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 이후 인플루엔자A 대재앙 올 수 있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05.05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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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에 퍼지고 있는 인플루엔자A가 대유행병으로 번진다면 앞으로 6개월 뒤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참극이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국내 최고의 바이러스 전문가로부터 나왔다. 그 내용을 단독 입수해 공개?

전세계로 퍼지고 있는 인플루엔자A(H1N1)(신종플루)가 팬데믹(pandemic, 대유행병)으로 간다면 오는 10월께 수많은 인류가 목숨을 잃는 대재앙이 올 것이라는 전망이 국내에서 처음 나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현재 인플루엔자A 전염병 경고 수준을 팬데믹의 직전인 5단계로 격상시켜 이른바 ‘현대판 흑사병’이 지구촌을 휩쓸게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국내 최고의 바이러스 전문가인 이환종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과거의 팬데믹을 분석해보면 시간에 따라 사이클을 유지해왔다. 발병 초기에는 비교적 적은 수의 사망자가 생기고 곧 사그라졌다. 그 후 몇 개월 동안 잠잠하다가 어느 순간 사망자가 대규모로 발생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만일 이번 인플루엔자A가 팬데믹으로 이어질 경우 시기적으로 오는 가을(구체적으로 10월쯤)이나 그 이후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대재앙이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해놓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팬데믹의 대표적인 사례는 1918~19년 세계적으로 약 5천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이다. 1918년 6월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매주 1천명당 10~20명의 사망자를 내며 전세계로 급속히 확산되었으나 사망자 수는 한 달 만에 줄어들었고, 이후 여름 동안 발병률은 뚝 떨어졌다. 하지만 그해 10월 초 사망자 수가 갑자기 늘면서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10월 한 달 동안 미국에서만 19만5천여 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수는 11월 중순을 고비로 점차 감소하기 시작해서 1919년 1월이 되어서야 소강 상태를 보였다. 그러다가 3월에 다시 한 번 사망자가 소폭 증가했고, 4월 중순까지 이어졌다.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대규모로 인명을 앗아간 3단계 피크(peak)가 일어난 것이다. 이 3단계 피크는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등 세계 각국에서 동일하게 일어났다(아래 그래프 참조).


이교수는 “이번 인플루엔자A로 인한 사망이 1918년의 첫 번째 피크에 해당할 수 있다. 물론 이같은 사이클이 오늘날에도 재연된다는 보장은 누구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앞날을 살펴볼 필요가 있고, 참사를 막기 위해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같은 대재앙 시나리오에 무게를 실어주는 것이 이른바 ‘팬데믹 주기설’이다. 스페인 독감(1918년), 아시아 독감(1957년),  홍콩 독감(1968년), 러시아 독감(1977년), 조류 독감(AI·1997년), 사스(SARS·2003년) 등 과거 팬데믹은 10~40년을 주기로 발생했다. 이에 따라 지금이 팬데믹이 생길 시기라는 데에는 바이러스 전문가들 사이에 큰 이견이 없다. 지난 2003년 이후 AI와 사스가 발생할 때마다 전문가들이 촉각을 곤두세웠던 것도 이른바 팬데믹 주기설에 따른 대재앙의 우려 때문이었다. 외국에서는 태양 흑점이 커질 때마다 팬데믹이 도래했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백신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인플루엔자A가 이렇게 주기적으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며 창궐할 경우 그 피해는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제각각이다. 우선 과거에 비해 세계 인구가 증가했고 교통수단이 발달했기 때문에 인플루엔자A 전파 속도와 피해 규모가 클 것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이교수는 “과거와 현재의 팬데믹 피해 규모에 대한 분석 자료가 있다. 1918년 세계 인구가 18억명이던 것이 2004년에는 약 59억명으로 3배 증가했다. 또, 과거에는 도보나 철도로 이동했지만 지금은 제트기로 오고 간다. 과거에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4개월이 걸렸지만, 지금은 3~4일이면 충분하다. 예방과 치료 등 과거보다 발달한 의료 수준을 감안하더라도 현 시점에서 팬데믹이 온다면 6천만명이 사망할 수 있다. 1918년(2천만명)보다 3배 정도 많은 수치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상반된 견해도 있다. 마스크나 살균 소독에 의존하던 과거와 달리 백신이 개발되어 있어 어느 정도는 예방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또, 아스피린 투여나 휴식이 과거의 핵심 치료법이었다면 지금은 항바이러스제가 개발되어 있다. 개인 건강 및 위생 상태가 예전보다 현저하게 좋아졌기 때문에 팬데믹이 오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주장 또한 설득력 있게 나온다.

