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 아사까지 꾀하는 수단 ‘학살 원흉’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9.03.16 22: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시르 대통령, 국제 구호 단체 추방 위협

▲ 수단 북부의 다르푸르 난민 캠프에서 구호를 기다리는 난민들. ⓒ로이터

수단 북부 다르푸르 학살은 생소한 국제 뉴스가 아니다. 다르푸르 학살은 20년에 걸친 남북 수단 내전이 낳은 비극이다. 이 전쟁에서 불리해진 북수단군은 이슬람 부족들이 사는 북부 다르푸르로 잠입해 반군으로 변신했다. 그때가 2003년이었다. 이때부터 다르푸르 학살은 시작되었다. 올해로 6년째이다. 정부군과 반군이 밀고 밀리는 교전을 계속하는 동안 무고한 양민 40만명이 죽었다. 집을 잃은 사람은 2백70만명이다. 학살은 정부군이 조직적으로 하지만 반군도 필요하면 학살에 가담한다. 보다 못한 미국이 2004년 9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성명을 통해 다르푸르를 21세기의 대량학살(genocide)로 규정했다. 규모에서는 홀로코스트에 미치지 못하나 잔혹성에서는 뒤지지 않는다. 이 학살은 결국, 강대국들의 이해 갈등 속에  이 시대 인류의 최대 비극으로 굳어가고 있다. 

이 비극이 최근 다시 국제 사회의 초점으로 등장했다. 해결의 끝이 보이기는커녕 더 참혹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네덜란드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지난 3월4일 오말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에 대해 반인륜 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다르푸르 난민들은 뒤늦기는 했으나 이를 환영했다. 원수나 다름없는 바시르가 재판에 회부되면 삶의 희망이 올 줄 알았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국제형사재판소의 체포영장 발부에 ‘무차별 공격’ 경고까지

▲ 바시르 수단 대통령. ⓒEPA

바시르는 ICC의 영장을 비웃으면서 다르푸르의 난민을 돕는 국제 구호 기관들을 추방하겠다고 위협했다. 이미 옥스팜(Oxsfam), 어린이구호기구(Save the children), 국경 없는 의사회 등 13개 국제 구호 단체와 3개 국내 지원 그룹이 추방된 마당이다. 구호 활동은 60% 줄어들었다. 아직까지 남아서 난민을 돕고 있는 구호 단체는 85개 국제 비정부기구(NGO)뿐이다. 이들마저 추방되면 다르푸르 난민 구호는 전면 중단된다. 난만들은 그동안 구호 기관들로부터 최소한의 식량과 물을 공급받았다. 이 원조가 끊기면 오염된 물을 먹은 난민들이 이질 같은 전염병에 걸려 대규모로 사망한다. 보건 관계자들은 질병으로 죽는 사람이 총탄에 맞아 죽는 사람보다 많을 것이라 경고한다. 바시르는 눈도 꿈벅하지 않는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ICC와 도박을 시작한 바시르는 구호 기관들이 ICC와 공모하고 있기 때문에 추방한다며 의기양양하다.

바시르는 체포영장이 발부된  다음 날 전군에 비상 사태를 내렸다. 다르푸르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하겠다는 경고였다. 정부군은 바시르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 북부 다르푸르 수도 엘 파셰르를 전격 방문한 바시르의 얼굴에서 반인륜 범죄에 대한 회개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양키들이 미국을 건국하면서 학살한 본토 흑인, 베트남과 이라크에서 자행한 학살, 히로시마 학살 등을 거론하면서 이 일로 누가 재판을 받았느냐”라고 반문했다. 그의 다르푸르 현장 방문에는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등 그동안 바시르를 두둔해온 아랍연맹 대표들이 동행했다. 다르푸르 사태를 어렵게 만드는 한 단면이다. 서방 대표들은 동행하지 않았다. 바시르는 수단 내정에 간섭하면 구호 기관이든 , 외국 특사이든, 유엔 대표이든 누구나 추방하겠다고 선언했다.

