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으로 살아날 수 있을까
  • 김영화 (한국일보 기자) ()
  • 승인 2008.12.09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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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이념·노선·정체성 따라 당내 ‘교통정리’ 중…신주류·중도 진보·중도 보수로 ‘삼분’


민주당 내부에서 이념과 노선, 정체성에 따른 세분화가 활발해지고 있다. 위기에 처한 민주당이 살아남기 위해 본격적으로 진로 찾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는 7·6 전당대회 이후 ‘정세균 대표를 중심으로 단일 대오를 형성해야 한다’라는 공감대가 흐르고 있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형국이다. 실제로 이전까지만 해도 계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옛 열린우리당 시절의 학습 효과 때문이다.

지난 노무현 정부 때는 초기부터 현상 유지를 주장한 실용파와 민주당을 해체하고 신당을 창당해야 한다고 주장한 강경 개혁파 간에 첨예한 대립이 있었다. 이후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개혁 입법 때도 당은 두 개로 쪼개졌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라는 자조가 당을 떠나지 않았던 시기였다.

물론 이때의 계파가 돈과 공천을 매개로 한 과거의 구태를 반복했던 것은 아니었던 만큼 당시 열린우리당이 받았던 비판은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다. 어떻게 보면 정치권이 이념과 노선, 정체성에 따라 이합집산을 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특히 이명박계, 박근혜계 하는 식으로 구분되는 한나라당의 계파 정치보다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대선과 총선에서 잇따라 패배하자, 과거의 열린우리당처럼 비쳐서는 안 된다는 경계 의식이 조건반사처럼 발동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숨죽이고 있던 다양한 계파들이 하나 둘씩 세 규합에 나서는 이유는 한 가지이다. 바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죽을 쑤는데도 제1 야당의 지지율은 더욱 바닥을 기는 현실이다. 더 이상 침묵이 금은 아니라고 판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5개월 전 출범한 정세균 체제의 목표는 ‘강하고 능력 있는 야당’이었다. 정부 여당의 독주를 막는 반대 여당(oppositon party)의 역할을 분명히 해내면서 동시에 정책 대안 능력을 길러 국민에게 수권 정당의 이미지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정대표는 이를 “싸울 것은 싸우고 협조할 것은 협조하는 생산적 여야 관계를 정립하겠다”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정대표가 이명박 대통령과 국정 동반자 선언을 하고 정부의 1천억 달러 지급보증안에 합의해준 9월 청와대 회동의 결과는 참담했다. 이후 경제팀 경질, 부자 감세 철회, 대북 정책 전환, 과거 회귀 입법 반대 등 야당의 목소리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민주당으로서는 뭔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철저히 외면당했던 야당 목소리 되살리자”

이 무렵 등장한 것이 ‘민주연대’와 ‘민주시니어모임’이다. 당내 여러 계파 가운데 두 모임은 정세균 체제의 진로에 대해 서로 정반대의 해법을 내놓는다는 점에서 가장 주목되고 있다. 12월2일 공식 출범한 민주연대는 현 상황을 타개하려면 진보 개혁 색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룹이다. 김근태 전 의원,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 천정배 의원, 이미경 사무총장 등이 지도위원을 맡았고, 유선호·문학진·박영선·장세환·최문순·우윤근·백원우·김상희 의원 등 현역 의원 17명과 전직 의원 35명이 참여했다.

