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 부활 기지개 켜다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9.01.1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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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PK 세력에 밀려 있던 TK 인맥이 정부 부처의 인사 개편과 맞물려 새롭게 주목되고 있다. 상당수가 핵심 요직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월6일 오후 6시30분,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는 ‘2009 재경 대구·경북인 신년교례회’가 열렸다. 대구·경북(TK) 출신으로 서울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새해 인사를 하는 자리였다. 이날 김범일 대구시장은 신년사에서 “그동안 (대구·경북은) 차별받아 침체의 골이 깊었다. 하지만 올해는 굵직한 사업을 유치하는 등 희망의 한 해를 맞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은 “침체된 분위기가 점점 살아나고 있다. 이런 기운을 살려 대구·경북이 부국강병의 중심이 되자”라고 강조했다. 행사장에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수십 명의 국회의원들과 최시중 방통위원장, 권재진 대검 차장 등 관계 인사들 그리고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 최원병 농협 회장,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 같은 금융·기업인 등 각계 인사 1천여 명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 청와대 인사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감사원·국세청 인사에서도 ‘약진’

▲ 남일호 감사원 감사위원. ⓒ시사저널 이종현

이날 모임은 최근 여권 물밑에서 일고 있는 ‘대구·경북(TK)의 부흥’을 외치는 목소리를 보여주는 한 풍경이다. 이런 흐름은 향후 전개될 공직 인사에서 전면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관가는 1급들의 사표를 받은 교육과학기술부, 국세청, 농림수산식품부, 국토해양부를 중심으로 인사 태풍이 불고 있다. 이들뿐 아니라 다른 부처들도 인사 바람에 크게 술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후속 인사가 늦어지면서 공백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검찰 고위직들의 교체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관가에서는 ‘TK의 물밑 대약진’이 현실화했다고 보면서 흐름을 주시하고 있다.

국세청과 감사원의 인사가 시작이다. 최근 정부 기관 가운데 인사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곳이 이들 두 곳이다. 감사원은 ‘쌀 직불금’ 파문 이후 일괄적으로 사표를 제출한 여섯 명의 감사위원(차관급) 가운데 김종신 감사위원의 사표를 수리했다. 남일호 사무총장이 그 자리를 차지했고, 사무총장에는 성용락 제1사무차장이 승진 임명되었다. 공교롭게도 남위원은 경북 안동, 성총장은 경북 영천 출신이다. 

▲ 이현동 서울지방국세청장. ⓒ국세청 제공

국세청은 지난해 12월31일 본청 조사국장을 포함한 고위직 14명의 인사를 단행했다. 1급 세 명의 사표를 수리한 데 이어 제일 발 빠르게 인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 언론은 이번 국세청 인사의 특징을 ‘대구’라고 표현했다. 부산 출신이지만 대구지방국세청장으로 있다가 영전한 채경수 국세청 조사국장, 경북 청도 출신인 이현동 서울지방국세청장, 경북 상주 출신인 김연근 서울청 조사4국장 등에 주목한 것이다. 직전 조사국장이었던 이현동 청장도 대구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서울청 4국은 특별세무조사를 담당하는 요직이다. 노무현 정권에서는 ‘부산’이 주목되었다. 부산청에 있던 인물들이 줄줄이 승진했기 때문이다. 권력에 따라 춤추는 관가 인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전환 국세청 기획조정관, 이번 인사에서 외부 파견자로 내정된 조현관 전 서울청 조사3국장, 서울청 국제거래조사국장이 된 임환수 전 중부청 조사1국장 등은 지난해 4월 인사에서 새롭게 고위 공무원단에 올라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TK 인물들이다. 현 정권 들어 국세청은 청와대 비서실에 다섯 명을 파견했는데 그중 네 명이 TK 출신이었다. 충청 출신인 한상률 국세청장이 TK 인맥을 개척하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공을 들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시사저널 유장훈

청와대, TK 출신 행정관 다수

▲ 성용락 감사원 사무총장. ⓒ시사저널 이종현

감사원과 국세청 인사에서 드러난 ‘TK’가 향후 공직 인사에서도 주목될 것이라고 점쳐지는 이유는 청와대와 TK 지역의 기류 때문이다. 현재 청와대 직원 가운데 TK 출신이 얼마나 되는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야당 의원들이 관련 자료를 요청했으나 청와대는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무직으로 청와대에 들어간 행정관급 인사의 상당수가 TK 출신이라는 것은 정가에 널리 알려진 일이다. 특히 인사와 사정·정무 분야에 널리 포진해 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사방을 둘러보면 TK 출신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행정관급과 달리 수석비서관 이상에는 TK 출신이 한 명도 없다. 정권 초기 청와대 수석비서관 인사 10명 중 네 명이 TK 출신이었는데 류우익 전 비서실장, 곽승준 전 국정기획수석비서관, 이주호 전 교육과학문화비서관, 박미석 전 사회정책수석 등이 ‘촛불’과 구설에 휘말려 사퇴했기 때문이다. 정정길 대통령비서실장은 경북고를 나왔지만 고향은 경남 함안이다. TK 지역의 한 언론은 “TK 인사가 물러난 자리를 박재완 국정기획수석, 박병원 경제수석, 박형준 홍보기획관 등 부산·경남(PK) 인사가 채웠다”라고 보도했다.

