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싱글 우울한 독방 1인 가구 시대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02.17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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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미스·미스터 극소수에 불과 사회적 약자들이 대부분

 

ⓒ그림 최익견

“예전에는 혼자 사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를 이상하게 볼까 봐 일부러 룸메이트랑 산다고 거짓말을 했다.” 증권사에서 근무하는 방 아무개씨(33)는 한때 여자 혼자 산다는 것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몰라 대답을 망설이곤 했다. 서른 살에 가까워지자 결혼에 대한 압박을 받게 되었고, 부모 생각도 하지 않는 이기적인 딸로 비칠까 봐 염려했다. 하지만 지금은 개의치 않는다. 혼자 산다는 사실에 어떤 때는 자부심을 가지기도 한다. 특히 결혼한 친구들이 “너 결혼 안 하길 잘했어”라고 말할 때는 나쁜 선택이 아니었구나 생각한다. 방씨처럼 나 홀로 사는 ‘1인 가구’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증가하고 있다. 마치 대가족에서 핵가족이 시대의 변화로 인정받은 것처럼 ‘1인 가구’ 역시 새로운 가구의 형태로 인정받는 시대가 왔다.

지난 1월26일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하 시정연)의 변미리 연구위원 팀은 ‘1인 가구, 서울을 변화시킨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서울의 1인 가구 증가율은 무려 34%에 달한다. 혼자 사는 가구는 서울에서만 20%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다섯 집 건너 한 집꼴이다. 2000년 50만2천2백45 가구에서 2005년 기준으로 67만5천7백39 가구로 급증했다. 반면, 같은 시기 서울의 전체 가구 증가율은 6%에 불과했다.

1인 가구의 급증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변위원 팀은 2030년까지 서울의 1인 가구가 25%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통계청의 전망 역시 다르지 않다. 지난 1월20일 통계청이 발표한 ‘향후 10년간 사회 변화 요인 분석’을 보면 우리나라의 총 인구는 2018년 4천9백34만명을 기록한 뒤 감소하는 것으로 전망되었다.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출산율의 저하이다. 1983년 2.1명 이하로 하락한 이래 출산 기피 현상이 지속되면서 10년 후인 2018년부터는 총 인구가 감소하리라는 것이다. 반면,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1인 가구와 부부 가구 수가 증가하면서 총 가구 수는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었다. 지난해 1천6백67만개였던 가구 수는 2018년 1천8백71만 가구, 2030년에는 1천9백87만 가구로 증가할 전망이다. 일본 도쿄의 1인 가구 비율이 전체 대비 42.5%라는 점도 우리의 모습을 예상하는 데 도움을 준다.

1인 가구에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이들은 편의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시정연은 “현재 1인 가구는 지하철 2호선을 중심으로 밀집 분포되어 있다”라고 설명했다. 1인 가구의 교통수단을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51%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라고 답했다. 도보로 이동한다는 응답도 32%나 되었으며 승용차를 이용한 출퇴근은 겨우 15%에 불과했다. 편의를 위해 접근성이 좋은 곳을 거주지로 삼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시정연은 “1인 가구는 직주 근접을 선호한다”라고 밝혔다. 대학이 밀집되어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신촌·홍대 지역,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신림·봉천 지역 그리고 직장이 많은 강남·역삼, 을지로 지역은 1인 가구가 많은 대표적인 2호선 라인이다.

1인 가구의 증가는 변화를 불러왔다. 우선 시장은 이들을 포섭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싱글 가전’이 시장에서 인기를 끈 지 오래되었다. 공간만 차지하는 대용량 가전제품이나 가구 대신에 최근에는 콤팩트한 제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는 보안을 위해 날이 어두워지면 저절로 불이 켜지는 ‘집 지키는 마술램프’도 등장했다.

