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도시, 할 거야 말 거야”
  • 김지혜 (karam1117@sisapress.com)
  • 승인 2008.12.30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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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기관들의 지방 이전 계획, 정권 교체 후 ‘느림보 행보’…부산·전북 등 사업 위기

▲ 혁신도시 예정지인 부산시 남구 문현동 문현지구에 컨테이너 박스 5천여 개가 방치되어 있다. ⓒ뉴시스

 ‘부산 혁신도시 사업 먹구름’ ‘부산 옮겨올 공공 기관 이전 승인 왜 늦어지나’. 2008년 12월19일자 부산일보의 기사와 사설 제목이다. 부산만 이런 것이 아니다. 새전북신문은 2008년 12월22일 ‘혁신도시 속빈 강정으로 전락했다’라며 전북의 2대 중요 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노무현 정권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혁신도시 사업의 핵심인 공공 기관들의 지방 이전 계획이, 정권이 바뀌면서 느림보 행보를 계속하자 지방의 민심이 술렁이고 있다. 이전 대상인 일부 공기업들은 노골적으로 “민영화한다는데 내려갈 필요가 있느냐”라며 버티는 흐름까지 나타나고 있다. 혁신도시 사업이 위기에 처하자 지역 언론들은 정치권 인사들에게 이 문제의 해결에 힘쓸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고, 일부 지역의 경우 언론사들이 결의대회를 갖기도 했다. 그만큼 혁신도시 사업의 성패에 따라 지역 발전이 갈림길에 선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분통을 터뜨리는 곳이 부산시이다. 국토해양부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 여러 차례에 걸쳐 “혁신도시 부지를 사용할 수 있는 행정 절차와 기반 조성 사업이 완료되었으니 공공 기관의 지방 이전 계획을 빨리 심의·확정해달라”라고 요청했으나 승인이 미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 산업’ 기능을 강조한 혁신도시 예정지인 부산시 남구 문현동 문현지구에는 현재 컨테이너 박스만 5천여 개가 쌓여 있다. 계획대로라면 공사가 한창이어야 하지만 공공 기관의 입주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찬바람만 불고 있다.

현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통폐합 정책도 ‘걸림돌’


부산에 옮겨올 예정인 13개 공공 기관 가운데 현재 승인을 받은 곳은 국립수산물품질검사원과 국립해양조사원 두 곳에 불과하다. 규모가 작은 기관들이어서 기대 효과가 크지 않다. 나름대로 규모가 있는 한국주택금융공사·증권예탁결제원·영화진흥위원회 등은 승인에서 빠졌다. 혁신도시 사업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한나라당 유재중 의원은 “정부가 혁신도시를 추진하겠다고 했으면 정권이 바뀌었어도 쟁점 사항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국토해양부도 국가균형발전위도 1년이 지나도록 묻어두기만 하고 있다. 지역으로서는 생존이 걸린 문제인데 불확실성을 키우면서 공공 기관 이전을 미루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를 들면 영화진흥위원회 같은 경우 부산으로 이전하려면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종합촬영소를 이전해오는 것이 핵심인데 영화계가 극력 반대하고 있다. 영화 촬영 기반의 대부분이 서울에 있는 만큼 일부를 남겨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산시는 모두 옮겨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지자체와 이전 대상 기관 사이에 갈등이 생길 경우 정부가 나서서 중재나 조율을 해주어야 하는데 팔짱만 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공기업 선진화 방안’이나 ‘공기업 통폐합’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혁신도시 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 입장에서는 달가운 일만은 아니다. 한국전력·한국주택공사·한국토지공사 등 일찍이 이전 승인이 난 공공 기관들도 정부의 구조조정이나 통폐합 대상에 포함되면서 어느 혁신도시로 이전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민영화 대상인 공공 기관들이 “애초에 우리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민영화된다면 의무적으로 내려갈 필요가 없지 않느냐”라며 버티는 분위기까지 감지되고 있다. 정부는 “상황을 지켜보며 공공 기관 이전 문제를 결정하자”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경상남도와 전라북도는 이 문제 때문에 얼굴을 붉히며 감정싸움까지 하고 있다. 한국토지공사(이하 토공)가 전북 전주로 이전하게 되어 있고 대한주택공사(이하 주공)가 경남 진주로 이전하기로 했는데 정부가 두 기관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라북도는 지역민들의 숙원 사업인 혁신도시 사업이 축소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국회에 상정한 ‘토·주공 통합 법안’이 통과되면 토공이 주공에 흡수되면서 경남 진주로 이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북은 2007년 12월 일찌감치 토공 이전을 승인받은 상태이다.

