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대응에 구멍 ‘숭숭’
  • 석유선 (의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09.05.05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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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기준 설정·공항 검역 등에서 허점 노출…전문가들 “추정환자 발견 후부터 선방”

▲ 4월29일 미주 노선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들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검역질문서를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멕시코발 인플루엔자A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환자가 국내에서도 발생했다. 당초 국내 환자가 없을 것으로 자신했던 질병관리본부는 관련 발언을 한 지 하루 만인 지난 4월28일 ‘추정환자’가 나옴에 따라 방역 체계의 허술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결국, 한국도 인플루엔자A의 안전 지대가 아님이 확인되었고 추가로 의심환자가 속속 발견되면서 국민의 불안은 가중되었다.

부처 간 ‘용어 정리’에도 시간 빼앗겨

추정환자 발견 이후에는 정부의 대응이 빨라졌다. 지난 4월30일 정부가 치료제 확보 등을 위한 긴급 예산을 편성하고 ‘24시간 방역 체계’를 가동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일단 정부의 대응을 합격점 수준의 점수인 ‘우’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타미플루’ 등 치료제의 비축과 백신 개발은 난제로 지적되는 등 문제점을 드러냈다. 

 보건 당국은 초기 대응 단계에서 적지 않은 허점을 드러냈다. 추정환자로 발견된 A씨와 멕시코 여행에 동행한 동료가 있었음에도 정부는 이들이 귀국한 지 3일이 지난 뒤에야 확인에 나서는 등 늦게 대응했다. 의심환자 등 진단 기준을 놓고도 정부는 초기에 혼란을 빚었다. 질병관리본부는 4월28일 신고 환자 3명에 대해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신속 항원검사’로 의심환자 여부를 가린다고 밝혔다. 그러다 4월29일에는 신속 항원검사의 양성·음성 여부와 상관없이 멕시코 등을 방문한 사실이 있거나 기침 증상이 있으면 모두 의심환자라고 말을 바꿨다.

진단 기준에 대한 혼선이 계속되자, 질병관리본부는 의심환자 대신 ‘조사·검사 대상’으로 변경했으며 이들 가운데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가 발견되어 감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되면 ‘추정환자’라고 명기한다고 공식화했다. 현재 세계보건기구(WHO)는 분류 단계를 ‘의심환자-추정환자-확진환자’ 3단계에서 ‘추정환자-확진환자’의 2단계로 축소했다.

공항 검역에도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항검역소의 열감지 시스템으로 감염자를 완벽히 가려낼 수 없다는 사실이 이번에 확인되었다. 이종구 질병관리본부장은 “공항 검역대에서 인플루엔자 의심환자가 걸러질 확률은 10% 정도에 불과하다”라고 밝혔다. 추정환자인 A씨와 동료 등도 인천국제공항 검역대에서 걸러지지 않았다. 인플루엔자A가 3~7일 동안의 잠복기를 거치기 때문에 입국 당시 체온 상태만으로 감염 여부를 정확히 가려낼 수 없다. 따라서 증상이 의심되면 본인 스스로 공항검역소나 거주지 인근 보건소로 신고하는 것이 최선이다.

치료제 확보 시급…국내 타미플루 비축량, 인구의 5%분에 불과

초기 대응에서의 혼선은 부처 간 용어 정리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돼지 독감’ ‘돼지 인플루엔자’ ‘SI’ ‘MI(멕시코 인플루엔자)’ 등이 혼용되었다. 처음에는 ‘돼지 독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나, 국내 돼지 농가의 타격을 우려한 농림수산식품부가 ‘MI’ 사용을 주장하면서 혼선은 계속되었다.

보건 당국은 전문가들과 협의한 끝에 4월29일 ‘SI’로 명칭을 잠정 확정했다. 그러나 4월30일 WHO가 인플루엔자A로 명칭을 변경하자 우리 정부도 이에 따르기로 했다.

북미산 돼지고기 수입 중단 조치도 굼떴다. 4월28일 오전까지만 해도 수입을 중단할 이유가 없다던 농식품부는 “북미 지역에서 생산되는 돼지고기 수입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수입 중단 조치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지만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결정했다고 뒤늦게 설명했으나 초기 대응이 늦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인플루엔자A 예방 관리 지침 전달도 늦었고 전반적으로 종합적 대책이 미흡하다는 소리가 나왔다. 한나라당 이정선 의원은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4월24일 오후 발병 보고를 받고도 27일에야 일선 보건소에 인플루엔자A 예방 관리 지침을 내려보냈다. 3일이나 늦게 움직인 것은 잘못되었다”라고 질타했다. 같은 당 신상진 의원은 “국민의 불안을 떨쳐주기 위해 우리 정부도 일본처럼 총리가 인플루엔자A 대책기구를 총괄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의학 전문가들과 보건 당국은 우리의 인플루엔자A의 초기 대응에는 문제가 있었지만 이후 처리에서는 무난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인플루엔자 정부 자문기구인 신종인플루엔자대책위원회 박승철 위원장(삼성서울병원)은 부실한 공항검역에 대해 “잠복기가 있는 인플루엔자를 공항에서 막는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인플루엔자의 경우 예방적 방역보다 치료적 방역으로 간다는 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시스템에 문제가 없다”라고 자평했다. 실제 국내 인플루엔자 모니터링 시스템인 ‘KISS((Korea Influenza Surveillence Scheme)’는 WHO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본부장은 “2001년 사스 유행 때도 중국에서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국내에는 확진환자가 한 명도 없었다. 사스 때 쌓은 대처 노하우를 믿어달라”라고 말했다.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는 “향후 1~2주가 고비로 2차 감염이 우려되기는 하지만 정부의 현재 대응 체계는 전반적으로 믿을 만하다. 

