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악몽’에 숨은 미스터리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2.03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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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자 연쇄 살해범 강호순, 완전 범죄 노리다 덜미…‘22개월 공백기’에 의문 쏠려

▲ 실종 부녀자가 암매장된 지역을 수색하고 있는 경찰. ⓒ시사저널 임준선

희대의 연쇄 살인마가 또다시 등장했다. 지난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경기 서남부 지역에서 실종된 부녀자 7명은 모두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다. 범인은 군포 여대생 안 아무개씨(당시 21세)를 납치해 살해한 강호순(38)이다. 강씨는 안씨를 포함해 그동안 행적이 묘연했던 부녀자들을 자신이 직접 살해했다고 실토했다. 군포 여대생을 살해한 것 외에는 여죄를 완강히 부인하던 강씨는 자신의 트럭에서 혈흔이 묻은 점퍼가 발견되고, 지난해 11월9일 실종된 김 아무개씨(당시 48세)와 동일한 DNA가 검출되자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강씨는 성폭행이나 성관계를 목적으로 피해 여성들에게 접근했으며, 대부분 스타킹으로 목을 졸라 살해한 후 인근 야산 등에 암매장했다. 강씨가 밝힌 살해 동기는, 지난 2005년 네 번째 부인이 사망한 후 그 충격으로 여자들을 보면 살인 충동을 느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네 번째 부인도 강씨가 살해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정확한 범행 동기나 여죄를 추궁하고 있다.

강씨의 연쇄 살인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06년 12월1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군포시 산본동의 한 노래방에 손님으로 가장한 후 도우미로 일하던 배 아무개씨(당시 45세)에게 접근했다. 강씨는 배씨를 자신의 무쏘 차량으로 유인했고, 화성시 비봉면 자안리 도로상에서 성관계를 갖고 살해했다. 배씨의 시체는 화성시 봉담명 비봉IC 부근 야산에서 발견되었다. 

두 번째 살인은 10일 후에 벌어졌다. 범행 대상과 살해 수법도 첫 번째와 판박이이다. 강씨는 같은 해 12월24일 수원시 장안구 화서동에 있는 한 노래방에서 도우미 박 아무개씨(당시 37세)를 만나 대부도에 가자고 유인해 살해한 후 안산시 사사동의 야산에 암매장했다.

두 번째 살인에 성공한 강씨의 살인 행각은 그칠 줄을 몰랐다. 2007년 1월3일에는 화성시 신남동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박 아무개씨(당시 52세)를 타깃으로 삼았다. 강씨는 박씨를 자신의 무쏘 차량으로 유인한 후 첫 번째 희생자와 같은 장소인 화성 비봉 IC 주변에서 성폭행한 후 화성 삼화리 야산에 묻었다. 이번에도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른 지 열흘 만이다.

과거 행적 미루어 추가 범행 가능성 다분

▲ 갈대밭에서 발견된 유골을 경찰 감식반이 수습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불과 3일 후에도 살인은 이어졌다. 2007년 1월6일 안양시 안양동의 한 노래방에서 만난 중국동포 도우미 김 아무개씨(당시 37세)를 리베라 화물차로 유인한 후 여관에서 성관계를 갖고는 화성시 마도면 고모리에서 살해했다. 김씨를 목 졸라 살해하는 데 사용된 도구는 넥타이였다. 김씨의 시신이 암매장된 곳은 현재 골프장이 들어서서 사체를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다음 날인 1월7일에는 성당을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20대 초반의 여대생이 희생양이 되었다. 수원시 금공동 버스정류장에 있던 연 아무개씨(당시 20세)를 자신의 차량으로 유인해 수원시 호매실동 황구지천 부근에서 성폭행하고 살해해서 부근 하천에 암매장한 것이다. 강씨는 지난해에도 2건의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 2008년 11월9일 수원시 당수동 버스정류장에서 주부 김 아무개씨(당시 48세)를 어머니 소유의 에쿠스로 유인해 수인선 도로 갓길에서 성폭행을 시도했으나 반항하자 곧바로 살해했다. 김 아무개씨의 시체는 안산시 성포동 소재 성포공원 야산에서 암매장된 채 발견되었다.

연쇄 살인 마지막 피해자가 바로 군포에서 실종된 여대생 안씨이다. 안씨는 군포시 대야미동 보건소 앞 버스정류장에서 강씨를 만났고 “태워주겠다”라는 말에 속아 참변을 당했다. 안씨의 시신은 화성시 매송면 원리 공터에서 암매장된 채 발견되었다. 안씨의 살해범으로 강씨가 붙잡히면서 그의 만행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연쇄 살인범 강호순은 여전히 의문덩어리이다. 그가 비록 7명의 부녀자를 살해했다고 자백했으나 그의 과거 행적 등을 보면 추가 범행 가능성이 다분하다.