ICC는 바시르에 대한 체포영장에 10건의 반인륜 범죄 혐의를 열거했다. 반군 소탕작전을 벌이면서 양민 학살, 강간, 고문 등 각종 잔혹 범죄를 자행했다는 것이다.

아랍과 아프리카 국가들은 바시르에 대한 재판에 제동을 걸었다. 프랑스도 아랍과 비슷한 태도를 보인다. 수단이 자체적으로 위기를 해소할 동안 재판을 1년 연기하라고 요구했다. 바시르를 환영하는 군중들은 체포영장을 발부한 ICC 수석 검사 오캄포의 얼굴에 X 자를 그린 피켓을 들고 열광했다. 바시르는 ICC의 조치를 지지하는 모든 인간들을 “내 구두로 밟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시에게 구두를 던진 이라크 기자에게서 보았듯이 아랍 세계에서는 누구를 모욕할 때 구두가 등장한다.

ICC와 바시르의 대결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의외의 첫 시련이다. 이란, 러시아 혹은 중국이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근 3백만명의 생명줄을 끊는다는 위협 앞에 오바마는 아무런 카드도 갖지 못하고 있다. 추방 조치가 원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국무부의 논평이 전부이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이 점점 강경해지는 분위기이다. “바시르의 조치는 또 다른 대량 학살이다”라는 입장이 강화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바시르는 이제 총칼이 아니라 생명줄을 차단하는 방법으로 제2의 대량 살인을 준비하고 있다.

다르푸르 난민 캠프, 질병과 물 부족 해결이 더 시급해

구호 기관 추방에 따른 당장의 여파는 굶어죽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시급한 것은 질병과 물 부족이다. 특히 서부 다르푸르의 사정이 심각하다. 우물과 지하에서 발전기로 끌어올리는 식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발전기를 돌리는 연료는 1~2주면 바닥나고 그 이후에는 마실 물이 없어진다. 보건소들은 이미 문을 닫았다. 일부 수용소에서는 설사병이 돌기 시작했고, 어린이들이 죽고 있다. 많은 난민이 살 곳을 찾아 이웃 차드로 피신할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나 환영할 사람은 없다. 차드 자체도 가난에 찌들려 있는 데다 바시르가 차드 반군에 무기를 공급해 차드 정부를 공격하게 만드는 바람에 난민들이 정착할 곳은 없다.

세계식량계획(WFP)의 조셋 시언 국장은 다르푸르가 새로운 형태의 지옥으로 변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즉각 100만명에 대한 지원이 중단되었다.  

서방 기자들이 만난 다르푸르 난민 중 재판 연기를 바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바시르의 보복이 아무리 가혹하더라도 이런 범죄자는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것이 모두의 소망이다. 미국은 다르푸르에서 쓸 당근과 채찍을 찾느라 고민하고 있다. 

미 공군 참모총장 메릴 엠피크 장군이 궁여지책으로 한 가지 묘안을 냈다. 다르푸르 상공을 비행금지구역(no fly zone)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바시르는 주로 공군기를 이용해 다르푸르 반군과 주민들을 공격하고 있다. 주민들을 학살하는 것은 거주민의 씨를 말려 반군의 거점을 약화시키려는 목적이다. 따라서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면 그에게는 타격이 될 것이고, 미국에는 카드가 생긴다. 다른 대안은 남부 수단 지도자들로 하여금 다르푸르 행정권을 장악하게 하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다르푸르에 1만명의 병력을 파견하겠다는 제의를 여러 차례 했다. 북부 수단 당국이 다르푸르 치안을 담당하지 못한다면 남부 수단은 국제 지원을 받아 다르푸르를 통제할 수 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은 엠피크의 제안이 일리가 있다며 무엇을 하든 더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사태를 방관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바시르는 국제 사회를 시험하고 있다. 오바마와 여타 세계 지도자들은 단호하고 즉각적인 결단을 내려야 한다. 수단에서 천연자원을 수입하는 대가로 바시르에게 무기를 대주는 중국도 생각을 바꿀 때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