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봉하 프로젝트’의 꿈
  • 부산·김해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04.0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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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지지부진하던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사업, ‘박연차 게이트’로 치명타 입어

지난 2006년 1월19일 노무현 대통령이 고향인 경남 김해의 봉하마을을 찾았다. 그는 선영을 참배하고 형 건평씨 집에서 동네 주민들과 오찬을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깜짝 놀랄 만한 발언을 했다. “퇴임하면 고향인 김해나 부산에 내려와 살겠다”라고 밝힌 것이다. 아직 임기를 2년이나 더 남겨둔 시점이었다. 청와대에서는 서둘러 “아직 아무것도 확정된 것이 없다”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사실상 이때부터 이미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퇴임 이후에 대한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이날을 시작으로 노 전 대통령은 점점 더 구체적으로 자신의 퇴임 후 구상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우리 세대가 아이들한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어릴 때 개구리 잡고 가재 잡던 마을을 복원시켜서 물려주는 것이다. 그런 일을 (내가) 대통령 마치고 하고 싶다. 연구를 해서 마을의 숲과 생태계를 복원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2006년 1월24일), “대통령을 그만두고 은퇴하면 뭘 할까 여러 가지를 생각 중인데 그중 하나로 읍·면 수준의 자치운동 같은 것을 시범적으로 해보고 싶다”(2006년 4월3일)라고 말했다.

2006년 6월 초에는 한 일간지가 노 전 대통령측이 구상하는 이른바 ‘봉하마을 귀향 프로젝트’의 일말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당시 청와대는 부인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로 알려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움직임도 이때 포착되었다. 박회장의 ‘자금관리인’으로 알려진 최측근인 정승영 정산개발 사장은 2005년 7월 노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봉하마을의 산9번지 8천여 평을 본인 명의로 매입했다. 그리고 2006년 11월 정사장은 8천여 평 가운데 1천3백평을 지분 분할해서 노 전 대통령에게 팔았다. 노 전 대통령 생가 바로 뒤편에 있는 땅이다. 노건평씨 주변의 김해 지역 인사에 따르면, 2006년 중·후반기는 청와대에서 봉하 프로젝트를 위해 현지를 여러 차례 드나들던 무렵이었다. 현지에서는 건평씨가 현장 책임 역할을 했다. 사실상 박회장측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봉하마을의 땅을 구입해준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 경남 양산시에서 열린 제9회 노사모 정기총회에서 모처럼 참여정부 참모들과 후원그룹이 모였다. 왼쪽 두 번째부터 이병완 전 비서실장, 안희정 전 참여정부평가포럼 집행위원장,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 문재인 전 비서실장,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연합뉴스

친노 허브인 재단 설립도 차질

노 전 대통령의 귀향 프로젝트는 이래저래 많은 구설을 만들었다. 상당히 ‘젊은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 가능성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노 전 대통령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사업 얘기는 크게 두 갈래였다. 친환경 생태 사업과 재단 설립이었다. 김해에 위치한 인제대에서 2007년 4월 ‘노무현 기념관’ 사업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환경 사업은 봉하마을에서 하면서 재단은 서울이나 서울 근교에 두고 서울과 지방을 오갈 것이라는 전망이 무성했다. 사실상 재단이 ‘친노(親盧)’의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아무튼 노 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에 이런 퇴임 구상은 측근들을 통해 물밑에서 더욱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사업 쪽은 노 전 대통령의 ‘공식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재단 쪽은 ‘정치적 동지’인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각각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역시 강회장이었다. 강회장이 2007년 하반기 정상문 당시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함께 박회장을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것도 사업에 대한 논의 때문이었다. 이 자리에서 박회장이 “재단 설립에 필요하다면 홍콩 계좌에 있는 5백만 달러를 가져다 쓰라”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재단 출연 재산 문제가 이때부터 논의되었음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강회장은 2007년 9월, 50억원을 들여 ㈜봉화를 설립했다. 주소지는 자신의 사업장인 부산 사하구 신평동 창신섬유 바로 옆이었다. 등기부등본에 나타난 ㈜봉화의 사업 목적을 보면 노 전 대통령측이 구상했던 사업의 밑그림이 훤히 드러난다. 농촌 자연 관광 사업, 생태 및 문화 보존 사업, 전원주택 건설·분양·임대 사업, 농림·수산 경영 사업, 전산 관련업, 홍보 및 출판업 등이다. 노 전 대통령측이 하고자 하는 사업 구상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즉 봉하마을의 활동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회사가 설립된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의 퇴임이 임박했을 무렵, 그 주변에서 상당히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부산상고 출신인 ‘친노’ 그룹의 한 관계자는 “어른(노무현)이 인터넷에 대한 관심이 많다. 사이버 공간에서 활발히 정치적 토론도 하고, 정책 대안도 제시하고 싶어 한다. 소위 ‘온라인 공화국’이 건설되는 것이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직후 강한 애착을 보였던 웹사이트인 ‘민주주의 2.0’에 대한 구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07년과 2008년의 온도 차이는 확연히 달랐다. 친노측의 한 인사는 “충분히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너무 혹독했다”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노 전 대통령측에 돈이 너무 없다. 그러다 보니 (박회장 등) 이런 구설이 자꾸 불거지는 것이다. 후원 기업인 중에는 강회장이 거의 유일한데, 하지만 그 역시도 지역의 중소기업인으로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인제대와 공동으로 건립하기로 얘기가 오갔던 대통령기념관 사업도 결국, 돈이 없어 무산된 것으로 밝혀졌다.

