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기업 회장과 검찰 고위 인사도 있었다”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9.03.2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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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은 세간에 나도는 ‘장자연 리스트’에 거론된 인사들 외에 또 다른 인물들이 장씨와 관련되어 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또 리스트에 언급된 인사들이 장씨의 전 소속사 대표인 김씨를 돕고 있는 정황도 ?

▲ 3월16일 경기도 분당경찰서에서 오지용 형사과장이 탤런트 고 장자연씨 문건(왼쪽) 수사 상황을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KBS 화면캡쳐(왼쪽), 연합뉴스(오른쪽)

좌절인가, 항거인가. 탤런트 장자연씨가 죽음으로써 말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누가, 꿈 많던 한 신인 탤런트를 죽음으로 내몰았나. 그녀의 죽음은 종합판이다. 목표만을 바라보고 달려갔던 목표 지상주의, 돈과 권력을 배경으로 쾌락을 탐했던 힘 있는 자들, 이들을 비판·감시해야 할 언론의 공생, 출연을 미끼로 대가를 요구했던 방송 권력의 실상 등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 때문에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분노를 바탕에 깔고 있다. 대중은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이들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시중에 나도는 ‘장자연 리스트’는 여러 가지이다. 등장하는 인물도 같지 않다. 숫자는 대략 10명 선이다. ‘장자연 리스트’의 정확한 내용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리스트를 입수한 KBS, 장씨의 소속사 전 대표로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더컨텐츠엔터테인먼트 대표 김성훈씨, 전 매니저 유장호씨, 장씨의 가족 정도이다. 수사를 진행하는 경찰도 확실한 리스트를 갖고 있지 못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일간지 대표, 방송사 PD, 경제·금융계 인사 등의 이름이 거론된다는 점이다.

김대표 보호하려는 '보이지 않는세력'과의 전쟁

3월14일 ‘장자연 리스트’ 문건을 최초로 입수해 세상에 알린 KBS는 3월19일 “유력 일간지가 자사 대표 때문에 리스트를 은폐하려고 했다”라고 보도했다. 같은 날 MBC는 유족이 이 일간지 대표를 고소했다고 보도했다. 언론계에서는 이 유력 일간지가 문건을 사전에 입수하고도 자사 대표가 관련되었기 때문에 보도하지 않았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리스트의 실체는 점점 밝혀지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 사정 기관의 한 관계자도 “온갖 루머가 횡행하고 있기 때문에 빨리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조현오 경기지방경찰청장도 수사 중인 분당경찰서를 방문해 성역 없이 수사하겠다고 밝혀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전면 수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경찰은 3월20일 수사팀을 41명으로 늘리고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 장씨가 쓴 문건에 따르면 이번 사건을 밝혀줄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은 더컨텐츠엔터테인먼트 김대표이다. 장씨가 쓴 대로라면 이른바 ‘성상납’ 전모를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정·관·재계 거물급들과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그의 인맥으로 볼 때 자발적으로 수사에 응하거나 입을 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때문에 경찰이 김대표를 보호하려는 ‘보이지 않는 세력’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느냐가 수사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시사저널>은 이번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세간에 나도는 ‘장자연 리스트’에 거론된 인물들 외에 ‘제3의 인물들’이 장씨와 관련되어 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장씨와 한동안 친하게 지냈고 장씨의 지인들과도 잘 알고 지내는 한 인사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기업 회장과 검찰 고위 인사가 관련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장씨가 기획사에 소속되어 연예계 활동을 하게 되기까지 이 유명 기업 회장의 도움이 있었고, 이런 인연으로 이후 그와 장씨가 제주도로 골프를 하러 다니는 등 남다른 관계에 있었다는 것이다. 장씨가 전 소속사 대표였던 김씨로부터 폭행당하는 등 괴롭힘을 당했던 배경 중 하나도, 마음대로 장씨를 불러내곤 했던 이 유명 기업 회장과 ‘소속’을 강조하는 기획사 대표 김씨의 갈등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알려진 ‘장자연 리스트’ 속의 인물이 주로 전 소속사 대표 김씨나 방송 쪽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유명 대기업 회장 등은 ‘또 다른 줄기’라는 설명이었다.

