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의 사랑’이 변할까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04.01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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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재보선 판세 점검 ③-전주 덕진 / ‘정동영 공천 여부’가 변수

▲ 3월22일 인천 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전주 덕진의 재선거 양상이 어떻게 될 것 같냐고 예비후보 진영의 관계자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이들은 머뭇거리다 되물었다. “기자 양반한테 물읍시다. 도대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어떤 판세가 만들어질지 몰라 아리송해 모두 앞날을 예단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그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에 안테나를 바짝 세우며 밑그림을 그리기에 바쁠 뿐이었다.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전주 덕진에 출마하기 위해 귀국했다. 민주당은 이 지역을 전략 공천 지역으로 정했다. 언론에서는 ‘민주당 지도부가 정 전 장관을 공천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했다’라고 풀이했다. 지난 3월24일 정 전 장관과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만났다. 하지만 접점을 찾지 못하고 다시 만날 약속도 정하지 못한 채 헤어졌다.

이처럼 하루가 다르게 덕진의 선거판은 변하고 있다. 이미 출사표를 던진 예비후보들은 정 전 장관 때문에 낭패를 보았다. “정탐병을 뿌려놓고 상황을 분석하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라는 한 민주당 관계자의 말처럼 각 예비후보의 캠프는 갑자기 등장한 ‘DY(정동영) 변수’를 예측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김세웅 전 민주당 의원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한 이후 여러 명의 유력 인사들이 재선거 출마를 저울질했다. 지역에서는 DY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채수찬 전 의원과 김희수 전북도의회 의장의 이름이 유력하게 거론되었지만 이내 사그라졌다. 전주에서 만난 민주당 관계자는 “정 전 장관이 출마를 선언하면서 모두 그 뜻을 접은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전주 덕진이 여전히 정 전 장관의 텃밭임을 보여주었다.
정 전 장관이 처음 국회에 들어간 15대 총선에서 전주 덕진은 그에게 전국 최다 득표율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반면, 13년이 지난 2009년의 덕진은 그때와 다르다. 선거판은 소란스럽지만 유권자들은 냉담하다. 전주는 덕진, 완산 갑·을 등 세 곳의 선거구로 이루어진다. 이 중 완산 을을 제외한 두 곳에서 재선거가 결정되었다. 정 전 장관의 출마 선언 이후로 전북의 일개 지역구인 덕진은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창피하다. 나도 덕진에 살지만 이번에는 선거고 뭐고 모르겠다”(전주역의 한 택시기사)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만약 정 전 장관이 민주당 공천장을 받는다면 덕진의 재선거는 싱겁게 끝날 가능성이 크다. 정 전 장관이 정대표에게 “덕진에 출마하고 선대위원장을 맡겠다”라고 제안한 것은 그만큼 덕진에 출마한 ‘민주당 정동영’의 당선 가능성이 절대적이라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반면, 예비후보들측은 이런 정 전 장관의 제안을 두고 “지역민들이 자신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오만한 인식이다”라고 비판한다.

정 전 장관, 무소속 출마하면 인물론·동정론 힘 얻을 듯

만약 정 전 장관이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민주당이 거물급 외부 인사를 영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임수진 예비후보측의 윤지용 사무장은 “정 전 장관이 무소속으로 출마할 경우 인물론·동정론 등을 합치면 일단 기본으로 40%는 먹고 들어간다. 누가 공천장 달랑 하나 들고 나오려고 하겠나”라고 지적했다. 정대표측 관계자도 “전략 공천을 위해 접촉한 분들과 잘 안 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거물급 외부 인사를 영입했을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정동영 죽이기’ 논란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외부 인물의 영입이 어려울 경우 자연스럽게 예비후보 중에서 전략 공천하는 방안도 나오고 있다. 다른 예비후보자들 역시 “가장 좋은 그림은 DY를 공천에서 배제하고 낙하산 공천이 아니라 예비후보 중에 경쟁력 있는 인물을 전략 공천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민주당 중앙당이나 덕진에서도 정 전 장관이 공천을 받지 못했을 때 무소속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전주 덕진은 전북 진안군으로 빠져나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자연스레 덕진구에는 진안 출신 유권자가 많다. 만약 전략공천이 아니라 경선을 통해서 후보를 선출한다면 진안 군수를 세 번이나 역임한 임수진 후보가 유권자 구성이나 인지도 면에서 유리하다. ‘전북일보’가 지난 3월24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정 전 장관은 빼고 실시했다)를 보면 임수진 후보는 9.6%의 지지율로 1위를 달렸다. 1위의 지지율이 낮은 이유는 정 전 장관이 출마를 선언하고 민주당의 공천 작업이 늦어지면서 ‘모르겠다’라고 답한 응답자가 76.5%에 달하기 때문이다. 김양곤(3.3%), 황인택(1.9%), 한명규(1.5%), 홍성영(0.6%) 등은 진보신당의 염경석 예비후보(6.5%)보다도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결과를 놓고 보면 정 전 장관 출마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은 임수진 예비후보이다. 선거 캠프에서는 “일전을 각오하고 있다”라는 비장한 이야기도 나온다. 임수진 후보측은 “정 전 장관이 무소속으로 나올 경우 거기에 맞설 수 있는 대안 카드가 필요하다. 지지율 추이를 봤을 때 당이 우리를 대안으로 밀어줘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대안을 넘어 연대의 필요성도 제시한다. 윤사무장은 “당이 힘을 실어줘야 하고 동시에 다른 예비후보들의 연대가 있어야 DY와 싸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한명규 예비후보는 정대표측에서 관심 있게 보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 예비후보 진영도 “우리 후보가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하며 “처음부터 정 전 장관이 출마하는 가능성을 생각하고 전략을 짰다. 가급적 안 나왔으면 좋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뿐이다”라고 말했다. 한 후보는 매일경제 편집국장 출신으로 지역적 기반이 약하다. 전북일보 여론조사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김은균 사무장은 “갑자기 DY 변수가 생기고 판이 짜이지 않은 상태라 조사의 신뢰도가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 흐름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 전북 전주시 덕진구의 거리에 4·29 재보선에 이미 출사표를 던진 예비후보들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완산 갑 선거의 최대 변수로도 작용…민주당의 선택 주목

현재 덕진의 분위기가 정 전 장관에게 예전만큼 호의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막상 새롭게 선거판이 꾸려지면 정 전 장관의 당선 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하지만 덕진에서는 대체적으로 ‘누가 나와도 정 전 장관을 이기기는 어렵다’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그럼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대표는 어떤 선택을 할까. 정 전 장관에게 공천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대표의 스타일이 구겨지는 것이 문제이다. “이번 기회에 부드러운 이미지도 탈피할 겸 강하게 나가야 한다”라는 측근들의 주장대로 공천 배제로 간다면 덕진에서 패배를 감수해야 한다. 이왕 패배를 할 바에는 정 전 장관과의 득표 차이를 줄이면서 ‘개혁 공천’이라는 선명성을 내세우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럴 경우에는 덕진과 이웃한 재선거 지역인 완산 갑의 공천에도 영향을 준다. 덕진과 완산 갑 두 곳에 참신한 인물을 내세워 정 전 장관이 완산 갑의 후보와 ‘무소속 연대’를 할 경우에 나타날 효과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경선으로 후보를 결정하는 완산 갑의 민주당 후보 11명이 덕진으로 안테나를 돌리는 이유이다. 완산 갑에 출마한 민주당 예비후보 진영의 관계자가 지적한 ‘완산 갑 선거의 최대 변수’ 역시 ‘DY 출마로 개혁 공천의 전선이 확장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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