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결’ 끝내고 북한을 끌고 가라
  • 김동현 (미국 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 교수·전 미 국? ()
  • 승인 2009.04.1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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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 발사와 급변 사태설 이후 남북 및 북·미 대화의 전망

▲ 4월2일 G-20 금융정상회의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오른쪽)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워싱턴 현지의 시선은 ‘북한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미국이 앞으로 북한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쏠리고 있다.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미사일 정국이 일정 기간 냉각기를 지나면 북·미 대화와 6자 틀의 다자 회담이 열리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화를 통한 해결책 외에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국방부는 북한의 로켓 발사를 실패한 대륙 간 탄도미사일 대포동 2호로 간주하고 있고, 북한은 궤도 진입에 성공한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한다. 로켓 발사의 다중적인 동기와 북한의 득실에 대한 분석은 서울과 워싱턴의 전문가들 사이에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북한은 국제 사회, 특히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직접적인 경고를 무시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미사일 발사에 대한 국제적 제재를 요구하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사건이 새로운 안보 위기로 치닫게 되는 것을 미국이 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경고가 무시당할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엔이 새로운 제재 결의안을 채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선 ‘P-5’에 속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강경 보수파들은 ‘도발 행위’로 규정된 대포동 2호 발사를 강력히 제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강경파들의 요구 내용 중에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1718호에 포함된 북한의 미사일 관련 구입 및 수출 활동 금지 그리고 금융 자산 동결, 북한의 위폐, 마약 거래, 돈 세탁 등 국제적 불법 활동을 단절시키기 위한 미국의 국내법 적용, 미사일 방어 체제 발전, 한국의 확산방지계획(PSI) 가입 및 다단계 지역 미사일 방어체계(MD) 참여 등이 있다.

공화당의 정신적 지도자 뉴이트 깅그리치는 빌 클린턴과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환상적인 대외 정책’(Fantasy Foreign Policy)이라고 공격한다. 북한의 로켓 발사는 무력 행사를 통해서라도 저지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부시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지상 최악의 정권인 북한과 협상을 한다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정책 내용에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 강경 기조를 대체로 수용했다. 이 점은 8년 전 부시 행정부가 출범할 때, 클린턴 행정부의 모든 것을 거절한 ABC(Anything But Clinton) 방침과 대조를 이룬다. 하지만 정책 이행 과정에는 차이가 뚜렷하다. 부시는 처음부터 북한과의 대화를 꺼렸지만, 오바마는 북한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다자와 양자 협상의 병행, 양자 협상 대표 지위의 격상, 북한 지도부와 접촉 등 형식의 쇄신을 보였다. 즉, 대북 정책의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를 추구하되 목표 달성의 수단은 북한을 실용적인 협상 대상으로 인정하고, 관계 정상화, 평화협정, 안전 보장, 경제 협력, 정상회담 등의 당근책을 제시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협상의 험난한 전도를 예상하면서 경우에 따라 채찍도 사용하겠다는 태세를 보였다.

미사일 파동 가라앉으면 북·미 관계는 협상 국면 진입할 듯

▲ 2000년 북한을 방문 중인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왼쪽). ⓒ연합뉴스

오바마의 대북 정책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 현재도 수립 중에 있다. 우선 국무부 동아시아 차관보와 국방부 아시아 차관보 등의 인사 인준 지연과 함께 행정부의 북한팀이 구성되지 않았다. 팀이 구성된 다음에라야 북한 비핵화 문제와 최근 급부상한 미사일 현안 등 미국의 우려 대상 문제들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고, 해결 방안들을 강구해 나가게 될 것이다. 방법은 실행을 통한 수정을 전제로 한다.

북한은 상당 기간 로켓 발사 계획을 추진하면서 워싱턴에 대한 압력 수위를 높였다.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해줄 것과 선 관계 정상화 후 비핵화를 주장했고, 지난 1월부터 줄이어 평양을 방문한 미국 전문가들에게 오바마가 부시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고 불평을 털어놓았다.

2009년 현재의 북한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누구의 탓이든 간에 어쨌든 북한은 지금 핵 물질과 핵무기를 사실상 보유하고 있고, 미사일 사정 거리를 10년 전보다 2배 이상 늘렸다. 북한의 미사일 탑재용 소형 핵탄두 개발 가능성, 우라늄 고농축 기술 완성의 잠재 능력, 핵과 미사일 기술의 확산 가능성은 주변 관련국 모두를 긴장케 한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의 안정에 대한 위협, 한국·일본 등의 대칭적 군비 경쟁 초래 등의 악몽은 미국이 북한을 방임할 수 없는 이유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미사일 파동이 일단 가라앉으면, 북·미 관계는 다시 서서히 협상 국면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많은 강경파가 바라는 것처럼 북한이 단시일 내에 자멸하지 않는 한,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 체제의 급변 사태 가능성이 전문가들에 의해 한국은 물론 미국 현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절대 통치자 김정일의 건강과 관련된 정보일 수 있다. 하지만 급변 사태가 곧 북한 체제의 붕괴로 곧바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은 강경파들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전쟁은 누구의 입장에서도 대안이 아니다. 북한도 전쟁은 자살 행위가 될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의 긴장은 급변 사태 가능성과 함께 앞으로 더 고조될 수 있다. 부분적이거나 한시적 무력 충돌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북한 스스로가 자멸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남북한의 경색 국면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의 희망대로 한·미동맹 강화와 대북 정책에 관한 한·미 간의 협력은 더욱 긴밀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시도가 설사 성공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남북 관계가 지금의 대결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면 한국의 운신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미가 긴밀히 공조하더라도 그 주도권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 쥐는 공조 체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북한은 처음에 남북 대화의 조건으로 두 개의 남북정상회담 합의 준수를 요구하다가, 다음에 남측의 사과를 요구했고 지금은 이명박 정부가 종식되어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초강경 전략으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북한도 한국처럼 ‘기다리는 전략’을 쓰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북한은 과거에 그렇게 비난하던 박정희 정권과도 대화했고, 전두환·김영삼 정권과도 정상회담을 추진했었다. 즉, 남북 대화의 재개 가능성은 아직도 있다. 다만, 북한 정권의 특성상 대화의 돌파구는 남쪽에서 뚫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대통령이 그런 의지가 있느냐이다. 남북 관계 정상화의 지름길은 역시 정상회담밖에 없다.

한편, 6자회담은 그 성질이 변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6자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6자회담이 재개되더라도 2·13 합의 2단계 완료에 대한 논의로 복귀하게 된다는 보장도 없다.

또한, 앞으로 북한의 비핵화 및 미사일 문제 등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한국의 PSI 가입이나 북한의 급변 사태 대비책을 너무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계획은 보안 유지 속에 은밀하게 수립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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