봉하마을이 꿈꾸던 프로젝트는 하나같이 난관에 부닥치기 시작했다. 정부와 김해시에서 지원하기로 한 김해시의 지역개발 사업도 한나라당으로부터 집중 난타를 당했다. “전직 대통령을 위해 4백95억원의 혈세가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었다. 화포천 생태공원 개발과 봉하산 웰빙숲 조성, 봉하마을 쉼터 및 노 전 대통령 생가 복원 개발 등이 포함된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현 정부 출범 직후 끊임없이 전·현 정부 간의 충돌이 이어진 것도 큰 요인이 되었다. 위의 친노 인사는 “물론 현 정부에서 정치적 의도로 이쪽을 지나치게 많이 자극했지만, 그래도 정권 초기에는 새 정부를 조금 도와주면서 지난 정부는 조용히 나서지 않는 정치적 제스처도 필요했다. 너무 적대적 관계로 나갔다”라고 아쉬움을 피력했다. 그나마 전·현 정부 간에 미세하게 이어졌던 대화 채널도 단절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기록물 유출 파문이 불거지면서 ‘민주주의 2.0’ 사이트 운용도 차질을 빚었고, 재단 설립 논의도 쏙 기어들어갔다. 

봉하마을이 궁지에 몰리면서 ‘친노’의 재정적 후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봉화도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지난해 12월 지금의 위치인 봉하마을로 사무실을 옮겼고 20억원이 추가로 출자되었지만, 이로 인해 강회장은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봉화 사무실에는 두어 명의 직원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을 뿐 현재 특별히 추진하는 사업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봉하마을의 수세는 재단 설립 계획에도 큰 차질을 가져왔다. 당초 재단은 지난해 6월께 준비위가 구성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통령 기록물 유출, 노건평씨 구속, 박연차 수사 등 악재가 이어지면서 지금은 사실상 기약이 없는 상태이다.

그럼에도 지금 검찰의 ‘박연차 수사’ 칼끝이 재단 쪽으로 향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현재 노건평씨 첫째 사위인 연철호씨의 5백만 달러 수수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 주변에서 “돈이 혹시 재단의 출연 기금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라는 얘기가 새어나오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노 전 대통령을 사실상 타깃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봉하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적이 이 재단을 설립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여당은 물론 민주당에서도 크게 주목한 것이 재단이었다. 친노 세력의 정치적 행보와 크게 부합하기 때문이다. 친환경 생태 사업 등을 벌이고, 후원자인 강회장이 ㈜봉화를 설립한 것도 따지고 보면 재단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재단이 출범하면 노무현 정부를 홍보할 수 있는 저술과 출판 활동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여기에 기존의 민주주의 2.0을 비롯해 여러 측근들이 각각 운영하고 있는 각종 연구소와 모임 등의 허브 역할을 하리라는 전망이 그것이었다.