검찰 고위 인사는 이 유명 기업 회장과 친한 사이로 알려졌다. 그의 이름이 어떻게 불거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에 불려간 장씨의 지인들이 진술을 했거나 경찰이 압수수색에서 확보했다는 ‘데스노트’에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권력 핵심부도 이미 사안의 민감성을 파악하고 대처 방안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의 인사는 “지금은 전초전에 불과하다.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기획사 대표 김씨가 입을 열면 세상이 뒤집힐 것이다. (이번 사건이 커지는 것을) 막으려는 힘센 사람들이 너무 많다”라고 말했다. 앞서 거론한 유명 기업 회장은 물론 과거 정권의 권력 실세들과 관계·재계·방송계 인사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취재 과정에서 ‘장자연 리스트’에 언급된 인물들이 현재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김대표를 돕고 있는 정황도 포착되었다. ‘리스트’의 신빙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청담동 사람들’이 열쇠 쥐고 있다

장씨는 생을 마감하기 최소 6개월 전인 지난해 하반기부터 강남 청담동 일대에서 친한 지인들에게 울면서 “비참하다”라며 자신의 고통을 하소연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 사정에 밝은 한 연예계 인사는 “이번 사건은 덮으려고 해도 덮을 수가 없을 것이다. 장씨가 너무 많은 주변 사람에게 고통을 하소연했기 때문에 알 만한 사람은 이미 내용을 알고 있다. 장씨가 자신이 누구를 만났고, 그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털어놓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경찰이 철저히 수사를 한다면 이른바 ‘리스트’의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이번 사건은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르는 파괴력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주로 강남 청담동 일대에 있는 장씨의 지인들을 제대로 수사하면 그녀가 연예계에 입문하는 과정, 입문한 이후 겪은 고통, 관련된 인사들이 누구인지 등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교롭게도 이번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더컨텐츠엔터테인먼트 김대표도 지난해 청담동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결과적으로 보면 ‘청담동 사람들’이야말로 이번 사건을 풀어줄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장씨는 청담동 사람-유명 기업 회장-김대표로 이어지는 라인을 밟아 연예계에 입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KBS가 보도한 ‘장자연 리스트’에 등장하는 이들이 실제로 ‘성상납’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당사자는 목숨을 끊었고 거론된 이들은 하나같이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볼 때 있지도 않은 일, 특히 자신에게 극히 수치스런 일을 기록하며 관련된 이들의 이름을 허위로 적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법적으로 ‘성상납’을 입증하기는 어렵더라도 장씨의 글이 힘을 갖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장씨는 막내였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집안을 이끌 것으로 기대를 모아왔다. 그를 아는 한 인사는 “그녀는 스타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착하고 명랑했다”라고 말했다. 그녀가 연예계에 본격 입문한 것은 불과 3년 남짓하다. 이 기간 동안 그녀는 술자리 등에 끝없이 끌려다니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가 죽음으로써 말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현실에 대한 항거인가, 아니면 스스로에 대한 좌절인가. 


▲ 고 장자연씨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했던 더컨텐츠엔터테인먼트 회사 전경(하늘색 지붕). ⓒ시사저널 임준선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더컨텐츠엔터테인먼트 김성훈 대표는 입을 열 것인가.

고 장자연씨가 쓴 문건에 따르면 그는 장씨에게 술 접대와 성상납을 강요한 인물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그를 아는 이들은 김씨가 충분히 그렇게 할 만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과거부터 ‘접대’를 잘하기로 유명했다는 것이다. 부동산 투자 등으로 거액을 번 그는 삼성동에 있는 사옥 3층에 침실과 욕실이 딸린 방을 마련해놓고 접대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때 “변호사를 선임했다. 귀국해 결백을 밝히겠다”라고 밝혔으나 실제 귀국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지금 상태로 보면 2002년처럼 당분간 귀국하지 않고 사태 추이를 지켜보는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난 2002년에 정·재계 성상납 의혹 사건 당시에도 수사선상에 올랐던 그는 해외에 머무르며 시간을 끄는 수법으로 결국, 사법처리를 피했던 전력이 있다. 당시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외압설’이 무성했다. 김씨 주변에는 늘 재계나 방송계 인사뿐 아니라 권력 실세들이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그의 배경이 당시 검찰 수사를 피해갈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나 하는 추측이 나왔다.

이번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은 지난 3월18일 인터폴에 적색 수배를 요청했다. 그가 휴대전화를 꺼놓는 등 귀국을 미루려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남자 모델을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당했는데 고소당한 지 한 달쯤 뒤인 지난해 12월 일본으로 가 지금까지 머무르고 있다. ‘마약 관련설’도 돌아 관계 당국이 관심을 갖고 있다. 연예계 주변에서는 문건 폭로를 주도한 호야엔터테인먼트 유장호 대표가 구속된 뒤에야 귀국하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유력하다.

그가 입을 열면 세상이 시끄러워질 것 같다. 이 때문에 그와 관계를 맺었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그의 귀국을 막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대표 또한 물밑에서 자신의 운명과 관련한 ‘거래’를 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2002년과 다르다. 사건의 파장이 이미 사회적으로 커질 만큼 커졌다. 무언가 결말을 짓고 가야 하는 상황이다. 누군가는 죽을 수밖에 없고 김대표는 앞줄에 서 있다. 그가 버티는 쪽을 택했다고 판단되면서 그를 귀국시키려는 수사 당국의 압박 작전 또한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이번에도 칼날을 피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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