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위 체제로 밀어붙이며 ‘제왕적 대통령’ 부활 꿈꾸나
  • 고원 (상지대 학술연구교수·정치학) ()
  • 승인 2009.02.0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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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권력 기관장 인사 발표 후 빚어진 용산 참사는 이명박 정부에 치명상…전임 정권이 남긴 교훈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 고원 (상지대 학술연구교수·정치학)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은 신임 국가정보원장과 경찰청장을 내정해 발표했다. 검찰청장, 국세청장과 함께 4대 권력 기관을 구성하고 있는 이들 직책에 대한 인사는 이명박 정부의 향후 국정운영 방향을 가늠케 한다는 점에서 주목되었다. 이 인사를 놓고 대체로는 이명박 대통령이 친위 세력을 전진 배치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주요 권력 기관에 강력한 친위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정권 보위를 더욱 굳건히 함과 동시에 국정 운영에서 정권이 추구하는 목적을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같은 인사가 이명박 정부에 약이 될 것인가, 독이 될 것인가? 이번 인사는 발표 직후 철거민들과 경찰 등 모두 6명이 숨진 용산 참사로 인해 시작도 하기 전에 치명상을 입었다. 신임 내정자인 원세훈 행정안전부장관과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이 이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부처의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이번 용산 참사는 전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일부는 인사권자의 의도를 충실하게 따르려는 신임 내정자의 과잉 충성과 오버 액션이 빚어낸 결과라고 봐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용산 참사는 강력한 친위 체제를 구축하려는 정권의 인사 정책이 빚어낸 실책이라고 볼 수 있다.

김영삼 정부, 안기부 일탈 제어 못해 식물정권 겪어

이명박 대통령이 권력 기관 인사의 초점을 친위 체제 강화에 맞추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봐줄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는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찍었던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표까지 끌어들여 압도적인 지지율로 정권을 장악했지만 곧 촛불 집회 사건으로 지지 기반의 절반가량을 잃어버렸다. 게다가 전통적인 지지 기반도 확고하게 장악하지 못했으며, 정치권 내 보수 세력은 친이(親李)와 친박(親朴)으로 양분되어 역량을 결집시키지 못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인 경기 불황의 여파가 언제 쓰나미가 되어 덮칠지 모르는 초긴장 상황이 펼쳐지고 있고, 제2의 촛불 집회가 발생할 위험성도 상존하고 있는 국면이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권력 기관 내에 친위 체제 강화를 통해 일종의 요새를 구축하고 싶어 하는 것은 권력자의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역대 정권의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이, 권력 기관의 친위 체제 강화가 정권의 불안정을 해소하고 권력 누수를 방지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느냐 하면 오히려 그 반대였다는 평가가 맞을 것이다. 비근하게 김영삼 정부는 안기부의 일탈을 제어하지 못해 급격히 식물 정권의 상태에 빠져버리고 만 사례였다. 당시 김기섭 안기부 운영차장과 오정소 차장 등은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 등 정권 실세들에게 접근해 고급 정보와 자금을 제공하는 등으로 환심을 샀고, 김현철씨는 이를 이용해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든든한 믿음과 총애를 받아 국정을 농단하다가 끝내는 정권 파탄의 씨앗을 뿌렸던 것이다.

또, 김대중 정부 하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김대중 정부는 처음에는 외환위기의 여파로 강력하고 안정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으나 1999년 중반 들어 옷 로비 사건 등으로 권력 누수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김대중 정부는 다시 가신 그룹들을  중용하기 시작했고 이들을 고리로 해서 검찰과 국정원에 아첨꾼, 야심가 등 위험한 인물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검찰과 국정원의 주요 간부들이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등의 각종 부패 사건에 휘말려 추락하기 시작했으며, 급기야는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들과 자녀들이 연루됨으로써 김대중 정부는 퇴임 때까지 극심한 레임덕에 시달려야 했다.

▲ 용산 철거민 사망 사건의 진상 규명과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의 처벌을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권력이 집중되면 독선과 독단에 빠지기 쉬워

권력의 생리란 본래 이런 것이다. 아첨꾼들은 주로 권력 기관들을 중심으로 해서 꼬인다. 아첨꾼들은 권력자의 물적 결핍과 심리적 불안을 귀신같이 찾아내 권력자를 꼼짝 못하게 묶어 버린다. 이것은 어느 개인의 도덕적 자세 이상의 문제이다. 권력이 집중되어 있거나 한쪽으로 쏠리는 구조에서는 권력자가 아무리 조심을 해도 온갖 상상할 수 없는 연줄과 수단을 동원해 사방팔방으로 밀려오는 압력을 이겨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정권을 방어하는 단계로 넘어가게 되면 그 폐해는 더욱 치명적이 된다. 정권을 힘겹게 방어해야 하는 권력자로서는 측근과 그 주변의 아첨꾼들이 물어오는 정보가 그럴듯해 보이고 그들의 달콤한 말이 많은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력자가 여기에 한 번 취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조언에 귀 기울이지 않고 독선과 독단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권력 기관의 잘못된 운영이 가져온 폐해는 막대했다.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에는 전·현직 중앙정보국(CIA) 요원들이 관련됨으로써 CIA는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인 집단으로 낙인찍히는 상처를 입어야만 했다. 대통령의 권한 비대화와 공산주의와의 투쟁이라는 명목으로 정보 기관이 의회와 여론의 통제를 받지 않던 시대의 상황이 서로 결합해 빚어낸 결과였다. 그래서 그 후 정보 기관의 대대적인 개혁이 추진되어 각종 비밀작전이 금지당했고, CIA 국장들은 정보 기관의 밖에서 충원되었다. 1980년 이후 레이건 정권이 들어서면서 CIA는 위상이 다시 복권되었다. 레이건의 개인적인 친구이자 기업인이고 강력한 반공산주의자인 윌리엄 케이시가 CIA 국장으로 선임되고 비밀 작전들이 다시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콘트라 반군 지원 비밀작전의 진실이 노출되었을 때 레이건 대통령은 국내의 정치적 지지가 추락하면서 임기 말 통치 위기를 맞게 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또한 정부 기관 전반에 걸쳐 보안과 비밀 체계를 강화했다. 미국 정부의 모든 민간 공무원들에게도 거짓말 탐지 프로그램을 적용시키려 했다. 그러나 얄궂게도 미국의 정보 기관은 1980년대에 과거 어느 때보다도 워커 가족의 간첩 사건으로 상징되는 보안상의 허점과 반역적 행위를 더 많이 겪었다. 대부분의 경우 미국 정보 기관의 구성원들은 이데올로기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돈과 개인적 탐욕 때문에 소련에 비밀 정보를 넘겨주었던 것이다. 

한국은 미국보다 권력 간의 견제와 균형의 제도적 조밀성이 크게 떨어지는 나라이다. 그간의 정치 개혁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의 폐단이 많이 시정된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대통령과 의회는 불균형 상태에 놓여 있다. 정부는 여전히 시민의 여론 통제로부터 동떨어져 있다. 이런 권력 구조 하에서 권력 기관의 잘못된 운영이 가져오는 폐해는 몇 배 더 증폭된다. 최근 이명박 정부에 대해 과거 ‘제왕적 대통령’을 부활시키려 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구심의 눈초리들이 많다.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정원, 경찰 등을 동원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전임 정권에서의 교훈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권력은 그 물길을 한 번 잘못 터놓으면 되돌리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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