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도 때를 기다리고 있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02.17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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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네오콘들 “비핵·개방·3000은 ‘햇볕’보다 더 퍼주는 것…우리는 보수 강경 아니다”

▲ 이명박 대통령(위 왼쪽)이 현인택 통일부장관(위 오른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정책의 핵심은 “북한을 개방으로 이끌고, 한·미 동맹 관계를 강화하며, 아시아 외교를 확대하겠다”라는 것이다. 이른바 ‘MB 독트린’으로 불린다. 그리고 북한을 개방으로 이끌 실천 방안으로 ‘비핵·개방·3000’ 정책을 발표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에 나서면, 10년 안에 북한 주민 1인당 GNP가 3천 달러가 되게끔 남한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라는 것이다. 모두 이명박 대통령의 2007년 대선 후보 시절 이 분야의 핵심 참모들에 의해 다듬어졌다.

<시사저널>은 이번 호에서 이명박 정부 1년을 평가하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 가운데 ‘이전 정권과 비교한 남북 관계 변화 정도’를 묻는 질문에서 전체의 59.5%가 ‘더 나빠졌다’라고 답했다. ‘별 변화가 없다’는 30.9%였다. 반면, ‘더 좋아졌다’는 응답은 5.0%에 불과했다. ‘남북 관계 경색에 대한 이대통령의 책임 정도’를 묻는 질문에서도 ‘책임 있다’라고 답한 이가 77.1%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책임 없다’라고 답한 이는 19.4%에 그쳤다.

지금의 남북 관계가 경색일로로 치닫게 된 이유가 바로 ‘비핵·개방·3000’ 정책에 있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MB 독트린과 비핵·개방·3000 정책 입안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현인택 장관은 청문회 답변에서 “비핵·개방·3000은 강경책이 아니다.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다”라고 수정 불가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에서는 그동안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이 사령부 역할을 해왔다. 그중에서도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이 핵심이었다.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은 외교부 차관 출신의 전문 외교관으로 통일·안보 분야와는 다소 거리를 두고 있었다. 때문에 지난 연말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이대통령에게 “외교 쪽만 집중하고 안보 분야는 신경을 안 쓴다”라는 질책을 받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이번 현장관의 임명으로 통일부가 다시 ‘MB 네오콘’의 중심에 설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하다. 네오콘은 미국 공화당의 신보수주의자들을 가리키는 말로써, 이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분야 핵심 브레인들을 가리켜 일부 진보 성향에서는 ‘MB 네오콘’으로 비꼬기도 한다. 이들은 한결같이 대북 강경론자로 소개되고 있다. 물론 현장관과 김비서관은 ‘MB 네오콘’ 그룹 중에서도 핵심 인사들이다. 

북한이 핵 포기하면 10년 안에 GNP 3천 달러 되게 지원

현 정부의 초대 통일부장관에 내정되었다가 낙마한 남주홍 경기대 교수도 이 그룹의 핵심 인사이다. 정부의 대북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주요 3대 국책 연구 기관도 이 그룹이 모두 장악했다. 남성욱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과 서재진 통일연구원장,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안보통일연구부장은 모두 현 정부 들어 ‘수장’에 올랐다. 현재 주호주 대사로 나가 있는 김우상 연세대 교수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기자는 이들 가운데 몇몇과 인터뷰를 했고, 인터뷰에 응하지 않은 인사들은 연구 논문이나 칼럼, 타 언론사의 인터뷰 등을 참고해서 입장을 살펴보았다. 현장관은 청문회 자료도 참고했다. 그 결과, 한반도 위기 상황을 바라보는 이들의 현재 대북 관점과 전망 그리고 주장은 놀라울 정도로 거의 다 일치했다.

이른바 ‘MB 네오콘’의 핵심 인사로 통하는 A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비핵·개방·3000은 전혀 문제가 없다. 일부 전문가들이 잘못 알고 있으니까, 일반 국민까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 B씨도 역시 “그 정책이 대북 강경책으로 비치는 등 너무 잘못 알려진 부분이 많다. 그동안 현 정부가 비핵·개방·3000 정책을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실책을 범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비핵·개방·3000은 보수 강경론자들에게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심지어 이회창 후보측으로부터는 ‘북한에게 전부 다 퍼주자는 것이냐.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정책보다 한 발짝 더 나가는 것 아닌가’라는 얘기도 들었다”라고 강변했다. 현장관의 청문회 발언과 똑같다. “북한을 대화 창구로 이끌어내기 위해 조금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주문이 있다”라는 질문에도 이들은 “분명한 원칙을 허물 수는 없다”라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A씨는 “북한도 내심으로는 우리 제안에 귀가 솔깃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북한의 내부 사정이 복잡하다. 내부적으로 정리가 되면 반드시 우리의 제안에 어떤 제스처를 취해 올 것이다. 그때를 기다려야 한다”라고 밝혔다.

현장관 역시 “남북 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 오는 오해인 만큼 대화가 재개되면 비핵·개방·3000의 구체적 내용을 담으려는 노력을 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북한의 대남 의존도 더 높아져 함부로 못할 것”

▲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남성욱, 남주홍, 윤덕민, 서재진.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연합뉴스,뉴시스,연합뉴스,시사저널 이종현

3월 위기설에 대해서도 대체적으로 낙관적인 입장을 펼쳤다. B씨는 “현 정부 들어 북한의 대남 의존도는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다. 북한이 함부로 행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C씨가 몸담고 있는 기관은 최근 “북한의 위협이 있지만, 과거와 같은 한반도 위기 정국이 조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이나 미국이 북한의 ‘벼랑 끝 전술’ 방식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지금은 기다릴 때’라는 의견도 거의 동일하게 나왔다. D씨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은 기다리고 인내하는 과정임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A씨는 “(강경 발언에는) 북한의 내부적인 이유가 있다. 북한이 내부 정리가 어느 정도 되고 이제 조금 문 열어도 되겠다 싶을 때 반드시 대화 제의에 응할 것이다. 내부 정리가 될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라고 밝혔다.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기대와 믿음도 아주 확고했다. A씨는 “지난 부시 행정부는 심하게 표현해서 오히려 북한 핵문제를 갖고 놀았다고 보아야 한다. 북한 핵을 갖고 대화는 해도 협상은 안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8년 동안 방치해온 것이다. 그에 비하면 오바마 행정부는 원칙이 분명하다. 절대 핵은 불가하다는 것이고, 우리 정부와의 공조가 훨씬 더 강화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들은 현 정부와 자신들이 대북 강경론자로 비치는 것에 대해서도 강하게 부정했다. A씨는 “이대통령의 마인드는 이념보다는 실용이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현 정부가 한나라당 정부이니까 당연히 보수 강경이다, 이렇게 스스로 코드를 맞춰서 몰아붙이는 것은 곤란하다. 적어도 대북 문제에서만큼은 절대 보수 강경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B씨 역시 “언론에서 자꾸 우리들을 거론하며 마치 ‘네오콘’처럼 몇몇이 모여서 대북 강경책을 다 주도하는 듯이 부각시킨다. 모든 것이 오해이다. 각자 바쁜데. 서로 얼굴 볼 일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남북 대화의 필요성을 공통적으로 강하게 주장했다. A씨는 “현재의 남북 관계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 가운데는 분명히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뭔가 대화의 창구를 틀 필요가 있고, 또 실제 그런 타이밍을 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B씨는 “내가 정확히 알 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라고 말하면서도 “북한과의 물밑 접촉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현장관 역시 “조속한 시일 내에 중단된 남북 대화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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