▲ 민주당 내 진보 성향의 전·현직 의원들로 구성된 민주연대가 창립대회(위)를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시사저널 유장훈

민주연대는 창립 선언문에서 “개혁성을 대폭 강화해 선명 야당의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한다”라고 선언했다. 또 민주당, 민주노동당, 촛불 세력, 시민단체들의 민생민주대연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정세균 대표 체제가 ‘야당다운 투쟁’을 제대로 하지 못해 지지율이 정체되었다고 본다. 현재 공동대표는 이종걸·최규성·최규식 의원이다. 이들은 각각 천정배계, 김근태계, 정동영계를 대리하는 인물이어서 민주연대가 당내 비주류 연합이라는 다소 부정적 시각도 있다. 어쨌든 앞으로 정세균 대표 체제는 당에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는 이들 비주류측의 강경 투쟁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민주시니어모임은 외형상 60세 이상의 모임이면서 당내 중도 보수 세력을 망라하고 있다. 김성순 의원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으며 김진표·강봉균·홍재형·박상천·신낙균·최인기·김충조·이시종·박지원 등 총 15명의 현역의원이 회원이다.

이 가운데 강봉균 의원은 최근 인터뷰에서 “국민이 야당에 기대하는 것은 투쟁성이 아니라 경제 위기 상황에서 국민의 희생과 고통을 줄이는 것을 앞장서서 푸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대안 야당 또는 정책 야당으로서의 정체성 강화를 주문한 것이다. 민주시니어모임 소속 인사들도 대다수가 이같은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민주시니어모임이 최근 정세균 대표를 초청한 자리에서는 “남북 문제도 민주당이 이명박 정부만 잘못한 것으로 하지 말고, 북한도 잘못했다는 양비론으로 나가야 한다”(홍재형 의원), “야당에 반드시 진보만 있다고 보지 않으며 보수 야당도 있을 수 있다”(이시종 의원) “민주당이 민노당과 공조하는 데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있다”(최인기 의원)라는 등의 주문이 나왔다.

이종걸·장세환·문학진·최문순·이춘석·안규백 의원 등이 최근 결성한 ‘국민과 함께 하는 9인 모임’(이하 국민모임)은 민주연대의 전위부대격이다. 국민모임 참가자의 상당수는 민주연대 소속이기도 하다. 국민모임 핵심 관계자는 “민주연대가 너무 커지는 바람에 성격이 애매해진 측면이 있다. 현역 의원 위주의 기동력 있는 활동을 펴기 위해 모임을 따로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이념 지형으로 볼 때 정세균 대표와 원혜영 원내대표를 주축으로 한 신주류는 민주연대와 민주시니어모임의 중간에 위치한다. 송영길 최고위원, 박병석 정책위의장, 강기정 대표비서실장, 최재성 대변인, 서갑원 원내수석부대표, 조정식 원내대변인 등 현재 정세균 체제의 주요 당직을 맡고 있는 인사들이 여기에 속한다.

정세균 대표, 강경 기조 쪽으로 무게 중심 옮기나

이들 대부분은 당내 386의 리더격인 송영길 최고위원이 18대 국회 초반 만든 ‘개혁과 미래 모임’(이하 개미모임) 출신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현재 개미모임에는 송영길·강기정·김동철·강성종·최재성·안민석·백원우·조정식·노영민·양승조·서갑원·김재윤·전현희·이춘석 김유정 등 현역 의원 15명이 소속되어 있다. 다만, 이미 상당수가 당의 주류로 부상해 현재는 공개 활동이 뜸한 편이다.

문희상 국회부의장, 김효석 민주정책연구원장과 국회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낙연·김부겸·정장선 의원 등 중진 그룹은 신주류의 우호 그룹이다. 요즘 이들도 공개적으로 당의 진로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도 김부겸 의원이 “지금 상황에서는 선 반대 야당-후 대안 야당이 맞다”라고 밝힌 것이 화제가 되었다. 당내 대표적 온건파이자 대안 야당론자인 그마저 ‘반대 정당’이 먼저라고 말했다는 것은 정세균 대표 체제가 일정 정도 강경 기조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올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크게 보면 민주당은 신주류, 중도 진보 진영, 중도 보수 진영 등 세 그룹이 삼분할 하는 양상이나, 이들 간의 갈등이 표면화한 단계는 아니다. 현재로서는 민주당의 진로를 모색하기 위한 백가쟁명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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