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대던‘성형 타운’에 찬바람만 ‘휭’
  • 김지혜 (karam1117@sisapress.com)
  • 승인 2009.01.06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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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고려하는 병원 속출…인수·합병설도 해외 진출로 살길 찾았지만 줄줄이 ‘허탕’

▲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성형업계가 경기 불황이 깊어지면서 빈사 상태에 빠졌다. 수입이 예전만 못하다는 빈 소리 정도가 아니라 아예 폐업을 고려하는 업체가 수두룩하게 생겨날 만큼 심각하다. 개원한 성형외과들의 2008년 총 매출은 2007년에 비해 대략 20~30% 줄었고, 경기 침체가 더해진 2008년 하반기의 매출만 비교해보면 50%까지 줄었다고 한다. 화려한 인테리어와 적극적인 홍보를 펼치며 성형 붐을 주도했던 지하철 압구정역 근처의 병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지난해만 해도 예약이 밀려 1주일은 기다려야 상담을 받을 수 있었던 압구정동 J성형외과. 매년 12월부터 2월 사이에 이곳은 수능을 마친 대학 입학생들, 방학을 맞은 중·고등학생들, 인상을 바꾸려는 취업 준비생들로 항상 긴 소파가 가득 찼었다. 심지어 자리가 없어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2009년 1월에 찾아간 이 성형외과의 풍경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사람들로 붐비던 소파에는 짝지어 앉은 두세 팀밖에 없었다. 성형외과개원의사회에 소속된 한 전문의는 “전에는 인기 성형외과에서 상담을 받으려면 최소한 하루 전에는 예약을 해야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과장을 좀 보태 병원에 찾아오면 곧장 수술받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성형외과들은 환자가 절반으로 줄어들어 전전긍긍하면서도 겉으로는 “우리만은 (실력이 뛰어나서) 불황을 모른다”라고 홍보한다. 혹여 소문이 나면 명성에 금이 가서 그나마 찾아오던 환자들까지 떨어져나갈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현재 압구정동에 모여 있는 성형외과는 대략 3백여 개, 이 중에 15여 개의 성형외과는 공식적으로 폐업을 선언하고 매물로 나와 있다. 비공식적으로는 50여 곳의 성형외과가 알음알음으로 지인들을 통해 병원을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압구정동에서 이종희성형외과를 운영하는 이종희 원장은 “50여 개 병원이 폐업을 준비한다면 매출 차이가 크지 않은 다른 100여 개 병원도 사실상 어렵다는 뜻이다. 요즘 성형외과들은 수입이 예전 같지 않다고 엄살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정말 임대료와 직원 월급을 주지 못해서 몇 달씩 밀린 곳들이 많다”라고 전했다.

환자 줄어든 데다 반값 성형 등 출혈 경쟁으로 ‘빈사’ 상태

대형 성형외과들의 인수·합병설과 매각설도 떠돈다. C성형외과는 강남과 압구정동 병원을 동시에 운영하다가 압구정점으로 합쳤고, G성형외과도 삼성·강남·영등포점을 운영하다 한 곳을 폐쇄했다. 인기 성형외과들조차 환자가 줄어들어 더 이상 유지하거나 관리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몸집을 줄이고 있는 것이다.

성형외과 의사들은 지금의 상황을 ‘2~3년 전부터 불어닥친 총체적 난국’이라고 표현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성형외과들은 탄탄대로를 달렸다. 특히 압구정동 성형외과들이 승승장구하자 너도나도 이곳에 병원을 열어 거대한 ‘성형 타운’을 형성했다. 병원들은 환자들의 눈에 들기 위해서 좋은 목에 비싼 임대료를 내고 개원한 뒤 인테리어 치장에 돈을 쏟아부었다. 홍보대행사를 두고 마케팅에도 열을 올렸다. 3~4년 전까지는 그런대로 이런 비용들을 감당할 수 있었다. 위치적인 이점, 화려한 인테리어, 적극적인 홍보 등을 이용해 환자를 끌어오는 전략이 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형외과가 ‘돈 되는 시장’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부터 성형 전문의 자격증이 없는 의사들까지 몰려들어 ‘성형외과 과잉의 시대’가 되었다. 병원마다 손님이 예전만큼 오지 않자 비싼 임대료, 인테리어 비용, 유지·관리비, 홍보비가 부담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연말에 경제 불황까지 겹치자 직격탄을 맞았다. 지금 성형외과들은 출산율 저하로 미용 인구가 줄어드는 것마저 부담으로 느낄 지경이라고 한다.

