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가 명백한 피의자의 얼굴은 공개해야 한다
  •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 ()
  • 승인 2009.02.10 07:3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권 지상주의 내세우며 보호하는 것은 타인의 권리 침해하는 것…국민의 알 권리 위해 최소한 신상 정보 공개해야

▲ 김상겸(동국대 법대 교수)

2년여에 걸쳐 일곱 명의 여성을 살해한 엽기적인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 잡혔다. 이번 사건의 혐의자인 강호순은 수사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범행에 대해 별 다른 죄의식을 보이지 않아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사건 역시 2004년 유영철 사건이나 2006년 정문규 사건에서처럼 범인은 특별한 동기 없이 인명을 연쇄적으로 살해했다. 또한, 장기간에 걸쳐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평상시와 다름없는 생활을 함으로써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인 사이코패스(psychopath)의 전형을 보여주어 더욱 충격적이었다.

이번 사건은 또다시 터진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점 이외에도 여러 면에서 우리 사회에 충격과 분노 그리고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피의자인 강호순의 얼굴이 몇몇 언론사에 의해 공개되고 피의자의 인권 문제가 불거지면서 사건과 관계없이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형사 피의자에 대한 얼굴 공개는 1990년대까지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이루어지곤 했으나, 2004년을 기점으로 하여 피의자의 초상권 침해 문제가 대두됨과 동시에 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 피의자의 인권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금지되었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형사 피의자의 인권도 보호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얼굴 공개 금지를 국가 기관에 권고했고, 이에 따라 경찰은 직무규칙을 개정해 ‘경찰서 내에서 피의자와 피해자의 신원을 추정할 수 있거나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장면이 촬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는 초상권 침해 금지 규정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이번 사건에서 피의자인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반인륜적 연쇄 살인범의 얼굴을 왜 공개하지 않느냐는 여론이 비등해지고 범죄의 예방이라는 공익적 목적과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몇몇 신문에 강호순의 얼굴이 공개되었고, 이와 관련해 찬반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형사 피의자의 얼굴 공개와 관련해 반대하는 입장은 확정 판결 때까지 모든 형사 피의자와 형사 피고인은 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 인권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범죄 증거가 명백하고 범죄 예방이라는 공익을 위해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라는 차원에서 가능하다고 본다. 양자의 주장에서 초점은 형사 피의자에 대한 무죄 추정 원칙을 통한 인권 보호와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다. 이 권리들은 국민의 기본권으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양자가 충돌할 경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하는 문제가 있다.

먼저 얼굴 공개를 반대하는 입장을 살펴보면 그 원칙에서는 당연한 논리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형사 피의자라 해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헌법에 의해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더구나 무죄 추정 원칙은 자의적인 국가 공권력의 행사를 금지하고 형사 피의자나 형사 피고인을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헌법상의 기본권이다. 무죄 추정 원칙은 피의자나 피고인이 유죄의 확정 판결을 받을 때까지 원칙적으로 죄가 없는 자로 다루어져야 하고 그 불이익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즉, 범죄 혐의로 체포되더라도 불구속 수사·불구속 재판을 원칙으로 해야 하고, 유죄의 예측 아래 무리하게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고문·폭행·협박 등을 해서는 안 되며 필요 이상의 강제적 조치인 모욕적 언동이나 위압적 태도 등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얼굴 공개는 유죄를 예단할 우려가 있고, 당사자의 초상권을 침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 경기 서남부 연쇄 살인 사건 피의자 강호순. 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얼굴을 공개하기로 했다. ⓒ(위왼쪽)조선일보 제공, (위 오른쪽,아래)동아일보제공

개인의 기본권은 타인의 기본권과 공존하며 보장받아

이러한 주장에 대해 얼굴 공개를 찬성하는 입장은 모든 형사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아니며, 공공성과 공익성의 관점에서 반인륜적 범죄에 한해 범죄의 증거가 명백하고 범죄 예방의 차원에서 공익성이 있다면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얼굴 공개 정도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가 있는 것으로서, 피의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더구나 신상 정보 중에서 얼굴과 성명 정도의 공개는 최소한의 기본권 제한이기 때문에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아가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언론 기관에서 취재와 보도의 자유는 언론의 자유로부터 도출되는 자유로서 이 역시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양자의 주장은 헌법이 추구하는 기본권 최대 보장이라는 이념에서 볼 때 원칙적으로 타당하다. 형사 피의자의 기본권도 최대한 존중되어야 하고, 국민의 알 권리나 언론의 자유도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주목되는 점은 우리 헌법은 어떤 기본권도 최대한 보장할 뿐 절대적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법적 현실의 세계에서 절대적 기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 개인의 기본적 권리는 다른 사람의 기본권 권리와 공존하며 보장받는다. 왜냐하면 법치 국가의 헌법 질서에서 국민은 개인으로서 자신의 기본권을 보장받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 공동체의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권리에 따르는 책임을 가지기 때문이다.

얼굴 공개와 관련된 논란에는 인권 지상주의 내지 인권 만능주의가 일방적으로 스며들어 있다. 인권이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권리이지만, 인간 스스로 인격체로서 자신의 권리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된 권리이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인권이란 몰가치적인 자기 중심의 독선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범죄에 대한 증거가 명백해 사회의 범죄 예방을 위해 국민 다수에게 알려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경우에는 형사 피의자의 신상 정보 중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즉, 얼굴이나 성명 정도를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공개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공개로 인해 피의자의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피의자의 얼굴 공개로 인해 가족 등 주변 사람의 정보가 노출될 수는 없다. 만약 그런 경우는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이를 유포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행법에 의해 제재를 할 수 있다.

얼굴 공개는 우리나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미국이나 유럽 및 일본 등에서는 국민의 관심도가 높은 테러·살인 등 강력 흉악범과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범인의 얼굴을 공개하고 있다. 미국은 총기 살인범이나 아동 성범죄자에 대해 얼굴을 공개하고 있으며, 독일은 테러범에 대해 신원을 공개하고 있다. 또한, 일본도 다중 살인범 등에 대해 얼굴을 공개했다. 나아가 프랑스의 경우 2004년 서울 서래마을에서 자신의 영아 2명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던 프랑스인 부부에 대해 신문과 방송 등에서 얼굴을 공개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