방역 체계보다 더 큰 문제는 인플루엔자A 항바이러스 치료제로 알려진 타미플루의 국내 비축량이 2백50만명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국내 인구 수의 5%에 불과한 양으로 WHO가 조류독감 대책으로 권장하는 전체 인구의 20%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AI나 인플루엔자A가 사람을 숙주로 삼아 사람과 사람, 대륙과 대륙 사이로 급속히 퍼지는 ‘팬데믹(Pandemic)’으로 비화할 경우 정부 고위관료, 국회의원, 군인, 경찰 등 사회지도층 인사를 중심으로 ‘선착순’에 따라 치료제를 공급받는 최악의 사태가 올 수도 있다.

더욱이 타미플루나 리렌자는 예방 백신이 아니라 발병 이후 사용이 가능한 항바이러스 치료제이고 현재 한국에는 인플루엔자A를 예방할 백신이 없는 상태이다. 국내에서도 인플루엔자A ‘추정환자’가 발생했고, 지속적으로 의심환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백신 개발은 시급한 실정이다.

전재희 보건복지부장관은 타미플루를 비롯한 항바이러스제 2백50만명분 확보에 필요한 6백30억원과 백신 1백30만명분 확보에 필요한 1백82억원을 추가 경정 예산으로 확보해 이를 조기 집행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백신은 WHO가 인플루엔자A 표준 균주를 가져오면 생산하는 데 6개월 이상 걸리기 때문에 연말에 이르러야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생산 이후 상용화까지 2~3년이 걸리는 독성시험과 임상시험 등 까다로운 식약청 절차가 남아 있는 것도 문제이다.

이재갑 교수는 “지난해 AI 발병 당시 1백25만명분을 늘리고, 이번에 2백50만명분을 추가 확보키로 하는 등 항상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야 대처하는 식이다. 전문가들이 경고했을 때, 확보했다면 이번 같은 사태에 좀더 여유 있게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 인플루엔자A는 호흡기를 통해 감염될 수 있으므로 청결을 잘 유지하는 것이 좋다. ⓒ시사저널 임영무
▒ 인플루엔자A의 실체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인플루엔자A는 돼지가 걸리는 독감 바이러스이다. 감염된 돼지와 직접 접촉한,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멕시코발 바이러스는 A형 H1N1형에서 유전체가 변형된 ‘신형’으로 사람 사이에도 전파되어 혼란이 커지고 있다.

여느 독감 바이러스처럼 인플루엔자A에 감염되면 발열, 기침, 무력감, 식용부진 등의 증상이 있고 사람에 따라 심할 경우 콧물, 인후통, 설사와 구토 증상이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잠복기가 5~7일이기 때문에 해외 위험 지역에 다녀온 뒤 증상이 의심되면 곧바로 보건소에 신고해야 한다.

일부의 우려처럼 돼지고기 섭취에 따른 위험은 없다. 바이러스를 손으로 만지거나 보균자와 접촉할 때 걸릴 수 있을 뿐, 돼지고기를 먹는다고 인플루엔자A에 걸리지 않는다.

▒ 어떻게 하면 예방할 수 있나

일반적인 인플루엔자와 마찬가지로 인플루엔자A에 대해서도 최고의 예방책은 ‘손씻기’이다.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강철인 교수는 무엇보다 손을 자주 깨끗이 씻고, 호흡기를 통한 감염이 가능하므로 되도록 외출을 삼가는 것이 좋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규칙적인 식생활과 휴식을 취해 면역력을 키우고 금연·금주하며 과로는 삼가해야 한다.

현재까지 인플루엔자A를 예방하는 백신은 없다. 때문에 일단 위험 지역 여행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다만, 조류독감 치료에 효과를 보인 ‘타미플루’ ‘리렌자’는 인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활동 억제에도 효능이 있어 인플루엔자A 발병 48시간 내에 투약하면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

▒ 정부 믿고 따르면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초기 대응 때 의심환자 수와 공항 검역에서 미흡한 점을 드러냈지만, 현재 정부의 대응은 믿을 만한 수준이다. 때문에 증상이 의심되면 보건소나 보건 당국(국번 없이 129)에 신고해야 한다.

 정부는 4월30일부터 ‘24시간 비상 방역 체제’에 돌입했고 2차 감염 예방 차원에서 지난 4월13일부터 25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캔자스 주, 뉴욕 시, 오하이오 주, 텍사스 주 여행객 명단을 확보해 추적 조사한다.
전재희 보건복지부장관은 “범정부 차원에서 신속하게 최대한의 자원과 인력을 투입해 인플루엔자A 유행으로 인한 국민의 피해와 불안을 최소화하겠다. 위험 지역 여행 후 1주일 내에 독감 증세가 있으면 입국시 검역소에, 입국 후에는 가까운 보건소에 즉시 신고하고 개인 위생에 만전을 기해달라”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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