성형외과들이 어려워지다 보니 반값 성형, 친구 동반 할인, 1+1 행사, 성형 공동 구매 등 무분별하게 성형을 조장하는 이벤트가 암암리에 이루어지고 있다. 공개적이지는 않지만 친구를 데리고 가거나 가격을 잘 흥정하면 30%까지 할인해주는 성형외과도 많다. 예전 같았으면 인근 병원에서 의료법 위반으로 신고도 하고 경계도 했겠지만 지금은 의외로 조용하다. “얼마나 어렵고 답답하면 그러겠는가”라며 서로 동정하고 있다.

한때 성형외과들은 여행사 직원이나 동남아 현지인을 고용해 동남아 관광객들에게 한국에 들러 성형을 받도록 하는 ‘성형 패키지’를 기획하기도 했다. 대구시의 경우에는 ‘메디시티’를 표방하며 지자체가 직접 ‘성형 관광객’ 유치에 나서기도 했다. 태국 유명 연예인들도 다녀가고 많은 수익을 올렸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 있는 성형외과 의사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언론에 46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고 보도된 요셉성형외과의 박성근 원장도 그렇다. 그는 “실제로 성형을 받은 사람은 중국인이 15명 정도이다. 46명은 동반한 가족이나, 상담만 받고 간 사람들 모두를 포함한다. 사실 외국인이 오면 통역도 필요하고 스케줄 변동도 잦아서 병원 입장에서는 오히려 힘들다. 장기적인 시장을 보면 몰라도 당장의 수익 창출에는 의미가 없다”라고 털어놓았다.

살길을 찾아 중국과 동남아 등지로 직접 진출하려는 성형외과들도 있다. 하지만 성형외과개원의사회 국광식 이사는 “미리 진출한 성형외과들 90% 이상이 줄줄이 되돌아오고 있다. 투자 회수도 힘들다”라고 말했다.

현지에 남아 있는 병원들도 당장 수익보다 10년 이후를 내다보며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칭다오에서 가슴 성형, 지방 흡입 등을 하는 벨라쥬 여성병원 역시 현재 수익은 없지만 장기적인 투자라는 개념으로 병원을 유지하고 있다. 벨라쥬 여성병원 관계자는 “1년 반 정도 되니 입소문을 타고 환자가 한국인에서 조선족으로, 그리고 중국인들로 조금 확대되었다. (외부에서 투자하지 않아도 되는) 독립적인 병원으로 서려면 최소 3년 이상은 걸릴 것 같다”라고 말했다.

뾰족한 대책 없어…“성형업계 체질 개선할 계기” 목소리도

동남아에 진출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2006년 베트남에 진출한 5개의 병원 중에 3개의 병원만 살아남았다. 그중 하나가 ‘한베성형외과’이다. 이 병원 원장인 이병렬 원장은 동남아 진출을 꿈꾸는 성형외과 의사들 수십 명에게서 문의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이원장은 “병원에서 나는 수익은 없고 유지만 하는 중이다. 베트남에서는 쌍커플 수술 비용이 현재 환율로 15만원 정도이다. 나의 경우는 부산에서 운영하는 성형외과가 안정적이므로 10년 후의 시장을 개척한다는 생각으로, 또, 서울처럼 잦은 성형 시술의 기회가 없으니 메스 실력을 수련한다는 의미로 베트남 병원을 운영한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시장을 찾아 인도네시아에 진출하려는 이종희 원장도 “오랫동안 다져온 인도네시아 현지 인맥이 있어서 국가에 기부금을 내고, 의료봉사를 한다는 조건 하에 라이선스를 보장받았다. 외국인들에게 라이선스를 잘 내주지 않기 때문에 섣불리 가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성형외과들의 상황에 대해 요셉성형외과 박성근 원장은 “다들 어렵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다. 불경기가 끝날 때까지 오직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쓸 뿐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력 경쟁 대신 화려한 인테리어와 홍보 경쟁으로 환자를 끌어들이고 성형 비용을 올리던 성형업계가 체질을 개선할 계기라는 목소리도 있다. 성형외과개원의사회 국광식 이사는 “의사가 2~3명인 성형외과들까지 지나칠 정도로 규모를 키워놓았다.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곳들도 좀더 지나면 적정 수준으로 구조조정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FL성형외과와 한베성형외과를 운영하는 이병렬 원장은 “오히려 동네 성형외과들의 상황이 낫다고 할 수 있다. 화상 치료도 하고 아이들 얼굴 찢어진 것도 치료한다. 환자들도 홍보와 인테리어에 혹하는 대신 실력이 검증된 전문의를 찾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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