이 때문에 전북 지역 의장단 협의회, 전북혁신도시 공공 기관이전 범도민 비상대책위원회·전북도의회 등은 주공과 토공의 통폐합 법안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냈다. 강세철 전북 혁신도시추진단장은 “전북 혁신도시 사업에서 토공이 차지하는 비율은 80~90%이다. 토공이 2007년에 성남시에 낸 지방세는 4백73억원인데 이것은 전북에 이전해올 공공 기관이 내는 세금의 99%이다. 토공이 오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혁신도시 사업은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강경하기는 경남도 마찬가지이다. 김태호 경남도지사는 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을 만나 주공과 토공의 통합 본사가 진주로 이전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경남 진주가 지역구인 한나라당 김재경 의원도 “민주당과 전라북도가 통합 본사를 전라북도 전주에 유치하려고 시도하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라고 밝혔다. 정부의 공공 기관 통폐합 정책이 혁신도시 사업과 얽히면서 지역 간에 감정 싸움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 2008년 11월18일 오전 전주시 고사동 오거리광장에서 열린 혁신도시 전주·완주 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자체들 생존 걸린 문제…지역민 정서 고려해 조속히 해결되어야

전라북도 혁신도시 추진 부서의 한 관계자는 “국토해양부에서는 전북과 경남의 갈등에 대해 ‘중재안이 있다’ ‘대책이 있다’라고 하던데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통폐합 법안이 통과되기를 기다리는 그들의 입장은 알겠지만, 중간에 끼어 막연히 기다리는 우리는 혹여나 반 토막짜리 혁신도시가 되지 않을까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이들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겉으로는 무난하게 진행되고 있는 듯한 지자체들도 답답함을 호소한다. 대구시 관계자들은 국토해양부에서 연말에 승인 결정이 끝날 것이라고 암시를 주었지만, 결과는 아직도 안갯속이라고 말한다. 대구시는 통폐합 대상인 여섯 개 공공 기관의 이전 승인을 목전에 두고 있다. 김현호 대구시 혁신도시 지원단장은 “지역민들은 하루빨리 공공 기관이 이전해오기 위해 승인 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해당 정부 기관에서는 민첩하게 결정해주지 않고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정보도 잘 안 알려주어서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혁신도시를 한다고 했으니 될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자는 입장이지만 내심 불안하다는 것이다. 김단장은 만일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제3의 공공 기관을 찾아보거나 국가에 인센티브를 요구하는 등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전남, 충북, 강원, 울산, 경북, 제주 등 다른 지역들도 상황이 비슷하다.

경제정의실천연합 윤순철 시민감시국장은 “지방은 혁신도시 사업이 조속히 진행되어 경제 활성화의 계기가 되기를 절실히 바라고 있다. 정부와 해당 기관이 이렇게 소극적인 것을 보면 규모가 축소되거나 성격이 바뀔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애초에 계획한 대로 지역 발전이나 자기 비전에 맞게 추진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광주경실련의 최주영 간사는 “혁신도시만으로 지역 균형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남 광양제철소가 광양을 먹여살리듯 큰 공공 기관 하나가 오는 것이 지방 경제에는 굉장히 중요하다. 절실히 원하는 지역민들의 정서를 고려해서 혁신도시 사업은 조속히 추진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전 지역