홍대역 등 지하철 2호선 중심으로 밀집

이마트나 롯데마트 등 대형 유통 상점을 돌다보면 ‘미니미니’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마련된 1인 가구를 위한 상품 코너를 만날 수 있다. 게다가 대형 마트들은 미니 과일팩, 1인용 회, 1인용 간편 야채 등을 선보이고 있는데 독신 남녀들의 발길이 잦다. 롯데마트의 관계자는 “야채나 과일의 경우 소용량으로 포장하면 일반적으로 조금 비싼 편인데도 매출은 오히려 늘었다. 많이 사서 버리는 경우보다는 적게 사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식사는 싱글들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이다. 가끔은 메뉴 선택의 자유조차 없을 때가 있다. “전골을 먹고 싶은데 2인분 이상만 가능하더라”라는 이야기는 싱글의 흔한 한탄거리 중 하나이다. 싱글들을 위해 신촌의 한 일식 라면 식당은 마치 독서실 칸막이처럼 1인용 좌석이 준비되어 있어 혼자서 식사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인테리어를 했다. 신림동 고시촌 일대에는 바 모양의 분식집을 흔히 볼 수 있다. 식문화의 변화도 1인 가구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혼자 사는 여성이 하기 힘든 못 박기, 가구 나르기 등을 대행하는 심부름 업체가 강남·역삼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한다는 것도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한 심부름 업체의 사장은 “문의가 많지는 않지만 여성이 하기 힘든 가사 노동에 대한 의뢰 건수가 간혹 들어온다”라고 말했다. 애완동물 시장의 폭발적인 증가를 1인 가구의 증가와 연관시키는 지적도 있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곳은 부동산시장이다. 작은 평수의 임대사업이 각광받을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회사들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역·역삼역 부근은 1인 가구가 많은 대표적인 지역이다. 역삼역 인근 ㄱ공인중개업소의 관계자는 “1인 가구에 대한 이야기가 신문에 나온 뒤 주상복합의 소형 평수나 오피스텔에 관한 문의가 많이 늘었다. 대부분 임대 수익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걸려온 전화이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고시원이나 원룸촌 등이 밀집되어 있는 서울대 인근의 대학동(구 신림9동)과 서림동(구 신림2동) 부근에도 급매 원룸 건물에 대한 문의가 시나브로 증가하고 있는 등 독신에게 임차할 수 있는 건물들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최은기씨(33)는 2년 전 자신이 전세로 사는 신촌의 오피스텔을 재계약하면서 집주인과 합의 아래 월세로 전환했다. 세탁기, 에어컨, TV 등이 빌트인으로 갖춰진 이 오피스텔은 직장이 위치한 여의도와 가깝다. 그리고 신촌 부근에는 혼자서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식당과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서 굳이 이사를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대신 목돈을 전세자금으로 묶어놓는 것이 아까웠다. 집주인도 은행의 저금리로 돈을 안정적으로 굴릴 곳을 마땅히 찾지 못하게 되자 월세를 선호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전세금의 50%를 돌려받는 대신 월세를 상당액 지급하기로 했다. 최씨는 “혼자 살기 때문에 공격적으로 재테크를 할 수 있다. 결혼 등에 당장 목돈이 들어갈 것도 아니라 돈을 묶어두기보다는 굴리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통계청이 발간한 ‘한국의 인구·주택 보고서’를 보면 임차 가구의 전세 비중은 지난 2000년 28.2%에서 2005년 22.4%로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월세는 14.8%에서 19%로 증가했다. 은행의 저금리 기조가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데 주요인이었지만 독신으로 사는 이들의 재테크 성향 역시 소형 주택의 월세화에 한몫하고 있다.

마포역 부근 주거형 오피스텔의 경우 소형 평수의 월세가 75만~100만원에 이르지만 최씨와 같은 싱글들로 인해 부지런히 매물이 소화되고 있었다. 마포역 부근 ㅎ공인중개사의 관계자는 “더러 신혼부부도 있지만 대부분 독신들이 찾는다. 인근 공덕역에 올라가고 있는 주상복합단지가 마무리되고 나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본다”라고 전망했다. 주거단지가 건설되면서 커피전문점, 브런치 카페 등 편의시설이 주변에 늘어선 것도 독신들을 끄는 요인이다.

독신자 늘어나면서 부동산시장도 소형화 바람

▲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시장도 바뀌고 있다. 위는 한 슈퍼마켓. ⓒ시사저널 박은숙

최씨는 굳이 결혼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 주위의 싱글 친구들도 마찬가지이다. 최씨는 “싱글들끼리 자주 모이는 편이다. 주로 재테크나 취미 생활 이야기, 혹은 고민 등을 홀가분하게 털어놓는 일상적인 만남을 자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혼자들은 그러기 어렵지 않나”라며 웃었다. 그는 연차를 이용해 휴일을 길게 쓰며 가까운 해외에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음악에 관심이 많아 스피커 등에 수백만 원씩 고액을 투자하기도 한다. 연애는 현재 쉬는 중이다. “대부분 결혼을 전제로 소개받는 경우가 많아서 사양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오피스텔 등에서 100만원 안팎의 월세를 내고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며 취미 생활과 재테크에도 관심을 갖는 최씨 같은 독신자를 시정연은 ‘골드 미스·미스터 그룹’으로 분류했다. 일명 ‘화려한 싱글’이다. 시정연은 보고서에서 서울의 1인 가구를 네 가지로 분류했다. 도시의 트렌드세터인 ‘골드 미스·미스터 그룹’, 우울한 싱글 ‘산업예비군 그룹’, 해체된 가족의 ‘불안한 독신자 그룹’ 그리고 고령 사회의 중심인 ‘실버 세대 그룹’이 그들이다.