강씨는 지금까지 네 명의 부인과 살았다. 1998년 첫 번째 부인과 이혼했고, 1999년부터 2003년 네 번째 부인을 만날 때까지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강씨의 네 번째 부인은 장모와 함께 지난 2005년 10월30일에 화재로 사망했다. 화재 당시 강씨는 숨진 부인·장모와 한집에 있었으나 아들(당시 12세)과 함께 탈출해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당시 경찰 조사에서 그는 “작은방에서 자다가 알루미늄 새시 방범창을 발로 차 이탈시킨 뒤 아들과 함께 탈출했다”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강씨의 진술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우선 당시 화재가 발생한 집은 반지하 건물로 작은방 창문과 안방 창문이 바로 붙어 있었다. 큰소리로 ‘대피하라’라고만 외쳤어도 얼마든지 살아났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강씨는 장모와 부인을 구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당시 유족들도 이러한 강씨의 행동을 의심해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경찰에서도 강씨에 대해 조사했으나 혐의점을 찾지 못하고 종결한 상태였다.

직업까지 있어 주변에 착하고 성실하게 보여

강씨는 또 네 번째 부인과 2002년부터 3년여 간 동거 상태에 있다가 화재가 발생하기 불과 5일 전에 혼인 신고를 했다. 또한, 부인이 화재로 숨지기 불과 1~2주 전에 부인을 보험대리점으로 데리고 가서 종합보험과 운전자상해보험 2건에도 가입했다. 이에 앞서 1~2년 전에도 부인 명의로 2개 보험에 가입했다.

강씨는 부인이 화재로 사망한 후 4개 보험에서 총 4억8천만원의 보험금을 수령했다.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안산시 상록구 본오3동에 있는 2억원대의 건물도 보험금으로 마련한 것이다. 강씨는 지난 2007년 5층 건물 4층에 있는 50평 상당의 점포를 구입했고, 지금은 세입자가 마사지숍을 운영하고 있다.

경찰은 부인 명의의 보험 가입, 혼인 신고, 화재 발생 등의 정황에 따라 방화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즉, 강씨가 보험금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방화해서 부인과 장모를 사망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강씨는 연쇄 살인의 동기를 네 번째 부인이 사망한 뒤 상심한 것이 원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강씨의 말은 오히려 반대의 상황일 수도 있다.

또 다른 의문점은 강씨가 수령한 보험금이다. 경찰에 따르면 강호순은 1999년부터 최근까지 해지된 것을 포함한 보험 계약 건수가 30여 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까지 8건의 보험에서 6억6천만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지난 2005년 장모집에서 일어난 화재로 4억8천만원을 받았고, 트럭 화재와 점포 화재, 차량 도난 등으로 1억8천만원을 받았다. 강씨의 보험금 수령에는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네 번째 부인과 장모의 사망 원인이 대표적이다. 그런데도 귀신 뒷조사까지 한다는 보험사에서 순순히 보험금을 내준 것도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또 하나는 강씨의 범행 주기이다. 그가 최초 살인을 했던 날은 2006년 12월이며 2007년 1월7일까지 24일 사이에 5명을 잇따라 살해했다. 살해 주기도 10일(2·3차), 3일(4차), 1일(5차), 10일(7차)이다. 그런데 유독 5차에서 6차 사이의 범행은 22개월이라는 공백기가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강씨의 범행 수법을 보면 매우 잔인하고 주도면밀하다. 강씨는 노래방이나 한적한 버스정류장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한 후 성관계나 성폭행을 하고는 목 졸라 살해했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범행 도구로 스타킹이나 넥타이를 이용했고, 살해 후에는 손톱을 모두 잘라냈으며 알몸 상태로 암매장했다.

초범치고는 너무 대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납치·살해된 7명의 부녀자들의 경우 유인(노래방·버스정류장)-성관계·성폭행-살해-암매장·증거 인멸 등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강씨의 용의주도한 면은 또 있다.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자신 소유의 무쏘 승용차와 어머니 소유의 에쿠스 승용차를 모두 불에 태웠을 뿐만 아니라 컴퓨터도 포맷해서 증거를 인멸하려 했다. 군포 여대생 안씨를 살해한 후에는 한 금융 기관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인출하면서 마스크와 가발을 썼다.

30년간 강력반 형사로 일하면서 지존파를 검거했던 혜화경찰서 고병천 감사관은 “강씨의 여죄가 더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는 여러 면에서 자신을 철저하게 위장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착하고 성실하게 보임으로써 범죄자라는 의심을 떨쳐버리게 했고,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범행 후에 다른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접촉했다. 보통 연쇄 살인범의 경우 직업이 없거나 고립된 생활을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라고 말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지방경찰청은 강씨의 추가 범행을 밝혀내기 위해 모든 수사력을 동원하고 있다. 경기 서남부 지역 실종 사건 수사 인력을 대거 투입했고, 연쇄 살인범을 검거한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를 투입해서 다각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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