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성 착취’ 권력 관계·먹이사슬 확실히 끊어내라
  • 권미혁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
  • 승인 2009.04.0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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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적 ‘리스트 공개’ 경계 필요…제2의 장자연 다시 나오지 않도록 충분한 사회적 논의 있어야

▲ 권미혁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고 장자연씨의 성 착취 의혹이 한국 사회를 들끓게 하고 있다.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가 뜨거운 관심거리이다. 여기저기서 공개하라고 아우성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리스트가 공개될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이다. 우리 여성계는 장자연씨 사건을 ‘성상납’이 아니라 ‘성 착취’로 본다. 또, 리스트 공개가 선정적으로 흐르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한다. 우리는 리스트를 공개하기 전에 많은 것을 고민하고 성찰해야 할 점이 많기 때문이다. 아울러 ‘연예인 성 착취’ 사건이 터졌을 때 여성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고통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

이른바 성추문 사건이 발생했을 때 누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될까? 우리는 이미 ㅂ씨 사건을 통해 그 답을 알고 있다. ㅂ씨 비디오 사건이 터졌을 때 비난의 화살은 ㅂ씨에게 쏟아졌다. 상대 남성이었던 사람은 심지어 이 사건을 계기로 한 인터넷 방송국에 취직했다. 또, 한 방송사는 연예 프로그램을 통해 비디오를 유출시킨 매니저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들려주기까지 했다. 성인 남녀의 개인적인 사랑 행위가 사회에 적나라하게 들키면서 여성 연예인은 이중 삼중 고통을 당해야 한다. ㅂ씨의 입장은 전혀 드러나지도,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반면, 학부모들은 교육상 안 좋다는 이유로 ㅂ씨를 출연시키지 말라고 했고 결국, ㅂ씨는 가수 생활을 접어야만 했다. 성(性)과 관련된 사건이 터지면 여성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강도는 남성에 비해 훨씬 가혹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에게 덧씌워진 각종 편견(정조 이데올로기를 포함해)의 결과가 반영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경우, 여성의 인권은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 연예인에게 가해지는 이중 잣대도 문제

여성 연예인에게 가해지는 이중적 잣대도 문제이다. 여성 연예인은 연예 산업에서 살아남기 위해 뛰어난 외모와 더불어 (직·간접적) 성적인 코드를 갖추도록 요구받게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뉴스 프로그램의 여자 아나운서가 바뀌는 이유는 성적 어필이 떨어질 때라는 이야기가 방송가에 나돌 정도였다. 때문에 여성들은 얼굴은 물론, 전신 성형까지 감수하지만 막상 외모 지상주의에 부합해도 그것 때문에 도리어 비난의 화살을 받곤 한다. 다이어트 비디오 관련 퇴출 사건이나 개그우먼 이영자씨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보다 외모를 중시하면서도 인공적인 외모는 배격하는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이중적 잣대로 인해 여성 연예인은 언제라도 비난의 여론에 휩싸이게 된다. 이같은 이중적 잣대가 여성 연예인의 신분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장자연씨 사건이 결국, 2002년 사건처럼 묻히게 될 것이라는 냉소적 기류가 흐르고 있다. 이것은 연예인과 권력과의 가장 마지막 먹이사슬에 있는 여성 연예인의 처지가 보호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성 연예인들이 자신이 당한 엄청난 성 착취를 무수히 고발하고 싶지만 결국, 좌절하는 것은 거대한 권력의 작동 구조 속에서 자신들이 선택할 수 있는 도구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장자연씨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 여성단체 회원들이 분당경찰서 앞에서 고 장자연씨 죽음에 대한 성역 없는 경찰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력 이용한 인권 유린 사례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성폭력 가해자의 인권 보호냐, 아니면 가해자의 신상을 낱낱이 공개해야 하느냐의 문제이다. 특히 지역사회에서는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가해자의 실명을 공개하는 것이 실제 범죄 예방이나 피해자 보호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가도 논란거리이다. 성폭력 가해자의 실명 공개는 성폭력 사건을 가해자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게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는 사회적인 문제를 비켜간다는 심각한 비판도 있다. 여성운동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논쟁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필자가 장자연 사건과 성폭력 가해자의 실명 공개를 굳이 연결시키는 이유는 소위 장자연 성 착취 리스트의 공개 논란에서 위의 고민들을 대입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개인적으로는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기에 한 여성 연예인의 몸과 마음을 그토록 만신창이로 만들었는지 궁금하며 그들에게 분노를 느낀다. 다만, 이런 이유로 리스트를 공개해야 한다는 것은 사건을 단순화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해서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는  장자연 리스트가 왜 그렇게 궁금한가. 다시 말하면 리스트의 공개가 이 사건에서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갖느냐는 것이다. 필자도 개인적으로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기에 한 여성 연예인을 그토록 힘들게 했는지 궁금하며 그들에게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리스트에 대한 관심보다 우리가 선행해야 할 일이 있다.

과연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사람과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가, 권력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의 인권을 함부로 (특히 성적으로) 한 적은 없던가. 이 사건과 관련해  많은 진단이 나오고 있지만 암암리에 권력을 이용한 성 착취의 구조 속에 우리가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가를 성찰하는 움직임은 별로 접하지 못했다.

다음으로 장자연씨 같은 제2, 제3의 연예인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 다시는 연예인 성 착취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구조적인 문제에서 고민해야 한다. 이런 과정이 생략된 채 장자연 리스트를 공개하는 것은 공개와 동시에 이 사건의 마무리를 뜻한다. 이렇게 되면 연예인 성  착취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사회적인 충분한 논의와 재발 방지 등의 대책이 마련된 뒤에 공개해도 늦지 않다.

현재 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전 소속사 대표 김 아무개씨는 해외에 체류하고 있다. 경찰은 김씨를 소환해서 조사하겠다고 한다. 만약 김씨가 소환되어 유죄가 인정될 경우, 이 사건이 일부 파렴치한 악덕 기획사 대표의 일로 축소되지 않기를 바란다. 성 착취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반복되는 사회 지도층들의 행태 그리고 사건을 덮으려는 의도가 난무하고 있다.

장자연씨가 죽음으로 사회에 경종을 울리려고 했던 것, 그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아야 한다. 리스트의 공개에 관심을 가지는 만큼 연예인 성 착취의 구조와 권력 관계가 낱낱이 밝혀졌으면 좋겠다. 특히 그 과정에서 늘 소외되어 왔던 여성들의 시선과 관점이 생생하게 반영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부디 공개하느냐 마느냐의 논란 전에 고소된 사람들에 대한 수사나 빨리 진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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