일부 친노 그룹 정치 세력화는 진행 중

▲ 노 전 대통령 일행이 ‘쌀 작목반 영농 설명회’에 참석한 뒤 관계자들과 봉하 오리쌀이 재배되고 있는 논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봉하마을 쪽도 여기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극도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던 문재인 전 실장이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나선 것도 그렇다. 검찰에서 재단 쪽을 타깃으로 삼으려는 의도를 읽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재단의 출현 자체를 아예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봉하마을측의 한 비서관은 “언론에서 말하고 있는 ‘봉하재단’이라는 것은 아무런 실체가 없다. 이름조차도 언론에서 마음대로 짓고 그렇게 부르고 있다. 정확히 말해서 재단은 문 전 실장 중심으로 몇몇 분이 필요성을 갖고 있고, 논의 중인 사항이다. 그 이상 아무것도 없다”라고 밝혔다.

친노 그룹의 한 핵심 인사 역시 “참여정부 말기에 재단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그런 차원에서 논의가 있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에 부딪쳐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현재도 그런 상황이다. 반드시 해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지만 할 여건이 현재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맞다. 재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산 출현인데, 그런 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향후에도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봉하마을측은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사업에 집착하는 것일까. 이는 노 전 대통령의 의지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환경운동, 지방 분권과 지역 균형발전 및 시민주권 실현, 정책연구소 설립을 통한 정치 현안 연구, 인터넷 토론 사이트를 통한 토론 문화 정착 등이 노 전 대통령의 강력한 실천 의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측은 “누차 말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참여는 절대 없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친노 세력으로 범위를 넓히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재 봉하마을이 꿈꾸는 사업이 궁극적으로는 정치와 겹친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친노 그룹에 속하는 PK(부산·경남) 출신의 한 정치인은 “당초 지난해 18대 총선에서 소위 ‘친노’ 세력의 총선 출마가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있었던 17대 대선에서의 참패 요인 등으로 인해 18대 총선은 사실상 꿈을 접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정치 날개를 접었다고 할 수는 없다.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을 준비하는 단계일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현재 민주당의 구도로는 영남 출신의 스타 정치인이 많이 나와야 정권을 다시 만회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노 전 대통령이 공을 들이는 PK 지역이 그 중심에 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때 친노 세력의 첫 정치 도전장은 2010년 5월의 지방선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되었다. 지방선거가 이명박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서였다.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광재 의원이 강원도지사에 도전할 것이라는 얘기도 떠돌았다. 정부·여당이 이런 움직임을 예민하게 받아들여서 ‘친노 죽이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친노 세력들은 정치 참여파와 관망파로 나뉘고 있다. 하지만 각 분야에서 활발한 영역을 다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른바 각개약진인 셈이다. 친노 진영에서 가장 주목해볼 ‘3인방’으로 이해찬 전 총리와 유시민 전 장관, 문재인 전 실장을 꼽는 사람이 많다.

현재 이 전 총리는 서울 여의도에 재단법인 ‘광장’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항간에 나도는 ‘정치 재개설’과 ‘신당 창당설’에 대한 질문에 이 전 총리측은 “정치는 지금도 사실상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국회의원 출마하고 이런 정치는 안 한다. 그보다는 좋은 정치인들을 많이 배출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향후 역할과 견주어서 상당히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유 전 장관은 지난해 총선에서 낙선한 이후 경북대 등에서 강의와 저술 활동에만 몰두하며 일선과 거리를 두었으나, 최근 다시 정치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는 재야 시민단체에 폭넓은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최근 ‘더 좋은 민주주의 연구소’를 개소했다. 여기에는 이 전 총리와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친노 세력이 대부분 모여 있다. 얼마 전 해체되기는 했지만 ‘참여정부 평가포럼’을 이끌었던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역시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친노 세력들은 모임을 통한 교류도 활발히 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장·차관 출신 모임인 참정회, 청와대 비서관 출신 모임인 청우회가 있다. 이들 모임은 재단이 설립되면 본격적으로 여기에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인 행보로 가장 주목되는 곳은 청정회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낙선한 바 있는 전해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비롯한 정치의 꿈을 갖고 있는 인사들과 전·현직 의원들이 대거 참여하는 구체적인 정치 세력화 집단이다.

노무현 정부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지금 여러 가지 시련을 겪고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믿음은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갈수록 더 돋보일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그런 믿음을 의심치 않는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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