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곳에 집안 싸움 시끌
  • 감명국 ·김회권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04.21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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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재·보선 판세 총점검 / 경주에서 ‘박풍’, 전주에서 ‘정풍’…한나라당·민주당에 큰 부담

▲ 본격적인 선거 유세가 시작된 4월16일 전주 덕진 선거 유세장에서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무소속 정동영 후보의 유세 차량 앞을 지나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더 이상 여와 야의 싸움이 아니다. 사실상의 ‘집안 싸움’ 양상이다. 그래서 이번 4·29 재·보선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에게 상당한 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달만 하더라도 재·보선을 맞는 한나라당에는 위기감이 가득했다. 심지어 재·보선  지역 5곳 모두에서 패할 수도 있다는 ‘전패론’이 팽배했다. 하지만 검찰발 ‘박연차 게이트’ 쓰나미가 봉하마을을 초토화시키면서 여당에는 화색이 감돌았다. 거꾸로 민주당 전패론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여전히 위기론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그 진원지는 엉뚱하게도 ‘친박계’에 있다. “민주당은 우리를 도와주고 있는데, 저쪽(친박계)이 안 도와준다. 경주가 아주 골칫거리이다”라는 한 여당 초선 의원의 푸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현재 경북 경주는 초미의 관심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5곳 통틀어 최대 접전지로 꼽힌다.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정종복 후보와 무소속의 정수성 후보가 그야말로 혈전을 펼치고 있다. 정종복 후보는 이상득 의원의 양아들이라고까지 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정수성 후보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안보 특보를 지냈다. 

이른바 ‘친이(親李)’와 ‘친박(親朴)’의 집안 싸움이 점입가경 양상이다. 양측을 오가다 보면 다소 감정적인 대립 양상까지 노출된다. 친이계 성향의 한 관계자는 “오차 범위 내 접전이라고 한다. 결국, 막판에 가면 조직이 (승패를) 좌우하지 않겠느냐”라고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반면, 친박계 성향의 한 관계자는 “서울과 현지(경주)의 온도 차가 상당히 다른 듯하다. 현지에서는 10% 포인트 이상 정수성 후보가 앞선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래서 현지에서는 서울의 여론조사 결과를 못 믿겠다는 투이다”라고 전했다. 은근히 특정 여론조사 기관에 대한 불신감까지 거론하며 불편한 심기를 노출하기도 했다.

경주, ‘친이’ 정종복 후보와 ‘친박’ 정수성 후보가 ‘혈전’

분위기도 다르다. 친이측은 적잖이 다급한 눈치이다. 이미 지난 4월13일 최고위원회의를 경주에서 하기도 했다. 물론 여기에 친박계 인사는 대부분 불참했다. 박희태 대표 등 당 지도부가 경주를 총력 지원할 태세이다. 반면, 친박 쪽은 상당히 느긋한 표정이다. “우리로서는 하등 아쉬울 것이 없다. 답답한 것은 저쪽(친이)이다”라는 것이다.

친박 쪽 인사들은 이번 재·보선을 계기로 TK 지역에서의 ‘박근혜 파워’가 다시 한 번 입증되고 있다고 만족해한다. 특히 경주 현지에서 확인되고 있는 ‘박근혜 정서’에 대해 무척 고무된 듯하다. 지난 3월30일 대구 지역 행사를 위해 방문한 박 전 대표와 정종복 후보 간의 만남을 둘러싼 해프닝이 자주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당시 박 전 대표의 대구 방문 현장에 정후보가 나타나서 인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에는 두 사람이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이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일담을 놓고 양측의 공방이 이어졌다. 정종복 후보는 “박 전 대표께서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라고 소개했다. 만남 자체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는 듯했다. 친박계측의 말은 다르다. 이날 행사장에서 박 전 대표를 수행한 한 관계자는 “갑자기 정종복 후보가 예고도 없이 행사장에 찾아왔다. 그리고 박 전 대표에게 와서 ‘열심히 하겠다’라고 인사를 했다. 박 전 대표도 마지못해 ‘예’ 하고 대답하며 내미는 손을 짧게 잡았다. 그 순간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자 박 전 대표가 황급히 ‘찍지 마세요’라고 요청했다. 그게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는가”라고 밝혔다. ‘박심’(朴心)이 무엇인지를 놓고 양측이 경주에서 서로 다툼을 벌이는 양상이다.

경주 지역의 결과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친이·친박 양 진영은 상당한 앙금의 골을 확인하고 있다. 이래저래 한나라당은 뒤숭숭하다.