‘골드 미스·미스터 그룹’처럼 독신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사람도 있지만 나머지 세 부류는 사실 비자발적인 1인 가구에 가깝다. 강원도 원주 출신인 윤상현씨(가명·29)는 신림동의 원룸촌에 살고 있다. 다닥다닥 비슷한 형태로 붙은 다세대 주택의 건물 때문에 2층인데도 햇볕이 거의 들지 않는다. “그래도 일몰 때는 잠깐 햇볕이 드는데, 그럴 때는 매우 상쾌하다. 반지하보다는 낫지 않나”라고 말하는 윤씨가 이 집에서 지낸 지도 벌써 4년째이다.

윤씨는 올해 2월 말 미루고 미루던 졸업을 해야 한다. 정상대로라면 대학생에서 사회인으로 변신해야 하지만 아직 취업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졸업하면 집에 손 벌리는 것도 그렇고, 결혼을 원하는 여자친구와의 관계도 걱정이다”라고 고민을 털어놨다. 노동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이상 재계약이 다가오는 이 좁고 어두운 집에서 사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요즘 그는 쉽게 잠을 못 이룬다. 윤씨는 취업에 성공해 작더라도 햇볕이 환하게 들어오는 곳으로 이사 가고 싶다는 화려하지 않은 바람을 갖고 있다.


“햇볕이 환하게 들어오는 곳으로 이사가고 싶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최근 발표한 ‘2008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재적 학생 가운데 4학년과 26세 이상의 비율이 꾸준히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6세 이상의 고연령 재적 학생이 2004년 6.1%에서 2008년 6.7%로 상승했다. ‘올드보이’ 대학생들이 정체되면서 불안정한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시정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1인 가구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 중 취업은 30.4%를 차지해 재테크(31.3%)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했다. 경제적 문제에 대한 두려움은 1인 가구의 가장 큰 고민거리이다. 1인 가구의 구성비를 분석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골드 미스·미스터’로 대표되는 경제력 있는 독신은 1인 가구에서 소수에 불과하다. 화려한 1인 가구의 이면에는 대다수의 그늘이 자리 잡고 있다. 시정연의 분석 결과, 소득 수준이 100만원 미만인 비율이 45%였고 100만원~2백만원의 소득 층은 31%였다. 전체의 76%가 2백만원 미만의 저소득층에 해당되었다. 직군별로도 판매 서비스직(26%), 단순 노무직(10%), 기능직(9%) 등 블루칼라 직군이 50%를 차지해 경기가 안 좋거나 부상 등으로 노동력을 상실할 경우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화려한 싱글’이라는 표현과는 거리가 먼 것을 알 수 있다.

취업으로 대표되는 경제적인 문제는 비단 20대 1인 가구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1인 가구가 어떤 생활을 유지하느냐의 성패는 결국 ‘직업’에 달려 있다. 이혼이나 기러기 아빠로 본의 아니게 1인 가구를 이룬 중·장년층도 요즘 계속되는 실직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혹시나 실직을 당하게 될 경우 나이 때문에 재취업이 어려우므로 급속하게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 변미리 연구위원은 “이혼율의 상승, 기러기 가족, 중년층 실업 문제가 중첩된 독신자 집단은 사회적 부유 세력이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노인 계층 역시 일자리 문제가 절실하다. 빈곤의 문제에 가장 직면해 있는 그룹이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나라 노인 가구의 상대적인 빈곤율(전체 가구 중 소득 50% 미만에 속한 가구)은 45%로 OECD 국가 중에서 최악이며 멕시코나 아일랜드보다도 낮다. 특히 혼자 사는 노인은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회적 취약 계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독거 노인의 빈곤 문제는 자살과 직결되기 때문에 심각하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1998년 10만 명당 37.96명에서 2007년 73.61명으로 2배가량 증가했다. 한국자살예방협회의 관계자는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2018년에는 노인 자살률이 10만 명당 1백48.50명에 이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혜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연구실장은 “1인 가구는 화려한 싱글이 아니라 대부분 자신이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다”라고 지적했다. 20% 남짓한 화려한 싱글이 ‘골드 미스·미스터’ 신드롬을 일으키며 화려하게 부상하고 있지만, 이면에는 80%에 가까운 전혀 화려하지 않은 싱글들이 숨죽이고 있는 상태이다. 특히 이들이 안고 있는 경제적인 문제를 고려했을 때 화려한 싱글을 부각시키기보다는 나머지 그룹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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