할당된 공공 기관

이전 계획안 승인 기관

부산

국립수산물품질검사원, 국립해양조사원, 한국행양수산개발원, 한국해양연구원, 대한주택보증㈜, 증권예탁결제원, 한국자산과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게임물등급위원회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한국남부발전㈜, 한국청소년상담원 13개 기관

국립수산물품질검사원,국립해양조사원 2개 기관

대구

신용보증기금, 한국산업기술평가원, 한국산업단지공단, 교육과학기술연수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한국사학진흥재단, 한국학술진흥재단, 중앙신체검사소, 한국가스공사, 한국감정원, 한국정보사회진흥원  11개 기관

한국산업단지공단, 한국학술진흥재단, 중앙신체검역소, 한국가스공사, 한국정보사회진흥원
5개 기관

광주·전남

한국전력거래소, 한국전력공사, 한전KPS㈜, 전파연구소, 우정사업정보센터, 컴퓨터프로그램보호위원회, 한 국전파진흥원, 농업연수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한국농촌공사, 농수산물유통공사, 저작권위 원회, 사립학교교직원연금관리공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한전KDN, 국정보보호진흥원 17개 기관

한국전력거래소, 한국전력공사, 한전KPS, 한전KDS, 전파연구소, 농업연수원, 한국전파진흥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한국농촌공사 9개 기관

울산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관리공단, 한국동서발전㈜, 한국석유공사, 근로복지공단, 노동부 종합상담센터, 한국산재의료원, 한국산업안전공단, 한국산업인력공단, 국립방재연구소, 운전면허시험관리단 11개 기관

에너지경제연구원, 한국동서발전㈜, 한국석유공사, 노동부 종합상담센터, 한국산재의료원, 한국산업인력공단 6개 기관

강원

광해방지사업단, 대한광업진흥공사, 대한석탄공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 대한적십자사,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국립공원관리공단, 한국관광공사,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도로교통공단, 한국지방행정연구원 12개 기관

광해방지사업단, 대한광업진흥공사, 국립과학수사연구소 3개 기관

충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법무연수원, 한국인터넷진흥원, 중앙공무원교육원, 한국교육개발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한국노동교육원,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한국소비자원, 기술표준원 12개 기관

정보통신정책연구소, 한국교육개발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기술표준원 4개 기관

전북

대한지적공사, 한국토지공사, 농업공학연구소, 농업과학기술원, 농업생명공학연구원,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 작물과학원, 축산과학원, 한국농업대학, 지방행정연수원,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한국식품연구원, 한국전기안전공사 14개 기관

한국토지공사, 농업과학수기술원,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 작물과학원, 축산과학원, 한국농업대학 7개 기관

경북

교통안전공단, 한국건설관리공사, 한국도로공사,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국립수의과학검역원, 국립종자원, 국립식물검역소, 기상통신소, 대한법률구조공단, 우정사업 조달사무소, 품질관리단, 한국갱생보호공단, 한국전력기술㈜ 13개 기관

한국도로공사,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국립수의과학검역원, 국립종자원, 기상통신소, 국립식물검역소, 우정사업 조달사무소, 품질관리단 8개 기관

경남

대한주택공사, 주택관리공단, 한국시설안전기술공단, 요업기술원, 중소기업진흥공단, 한국산업기술시험원, 한국전자거래진흥원, 국민연금공단, 국방기술품질원, 중앙관세분석소, 한국남동발전㈜,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 12개 기관

대한주택공사, 요업기술원, 한구남동발전㈜ 3개 기관

제주

재외동포재단, 한국국제교류재단, 국토해양인재개발원, 국세공무원교육원, 공무원연금관리공단, 국세종합상담센터, 국세청 기술연구소, 국립기상연구소, 한국정보문화진흥원 9개 기관

국토해양인재개발원, 국세공무원교육원, 국세종합상담센터, 국세청 기술연구소, 국립기상연구소 5개 기관

합계

124개 기관

52개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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