민주당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전주 덕진에 출마한 진보신당의 염경석 후보는 지난 4월15일 출사표를 던지며 이렇게 말했다. “정동영 후보가 전주 덕진 출마를 선언하면서 지역 유권자와 언론의 관심은 온통 정동영 출마 여부에 갇혔다.” 사실 지역을 넘어서 전국의 관심이 정 전 장관의 프레임에 갇혀버렸다. 오랫동안 지역을 누비며 준비한 염후보도 억울하겠지만 그래도 민주당만은 못하다. 정 전 장관의 출마로 재·보선 판이 요상하게 되어버렸다. 이번 재·보선에서 민주당은 ‘MB 정권의 무능, 부패, 오만을 심판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 전주 덕진의 무소속 정동영 후보(왼쪽)는 전주 완산 갑 등에도 ‘정풍’을 일으키고 있다. 오른쪽은 경주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친박계’ 정수성 후보의 사무실. ⓒ시사저널 유장훈

전주, 무소속 정동영 후보가 민주당 심판하는 모양새

뿌리 깊은 야당임을 자부하던 민주당은 이번 재·보선을 치르면서 생각보다 뿌리가 튼튼하지 못함을 증명했다. 한 민주당 당직자는 “50년 야당이라고 말하지만 오늘날 민주당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난 과정이었다. 민주 세력들의 집합체로 구심점 역할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퇴보했다. 당내 각 세력들이 성인이 되어야 하는데, 사춘기 청소년의 성장통만 보여주었다”라고 말했다. 분당론까지 이야기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자세라는 지적이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열심히 했다. 정동영 전 장관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지만 자신은 호남에서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박연차 게이트’까지 터져서 민주당은 뒤숭숭했다. 민주당의 일각에서는 현재의 민주당이 열린우리당의 짐을 떠안아야 하는 현실을 부담스러워 한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따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은 모르는 일이다”라고 말한 것에 대해 ‘신뢰가 가지 않는다’라는 응답(66.1%)이 ‘신뢰가 간다’라는 응답(22.7%)보다 세 배나 높게 나왔다. 하지만 정대표는 이렇다 할 말이 없이 여전히 선 긋기를 자제하고 있다.

정대표는 인내를 발휘하고 있지만 당내는 어수선하다. 일단 선거 구도가 민주당에게 불리하다. 정 전 장관이 출마를 고려했던 시점에서 만난 정대표의 한 측근은 “정대표가 어느 정도 민주당을 장악하고 있다. 정 전 장관측의 소수 인원으로는 반발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그 소수의 의견이 생각보다 거세다.

민심도 마찬가지이다. 전북의 한 도의원은 “민주당에서 ‘MB 타도’를 외쳐도 재·보궐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관심은 지역적이고 감성적이다. 지금 전주가 그렇다”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전주 덕진은 다른 곳에 비해 그나마 정 전 장관의 우세를 예측하기 쉬운 곳이다. 문제는 덕진이 아니라 완산 갑이다. 전주 덕진은 이미 정대표측에서도 “최대한 정 전 장관과의 득표 차를 줄이면서 개혁 공천의 이미지를 내세우는 쪽이다”(정대표측 관계자)라고 정리했던 곳이다. 반면, 완산 갑은 승리가 어느 정도 보장되던 곳이었다. 하지만 신건 전 국정원장이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정동영-신건 무소속 연대’가 뜰 채비가 갖춰졌다. 정 전 장관이 덕진에 나오면서 생각한 밑그림이 예상보다 크고 사나울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노영민 민주당 대변인은 “민주당의 피가 흐른다더니 그것과 맞지 않다”라고 비판했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그만큼 민주당이 느끼는 위기감도 크다.

전주 지역의 재선거는 단지 두 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과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민주당의 전패 시나리오는 전북을 잃는 것을 의미한다. 한나라당과 박빙이 예상되는 인천 부평 을 선거에도 악재가 될 수 있다. 오히려 수도권을 잃으면서 지역정당으로 고착될 수 있고, 전북을 잃으면서 호남의 민심도 잃을 수 있다. 이미 전주는 쪼개졌다. 김희수 전북 도의장은 “DY(정동영)와는 정치적 동반자이다”라고 말하며 정 전 장관을 도울 예정임을 밝혔다. 몇몇 도의원도 정 전 장관을 지지하고 있다. 민주당은 김의장을 선거대책위 부위원장에 포함시키면서 단속 중이다. 민주당 이미경 사무총장은 “민주당 후보가 있는 만큼 우리 후보를 돕는 것이 당원의 기본이다”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년 동안 내부 정리가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균열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폭발했다. 게다가 계파끼리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주류가 밀리는 듯한 양상이다. 민주당은 지난해부터 ‘뉴민주당 플랜’을 이행하겠다고 밝혔지만 개혁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민주당 관계자의 말처럼 “정치는 움직이지만 민주당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빈틈이 생겼고, 거기에 정 전 장관이라는 정이 제대로 꽂혔다”라는 말이 틀린 것이 아니다. 한때는 지지율을 회복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로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심판받는 선거가 되고 있다.

