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열자마자 곳곳에 ‘지뢰밭’
  • 김영화 (한국일보 기자) ()
  • 승인 2009.04.0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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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임시국회 3대 쟁점 / ‘박연차 수사·추경 안 처리·계류 법안 통과’에 난항 예고

▲ 국회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4월 임시국회가 1일 시작되었지만 첩첩산중의 형국이다. 28조9천억원 규모의 ‘슈퍼’ 추가경정예산안과 비정규직 관련 법 개정안 등 각종 쟁점 법안이 다루어질 예정인 데다 대정부 질문 과정에서 검찰의 박연차 리스트 수사 문제도 부각될 것으로 보여 여야의 격돌이 예고되고 있다.

우선 4월 임시국회는 ‘공안 정국’ 공방으로 첫 테이프를 끊을 전망이다. 한나라당, 민주당, 선진과 창조의 모임 등 세 교섭단체 원내 수석부대표가 합의한 일정에 따르면 6일부터 10일까지 5일간 대정부 질문이 잡혀 있다. 이 중 정치 분야(6일), 교육·사회·문화 분야(10일) 대정부 질문이 박연차 리스트 수사를 둘러싼 격돌의 장이 될 공산이 크다.

공격수는 당연히 민주당이 될 것이다. 최근 검찰 수사로 이광재·서갑원 의원 등 친노 386 인사들이 직격탄을 맞은 데다, 수사의 칼날이 점차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YTN 노조위원장 구속,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강제 수사, 국가인권위원회 축소 등 최근 일련의 공안통치가 ‘국정 운영의 걸림돌은 과감히 제거하고 가겠다’라는 정권 2년차 국정 운영 기조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런 프레임은 박연차 리스트 수사도 야당 탄압 시도로 이해하게 만들고 있다. 민주당이 ‘박연차 리스트’에 대해 특별검사제와 국정조사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사건의 출발점이 박연차 회장이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현 여권 인사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것임에도 검찰이 야당 인사들의 금품 수수 의혹 수사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원혜영 원내대표)라는 것이다. 물론 이면에는 어차피 전 정권 비리 부분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특검을 통해 현 정권 비리도 끄집어내야 한다는 셈법이 깔려 있다.

시작부터 ‘박연차 리스트 수사’ 둘러싸고 격돌의 장 될 듯

하지만 한나라당이 특검 및 국정조사를 수용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지금 검찰 수사는 정치 보복이라고 할 여지가 없다. 증거가 있으니 처벌할 뿐이다”(홍준표 원내대표)라는 것이 한나라당의 전반적인 분위기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최근 발표에서도 야당의 편파·표적 수사, 전 정권 죽이기 주장에도 불구하고 응답자의 50% 가까이가 수사에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로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 연루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거나 확실한 사실로 검찰 수사의 편파성이 문제되지 않는 이상 정치 공방만 주고받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현재 검찰의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부산·경남(PK) 출신 여권 인사 중에 친박근혜계 의원들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변수이다. 친박계 의원들이 이번 수사를 ‘청와대발 여의도 정계 개편’으로 규정하는 순간, 야당의 특검 요구에 동조하는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4월 임시국회에서 여야의 최대 승부처는 역시 추가경정예산안 처리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1일 한승수 국무총리가 대독한 시정연설을 통해 ‘원안대로 통과’를 당부한 만큼 28조9천억원 규모인 추경안의 뼈대를 최대한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추경은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맞다”라는 홍원내대표의 언급에서도 이런 기류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도 3월 초 여권에서 ‘슈퍼 추경’의 군불을 뗄 때부터 적지 않은 준비를 해왔다. 야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13조8천억원 규모의 자체 추경안을 제시한 것을 봐도 양측의 논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임을 예고한다.

물론 초유의 경제 위기 속에 민생 안정과 일자리 창출, 경기회복을 위해 추경이 필요하다는 데는 여야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의견 차가 크다. 당장 민주당은 “추경안을 심의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지난해 말 경기 예측을 잘못한 것과 예산안을 단독 처리한 것부터 사과하라”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말 4% 경제성장에 근거한 예산안을 짰다가 세수 감소가 예상되자 이번 추경에 11조원을 추가하는 바람에 ‘빚더미 추경’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민주당은 또 28조9천억원은 너무 많다는 입장이다. 이대로라면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재정 건정성이 크게 악화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대안으로 고통 분담 차원의 정부 인건비 삭감 등으로 세출을 더 줄이고, 부자 감세 시행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빚더미 추경’ 공세에 대해 “28조9천억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3%로 재정 적자가 우려될 만한 수준이 아니다. 국가 채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이 75%이지만, 우리는 38% 정도로 재정 적자 비율이 낮아 건전한 상태로 감당할 수 있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법안 전쟁의 시발점이었던 방송법이 6월 국회로 이월되었지만, 쟁점 법안을 둘러싼 줄다리기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감세 법안 등 2백12개를 4월 국회 처리 현안 법안으로 선정해 본회의 통과를 밀어붙일 태세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집단소송법 등 31개 법안을 ‘MB 악법’으로 선정했다. 민주당이 저지하려는 법안은 대부분 한나라당의 우선 처리 법안과 겹치는 만큼 상임위에서의 격돌이 불가피하다. 

현재 국회에는 2월에 처리하지 못한 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한국산업은행법, 통신비밀보호법 등 쟁점 법안 다수가 계류되어 있다. 해당 법안들은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위해 심사 기간을 지정한 법안들로 이미 본회의에 넘어온 상태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상임위 처리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부실 심사 법안이다”라며 상임위에 다시 회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4·29 재·보선 이전에 부담되는 법안을 빨리 털어내고 싶은 한나라당 입장과 근본적으로 배치된다.

쟁점 법안에 대한 여야 입장 차 여전…전망 어두워

실제로 4월 임시국회는 이런 여야의 입장 차 때문에 첫날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한나라당이 민주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의 통폐합을 다룬 한국토지주택공사법을 단독 처리한 데 따른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회의 도중 일방적으로 회의를 소집해 회의실 문을 잠근 채 법안을 날치기 통과했다”라고 주장한다. 민주당은 의총을 열어 원상 회복 조치가 있을 때까지 전체 상임위 일정 협의를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한 상태이다.

4월1일 국회에 제출된 비정규직 법안도 핵심 쟁점 법안으로 부각하고 있다. 이 법안은 비정규직 고용 제한 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비정규직 법안은 7월부터 중소기업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이번 국회에서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되어야 한다”라며 밀어붙일 기세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고용 기간 연장은 비정규직을 구조화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2006년 제정된 현재의 비정규직 보호법은 7년여의 논란 끝에 합의한 결과물이었다. 어렵게 마련한 사회적 기준인 만큼 이를 손질하는 것도 자칫 극심한 사회 갈등과 분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4월 국회가 제대로 굴러갈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박연차 리스트 수사로 국회의원들이 검찰에 불려 다니느라 정신이 없고, 재·보선 공천과 관련해 여야 구분 없이 내홍이 큰 것도 전망을 어둡게 한다. 이대로라면 “지난 회기 때마다 보여주었던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를 자성하고 4월 국회를 ‘위민(爲民) 국회’로 만들자”라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당부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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