서를 만드는 작업이 제일 우선이다. 그 다음에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 의장이 나올 수 있도록 기초를 다지는 일이다.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에는 1백20개국이 속해 있는데 우리는 부의장국이다. 2010년 3월에 새 의장국을 선출한다. 회장국은 대륙별로 돌아가는데 다음에는 아태 지역에서 할 차례이다. 의장국이 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국제적인 이미지에 크게 도움이 된다.

못 다한 말이 있다면?

좀 길게 보자. 지금은 과도기이다. 상당히 중요한 과도기이다. 인권은 정권에 관계없는, 영속적인 가치라는 인식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유엔의 권고 사항 중 하나가 인권위를 헌법 기관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희망을 잃지 않고 열정을 가지고 일할 것이다.

정면으로 싸울 때가 있고 기다릴 때가 있다. 정부가 힘이 있고 강해서 힘을 남용할 때는 싸워야 한다. 하지만 힘이 없고 약하고 곤경에 처해 있으면 여유를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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