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가 김태균을 부른다
  •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09.04.01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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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우터들 몰려와 관심 보여…정식 절차 등 변수 많아 더 지켜봐야

▲ WBC 한국 야구 대표팀의 4번 타자로 맹활약을 펼친 김태균 선수가 3월25일 귀국 환영 기자회견에서 답변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김태균(27·한화)의 별명은 ‘김별명’이다. 별명이 많다고 붙여진 별명이다. 알려진 별명만 100개가 넘는다. 시도때도 없이 플라이를 친다고 ‘김뜬공’, 찬스에 강하다고 ‘김찬스’라는 별명이 붙었다. 1루로 출루하다 다리가 꼬여 넘어졌을 때는 ‘김꽈당’이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이 달리기도 했다.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라운드가 열린 미국에서도 김태균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그 가운데 인상적인 호칭 하나가 ‘김매니’였다. LA 다저스의 중심 타자 매니 라미레스처럼 강타자라고 붙여진 별명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미국 메이저리그(MLB) 스카우터들도 김태균을 그렇게 불렀다는 점이다. 그럴 만도 했다.

김태균은 WBC 9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4푼5리 3홈런 11타점을 기록했다. 홈런은 대회 공동 1위, 타점은 단독 1위였다. 기록만 놓고 본다면 매니 라미레스급의 활약을 펼친 셈이다.

당연히 그의 주변에는 항상 MLB 스카우터들이 몰렸다. 복수의 스카우터는 기자에게 김태균이 어떤 선수인지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의 접근은 아니었다. 그들은 김태균이 올 시즌을 끝으로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김태균이 MLB에 진출한다면 한국 프로야구 출신 타자 가운데 첫 번째로 빅 리그에 입성하는 역사적인 인물이 된다.

올 시즌 끝으로 자유계약선수로 풀려

김태균은 국내 프로야구 선수 가운데 MLB 진출이 가장 유력한 이로 꼽힌다. 실력이 MLB에 가장 근접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2001년 천안북일고를 졸업하고 그해 한화 이글스에 입단한 김태균은 지난해까지 개인 통산 타율 3할8리, 1백69홈런, 6백39타점을 기록했다. ‘동갑내기’ 이대호(롯데)를 제외하고 그를 능가할 오른손 타자는 국내에 없다. 올 시즌을 끝으로 FA로 풀리기 때문에 해외 진출에 대한 족쇄는 없다. WBC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만큼 그의 MLB 진출은 매우 희망적이다.

여기서 잠시 최근 MLB의 지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MLB 경기당 홈런 수는 2.01개였다. 1993년 경기당 홈런 수 1.78개 이후 15년 만에 최저 수준이었다. WBC 준결승에서 만났던 베네수엘라의 주포 미겔 카브레라는 37개의 홈런을 치고 아메리칸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1992년 프레드 맥그리프가 내셔널리그에서 35홈런으로 그해 홈런왕에 오른 이후 최악의 홈런왕이었다.

많은 미국 야구 전문가들은 MLB 홈런 감소의 가장 큰 요인으로 ‘금지약물 복용의 감소’를 들고 있다. 미국의 유명한 야구 칼럼니스트 피터 게몬스는 “배리 본즈, 로저 클레멘스, 알렉스 로드리게스 등 메이저리그 유명 스타들의 금지약물 복용이 속속 밝혀지면서 많은 메이저리거가 금지약물을 멀리하고 있다. MLB 사무국의 반도핑 정책이 강화되면 될수록 약물에 의지했던 타자들의 파워가 계속 감소해 행크 아론 이전, 인간 본연의 힘에만 의지하던 시대로 회귀할 것이다”라고 예상한다.

MLB는 아시아 야구를 약물 청정 지역으로 꼽고 있다. 실제로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몇몇 선수들이 근육강화제인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는 의심을 샀지만 실체가 밝혀진 적은 없다. 김태균은 각종 국제 대회에 출전하며 수시로 도핑 검사를 받아 약물과는 거리가 먼 선수로 검증되었다. 한 시즌 홈런 20개 이상을 칠 수 있는 약물 청정 타자, 이것이 MLB 스카우터들이 김태균을 매력적인 선수로 보는 또 다른 이유이다. 그렇다면 김태균은 과연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있을까.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성공 확률 높은 일본 선택할 수도…본인 의지에 달려

김태균이 MLB에 진출하고자 한다면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 입찰)을 거쳐야 한다. 포스팅 시스템이란 한·미 선수계약협정에 따라 MLB 구단이 한국 또는 일본 프로리그에서 뛰는 선수를 영입할 경우 밟는 정식 절차를 뜻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MLB 커미셔너가 한국야구위원회(KBO)에 해당 선수의 신분 조회를 요청한 뒤 MLB 30개 구단에 해당 선수의 유효함을 공시한다. 공시한 날로부터 4일 동안 관심 있는 구단들은 입찰액을 적어내며 가장 높은 액수를 제시한 팀에게 해당 선수와의 독점 교섭권을 준다. 해당 선수의 소속 구단이 응찰액을 수용하면 그날로부터 30일 이내에 계약하면 된다.

그러나 김태균이 포스팅에 응했을 때 몸값이 얼마나 높을지는 다소 의문이다. 지금껏 한국에서는 3차례의 포스팅이 있었다. 1998년 이상훈(은퇴), 2002년 임창용(야쿠르트), 진필중(은퇴)이었다. 세 선수는 모두 100만 달러 이하의 응찰액을 기록하며 포스팅을 통한 미국행이 좌절되었다.

ⓒ연합뉴스

김태균에 대한 MLB의 관심이 아무리 폭증했어도 한국에서 성공 사례가 전무한 포스팅을 MLB 구단이 활용할지 의문이다. 설령 활용한다손 쳐도 앞선 세 선수의 몸값 이상을 기록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무엇보다 김태균의 MLB행이 안갯속에 싸인 것은 일본프로야구(NPB) 때문이다.

NPB 센트럴리그 한신 타이거즈는 김태균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이승엽을 영입한 뒤 엄청난 중계권료 수입을 올리며 구단 가치가 일시에 상승한 이른바 ‘이승엽 효과’를 누리자 한신은 지난해부터 한국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재일동포가 많이 사는 오사카에서 한국 선수가 뛴다면 ‘이승엽 효과’ 이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한신의 생각이다.

일본 야구계는 김태균의 몸값을 최소 3억 엔 이상으로 보고 있다. 객관적으로 김태균이 MLB에 진출한다면 그보다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성공 가능성은 일본보다 현실적으로 낮다.

선수들도 MLB보다는 안정적이고 성공 확률이 높은 일본을 선호한다. MLB가 국내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꿈의 무대’로 인식되었던 것은 오래전의 이야기이다.

일본에서 스포츠 에이전트로 활동 중인 이동훈 PSM 대표는 “과거 선수 유출을 두려워한 KBO가 선수들의 MLB 진출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면 요즘은 선수들의 바뀐 의지가 더 걸림돌이다. MLB 진출보다는 9년간 열심히 한국에서 뛴 뒤 NPB에 진출해 부와 명예를 손에 쥐자는 것이 대다수 선수들의 계획”이라고 밝혔다. 알려진 바로는 김태균도 미국보다는 일본 쪽에 관심이 많다.

김태균의 MLB 진출에는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한국 프로야구 출신의 첫 빅 리그 타자가 될지, 이승엽의 뒤를 잇는 새로운 NPB 거포로 거듭날지는 올 시즌이 끝나면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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