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거래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
  • 김재태 기자 (purundal@yahoo.co.kr)
  • 승인 2009.04.0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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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인간에게 소통의 도구로서 꽤 유용하다. 적당한 음주는 자칫 서먹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원활하게 해준다. 하지만 술자리가 다 명랑·쾌활한 것은 아니다. 욕망이라는 불순물이 끼어들면 술의 뒤끝이 혼탁할 수밖에 없다.

요즘 온 나라에 술 냄새가 쾌쾌하다. 유쾌하게 소비되어야 할 술이 일부에 의해 유쾌하지 않게 소비된 탓이다. 이른바 유흥 접객업소라는 곳의 간판과 내부 풍경이 거의 매일 뉴스의 배경 화면처럼 등장한다. 그 배후에는 권력과 성(性)이 음흉하게 똬리를 틀고 있다.

최근 청와대 행정관과 방송통신위 간부, 대형 유선방송업체 직원이 끈끈하고 화통하게 어울린 사건은 권력과 성이 총출연한 한 편의 ‘리얼 다큐’이다. 그들의 행적은 권력의 최고 중추인 청와대 관계자가 직접 개입했다는 점과, 그날 참석자들의 동선이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화된 접대 코스를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상치 않다. 당사자들은 아무 목적도 없는 친목 모임이었다고 강변하지만, 믿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사건을 적발한 경찰이 초기에 단순 성매매 사건으로 축소·은폐하려 했던 정황도 개운치 않다. 설령 그들의 변명처럼 우의를 다지기 위한 자리였다 할지라도 왜 하필이면 해당 유선방송업체의 합병에 관한 방송통신위의 심사가 있기 직전에 그런 자리를 가졌어야 했는지, 또 그 업체의 직원이 왜 법인카드로 모든 비용을 지불해야 했는지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 부분을 명확하게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초동 수사에서 의심스러운 행적을 보였던 경찰이 제대로 명예회복을 하는 길이다.

이번 청와대 비서관 성접대 의혹과 고 장자연씨를 둘러싼 유력 인사들의 성상납 강요 의혹은 공통으로 원초적인 의문을 수반한다. 즉, 그들의 관계에서 거래되어서는 안 될 권력이나 성이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은밀하게 거래되었느냐 하는 점이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진다면 누구를 막론하고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단단히 정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 2002년 장자연씨의 전 소속사 대표가 관련된 연예인 성상납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자신이 맡아 진행하던 수사를 막은 세력이 있었다고 밝힌 현직 검사의 증언은 매우 충격적이다(사회면 38쪽 기사 참조). 이 검사는 그 당시 수사가 끝까지 이루어졌다면 장자연씨 사건은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사건들에 대한 수사도 미진한 채로 끝날 경우 비극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조선 인조 때 말단 관원에서 시작해 영의정까지 오른 오윤겸은 나랏일을 하는 관리가 평생 동안 지켜야 할 ‘계(戒)’로 세 가지를 꼽았다. 젊어서는 ‘색(色)’을 피하고 장년에는 ‘투(鬪 ; 남과 지위나 명예를 다투는 일)’를 멀리하며, 늙어서는 ‘득(得 ; 물욕을 탐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몸소 실천하며 살다간 그도 죽기 전에는 회한에 차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나라에는 공이 없었고 몸에는 덕이 없었다. 그러므로 비석을 세우거나 남에게 만장을 청구하지 마라.”

제 아무리 왕후장상이라도 권력은 다른 사람을 위해 쓰라고 주어지는 것이지 자기 자신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엄격하지 않고 도덕으로 통제되지 않는 권력은 깨진 유리조각과 다를 바 없다. 이번에 물의를 일으킨 청와대 행정관이나 방통위 간부, 또 그들의 조직이 만약 수사기관 총수인 경찰청장의 말처럼 그저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는 생각을 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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