▲ 부평에서는 한나라당 이재훈 후보(맨 왼쪽 사진 가운데)와 민주당 홍영표 후보(오른쪽 사진 오른쪽 두 번째)가 치열한 접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현재 돌아가는 판세를 보아도 그렇다. 전주는 민주당 대 무소속의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주 덕진은 정 전 장관의 정치적 고향이다. 정 전 장관이 더 큰 꿈을 꾸기 위해서는 ‘압승’해야 한다. 반면, 김근식 후보는 ‘선전’해야 한다. 수도권인 부평 을에 집중하려던 중앙당은 선거운동 전략을 수정해 전주에도 집중하고 있다. 동교동계도 김후보를 적극 지원하려는 모양새이다. 한나라당 전희재 후보와 진보신당 염경석 후보 역시 정 전 장관 공격에 동참하면서 몰매를 때리는 형국이지만 정 전 장관측 관계자는 “대선 후보 때 이미 맷집은 단련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전략대로 할 뿐이다”라고 말하며 아랑곳하지 않는다.
네 명이 출마한 덕진과 달리 완산 갑에는 모두 여덟 명의 후보가 나섰다. 일단 민주당 공천에 탈락했던 후보들이 대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 후보인 이광철 전 의원은 바로 옆 지역구인 완산 을에서 17대 때 배지를 달았다. 완산 갑으로 오면서 조직력의 손실이 적었다. 조직력이 보전되었다는 점은 낮은 재·보궐 선거 투표율을 감안할 때 큰 무기가 된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 인사들이 게이트에 휘말린 현 시점에서 친노로 분류되는 것은 악재이다.

부평, 한나라당·민주당 ‘진검승부’…울산, ‘진보연합’ 기대 꺾여

정풍(鄭風) 역시 큰 변수이다. 덕진과 완산 갑의 연대가 성공할 경우 완산 갑에서 당선되는 무소속 후보는 상당한 정치적 위상을 얻을 수 있다. 일단 신 전 원장이 정 전 장관과 손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신 전 원장은 민주당이 공천 작업을 할 때만 해도 한광옥 전 총재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었다. 공천에서 탈락한 한 전 총재의 조직력을 흡수하고 정풍이 분다면 이 전 의원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한다. 무소속 오홍근 후보와 김형욱 후보도 정 전 장관과 연대를 꾀하고 있다.

전주에서 무소속 바람이 불면 불수록 유일한 수도권 격전지인 인천 부평 을에서 뛰고 있는 민주당 홍영표 후보는 힘들어진다. 부평 을은 한나라당과 유일하게 진검 승부를 벌이는 지역이다. 홍후보는 1985년 대우자동차 파업 당시 노동자 대표를 지냈다. 지난 18대 총선에는 이 지역에서 출마해 5% 차이로 아깝게 패배했다. 반면, 한나라당의 이재훈 후보는 전략 공천자이다. 광주 출신의 이재훈 후보는 전 지식경제부 차관으로 ‘GM 대우를 살리려면 경제 전문가를 찍어라’라는 메시지를 유권자에게 던졌다. 4월13일 <부평신문>의 여론조사에서는 홍후보가 32.1%, 이후보가 28.1%, 민주노동당의 김응호 후보가 6.2%를 기록했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4월14일에서야 부평으로 이사를 온 이후보의 28.1%이다. 낮은 인지도를 생각했을 때 높은 수치였다. 4월15일 리얼미터의 조사에서는 오히려 이후보가 29.7%를 기록해 홍후보(29.1%)를 오차 범위 내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흐름을 고려할 때 한나라당에게는 호재, 민주당에게는 악재이다.

한나라당이라고 악재가 없지는 않다. 경주에서 한나라당 후보인 정종복 전 의원과 친박 인사인 무소속 정수성 후보의 지지율은 엎치락뒤치락 중이다. 15일 리얼미터의 조사에서도 정수성 후보는 33.3%의 지지를 얻어 33.1%를 기록한 정종복 전 의원과 나란히 달렸다.

▲ 울산 북구에 출마한 민주노동당 김창현 후보(왼쪽)와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가 후보 단일화 담판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울산 북구는 진보연합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거듭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김창현 후보와 진보신당의 조승수 후보 사이에서 단일화가 기대되었지만 결국, 후보 등록일인 4월15일까지 성사되지 않았다. 울산 MBC-경상일보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의 박태동 후보가 19%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조후보가 17.8%로 2위를 달리고 있고, 김후보 역시 11.8%로 3위로 뒤쫓아 단일화로 한나라당 후보를 이길 수 있는 여지를 보였다. 다만, 처음으로 시도되는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공조가 순조롭지 못하면서 드라마틱한 요소가 떨어졌고, 유권자들이 지지부진한 단일화 논란에 피로감을 느낀다는 지적도 나온다. 울산 북구 선관위도 여기에 한몫했다. 원래 4월12~14일로 예정된 양 당의 단일후보 시도(민주노총 총투표)를 두고 울산 북구 선관위는 4월8일에서야 ‘불법’이라는 잘못된 유권해석을 내렸다. 반면, 이틀 뒤인 10일 중앙선관위는 적법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았다. “정부가 진보정당의 후보 단일화를 막고 있다”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정치권에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조차 이번 재·보선의 당선인을 쉽게 예측하지 않고 있다. 반면, 선거 뒤에 있을 여의도의 후폭풍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이번 재·보궐 선거가 국회의원 다섯 명을 뽑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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