TK 인사들은 ‘PK 수혜론’을 곧잘 거론한다. “지난 정권에서 잘나갔는데 TK 정권이 들어선 지금도…”라는 불만이다. 이들은 김형오 국회의장,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홍준표 원내대표, 안경률 사무총장 등 당 핵심부 인사 그리고 정정길 대통령비서실장 등이 모두 PK출신이라는 데 주목한다. 국세청을 포함한 4대 권력 기관 가운데 김성호 국정원장, 임채진 검찰총장, 어청수 경찰청장 등 세 명이 PK 출신이라는 것도 빠지지 않는다. TK 지역에서 오랫동안 여론조사 활동을 해온 에이스리서치 조재목 사장은 “PK는 그동안 인맥이 계속 이어져왔다. 하지만 TK는 지난 10년간 머리는 물론 허리까지 없어졌다. 사람을 쓸려고 해도 찾기가 힘들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우리가 정권을 만들었는데…’라며 지역에서 난리가 났었다”라고 말했다.

MB 정부 각료의 23.8%<신동아>가 행정안전부 문건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명박 정권의 초대 장관급 이상 각료의 경우 TK 출신의 비율이 23.8%에 달했다. 전두환·노태우 내각 때의 7.1%, 12.5%와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비율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TK 소외론’은 실제보다 과장되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도 고위직, 고위직이 아니라면 핵심 요직에 TK 출신들의 진출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당장 주목되는 것이 경찰이다. 경찰은 어청수 경찰청장의 퇴임설이 확산하는 가운데 경북 영일 출신인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이 주목되고 있다. 김청장은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나온 대구 대륜고를 졸업했다. YTN은 지난 1월8일 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어청수 청장이 주말에 교체될 것이 확실시된다. 후임에는 김석기 서울청장이 유력하다”라고 보도했으나 청와대는 즉각 부인했다. 그러나 경찰 내부에서는 “어청장이 퇴임한다면 김청장 외에 대안이 없다”라는 분위기가 일반적이다. 경찰의 한 고위 인사는 “어청장이 퇴임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퇴임한다면 김청장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흐름이다”라고 전했다.

다만, 여권 일각에서 정치적인 부담이 클 수 있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부분이 눈에 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여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최시중 위원장의 직계 후배라는 점이 정무적인 차원에서 보았을 때 부담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김청장이 경찰청장이 되면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TK 출신 고위 인사들이 은근히 김청장의 영전을 반기지 않는다는 말도 돌고 있다.

만약 최근 예상대로 경찰청장과 국정원장이 교체되고 그 자리에 김석기 청장과 김경한 법무부장관이 간다면 사정 기관장 네 자리 가운데 두 자리를 TK 출신이 차지하게 된다.

검찰은 임채진 검찰총장의 거취가 주목되는 가운데 큰 폭의 검사장 인사가 점쳐지고 있다. 임총장의 연수원 바로 아래 기수인 김태현 법무연수원장과 박영수 서울고검장을 비롯해 4~5명의 용퇴가 확실시되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물갈이 폭이 커지면서 최대 아홉 명까지 검사장 승진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임총장은 유임될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나 촛불 집회 당시 검찰이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최근 있었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수사에 대해 여권 핵심부 일각에서 “제대로 하지 않았다”라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 변수이다.

“지금은 몸풀기 단계에 불과”

▲ 김경한 법무부장관. ⓒ시사저널 이종현

검찰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검찰 인사에서 TK 출신 네 명이 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내부에서 말이 많았다. 모두들 이번 인사를 주시하는 분위기이다”라고 말했다.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지난 1월8일 국회 법사위에서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특정 지역 출신들이 힘 있는 요직을 독점하고 있고 앞으로의 인사에서도 그럴 우려가 있다”라고 하자 “지역 안배를 잘 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답변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지난해 일을 거울삼아 TK 출신들이 수적으로 약진하기보다 핵심 요직에 포진하는 형태를 나타낼 것으로 보고 있다. 박용석 중수부장의 거취와 곽상도 서울고검 검사, 김수남 서울중앙지검 3차장, 박청수 서울남부지검 차장, 이득홍 서울북부지검 차장 등이 주목되고 있다.

에이스리서치 조재목 사장은 “친이명박-친박근혜로 나뉜 TK 지역 정치권 상황도 지역민들이 불만을 갖는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국회의원들 중에 친박 쪽도 많은데 화합이 안 된다. 박근혜 전 대표 중심으로 돌아가니 친이명박계 인사들은 갈 곳이 없다고 말한다. 서로 화합하고 친박·친이를 떠나 인재를 등용하라는 것이 지역민들의 바람이다”라고 전했다.

사정 기관에 근무하는 한 TK 인사는 “정무직이나 공공 기관들과 달리 공무원 인사는 내부의 서열 등 따져야 할 요소들이 많다. 지금 나타나는 인사 흐름은 오히려 2~3년 뒤를 예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고위직보다 각 부처 중간 단계에서 오히려 약진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몸풀기 단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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