정문현 인하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과거 팬데믹이 발생하면 한 나라 인구의 40%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그중 90%는 감기 정도의 가벼운 증세로 넘어가고 나머지에서 심각한 증세를 보였다. 그 가운데 극히 일부가 사망했다. 게다가 지금의 경제와 의료 수준은 과거보다 월등하게 발달했기 때문에 같은 강도의 인플루엔자가 팬데믹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과거와 같은 대재앙이 올 가능성은 희박하다”라고 주장했다.

팬데믹 되려면 신종·전염성·심각성 세 조건 충족되어야

대재앙 시나리오는 이번 인플루엔자A가 팬데믹으로 이어질 경우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인플루엔자A가 팬데믹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예단하지 못한다. 과거 사스와 조류독감처럼 비교적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고, 예상보다 심각한 상황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바이러스가 팬데믹이 되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신종·전염성·심각성이 그것이다. 신종 바이러스이면서 동시에 사람 사이에 전염성이 강해야 하고 사망자도 속출해야 한다. 1주일 전만 해도 인플루엔자A는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켜서 전문가들을 긴장시켰다. 돼지·조류·인간 인플루엔자가 혼합된 신종 바이러스인 데다 삽시간에 각국으로 전파되었고 멕시코에서는 하루에만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플루엔자A가 팬데믹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전문가들은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승철 인플루엔자A대책 자문위원장(인수공통전염병학회장·삼성서울병원 교수)은 “지난 1주일 동안 살펴보니 팬데믹의 세 가지 조건 중에 ‘심각성’ 조건에서 문제가 발견되었다. 지금쯤은 각국에서 곡소리가 들릴 정도로 사망자가 급증해야 한다. 이제 겨우 감염자 몇 명 중에 몇 명이 사망했다는 보고가 있을 뿐이다. 또, 사망자가 멕시코뿐만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해야 한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볼 때 이번 인플루엔자A는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이고 전염성도 있으며 일부는 사망할 것이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이어질 만큼 대단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아닌 것 같다”라고 전망했다.

지난 4월29일 미국에서 23개월짜리 아이가 인플루엔자A로 사망했다. 멕시코 이외의 국가에서 인플루엔자A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한 첫 번째 사례여서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WHO는 즉각 인플루엔자A의 경보 수준을 4단계에서 5단계로 높였다. 최고 단계인 6단계(2개국 이상에서 감염자가 발생한 팬데믹 상태)보다 한 단계 낮은 5단계는 최소 2개국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 감염이 발생했으므로 그런 징후가 임박했음을 나타내는 신호이다.

막대한 돈 들더라도 백신 개발에 매달려야 하는 이유

동시에 WHO는 종자 바이러스를 배양하기 시작했다. 배양이 완료되면 종자 바이러스는 우리나라의 녹십자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 있는 11개 백신 업체에 보내져 백신 생산에 사용된다.

백신 개발이 완료되려면 약 4~6개월 소요된다고 한다. 이른바 ‘10월 대재앙설’이 현실로 나타난다면 지금부터 백신을 준비해야 한다. 만일 인플루엔자A 사망자 증가세가 주춤한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다가는 1918년 스페인 독감 상황을 맞게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이 이런 대재앙 시나리오를 내놓고 관심을 갖는 배경에는 팬데믹의 도래 가능성과 함께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깔려 있다. 과거 AI와 사스를 경험한 우리나라에서 팬데믹에 대한 대안으로 모형 백신(mock-up vaccine)을 준비했다. 조금만 변형을 주면 웬만한 변종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을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백신 개발과 생산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는 것은 도박처럼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인플루엔자A가 팬데믹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거액을 허공에 날리는 데다 개발한 백신 자체도 무용지물이 된다. 바이러스는 백신에 내성을 가진 슈퍼 바이러스로 꾸준히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33년 전 미국에서 발생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사례를 교훈으로 삼을 것을 주문한다. 1976년 미국 뉴저지에 있는 한 군사기지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발생했다. 군인 2백명이 감염되었고 한 명이 사망했다. 그때도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재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당시 포드 미국 대통령은 1억3천4백만 달러를 투입해 백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백신 개발을 빌미로 엄청난 돈을 낭비하는 ‘정치 쇼’라는 비판도 나왔다. 

이런 비판을 일축한 것은 한 줄짜리 문장이었다. 미국 질병관리센터(CDC)가 미국 보건복지부(DHHS)에 보낸 3월13일자 공문에는 ‘목숨보다 돈으로 도박을 하는 것이 안전하다(It is safer to gamble with money than lives)’라는 표현이 있다. 그해 10월까지 1억5천회분 백신이 개발되었고, 4천5백만명이 접종했다. 백신 덕분인지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사라졌다.

편집자주 <시사저널>은 세계보건기구(WHO)와 보건복지가족부가 ‘돼지 인플루엔자(SI)’를 ‘인플루엔자A(H1N1)’로 변경해 부르기로 함에 따라 이 명칭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인플루엔자A’는 약칭 ‘신종플루’로 병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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