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앞에 열린‘꿈의 그라운드’
  • 한준희 (KBS 해설위원) ()
  • 승인 2009.05.26 16:3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UEFA 결승전, 맨유와 바르셀로나 ‘세기의 대결’호날두-메시의 승부·퍼거슨 용병술에 관심 집중

‘세기의 대결(Match of the Century)’ ‘꿈의 결승전(Dream Final)’ ‘별들의 전쟁(Star Wars)’ 등과 같은 표제에 딱 어울리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한국 시각으로 5월28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펼쳐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바르셀로나의 격돌이 바로 그것이다.

우선 이번 대결은 여러 측면에서 1994년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연상케 한다. 당시의 매치업은 요한 크라이프 감독의 바르셀로나와 파비오 카펠로 감독의 AC밀란. ‘토털사커의 전설’ 크라이프의 지휘 하에 ‘드림팀’을 구축해 1992년 대회 정상에 올랐던 바르셀로나는 1994년에도 스토이치코프, 호마리우, 쿠만, 과르디올라 등으로 무장한 최고의 드림팀이었다. 한편, 1989년과 1990년 2연패를 달성하며 ‘무적의 팀’으로 불렸던 밀란은 아리고 사키를 계승한 카펠로의 지휘 하에 사비체비치, 보반, 도나도니, 데사이, 말디니 등이 포진한 또 하나의 드림팀. 더욱이 그 시즌 밀란은 당대 최고였던 세리에A에서, 바르셀로나는 세리에A의 유일한 적수인 프리레라 리가에서 각각 왕좌에 오른 클럽들이었다.

그때와 유사한 상황, 아니 더욱 드라마틱한 상황이 마침내 찾아왔다. 맨유와 바르셀로나는 리그 랭킹 1, 2위를 달리는 서로의 리그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챔피언들이며, 올 시즌 지구촌을 통틀어 평균적으로 가장 훌륭했던 두 팀이기도 하다. 모든 선입견을 배제하고, 전세계 축구팬을 대상으로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격돌하기를 바라는 두 클럽’을 투표에 부친다 해도 이 두 클럽이 ‘당선’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맨유에는 호날두, 루니, 테베스, 베르바토프, 긱스가 있다. 바르셀로나에는 메시, 앙리, 에토, 이니에스타, 샤비가 존재한다. 지구상 그 어떠한 축구 경기에서도 이보다 더 빛나는 재능들의 집합체를 만나기란 어렵다.

리그 우승과 국왕컵을 거머쥔 바르셀로나는 단 네 클럽-셀틱, 아약스, PSV, 맨유 만이 경험해본 ‘대삼관(Treble)’에 도전한다. 이를 달성한다면 지금의 바르셀로나는 그들이 자랑해온 ‘드림팀 I(크라이프 감독의 팀)’과 ‘드림팀 II(레이카르트 감독과 호나우지뉴의 팀)’를 능가하는 역대 최고의 드림팀으로 기록될 것이다. 또한, ‘초보 감독’ 과르디올라는 선수로서 그리고 감독으로서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린 여섯 번째 인물-무뇨스, 트라파토니, 크라이프, 안첼로티, 레이카르트에 이어-이 된다. 반면, 맨유는 1990년 밀란 이후 자취를 감춘 ‘연속 우승’ 도전에 나섰다. 강팀과 다크호스가 즐비한 요즈음의 축구판에서 2연패는 실로 어려운 과업. 따라서 이에 성공한다면 맨유는 명실상부하게 ‘당대 최고의 팀’으로 기록될 만하다. 또, 맨유에서만 33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린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개인 통산 세 번째 챔피언스리그 정상-밥 페이슬리만이 달성한 바 있는-에 오를 경우 그는 클럽 축구사에 전무후무한 전설로 남을 것이다.

“10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경기”

▲ 아스날과의 2009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환호하는 박지성.첼시를 꺾고 결승에 오른 바르셀로나의 티에리 앙리(맨 위)와 리오넬 메시(아래). ⓒ연합뉴스
이번 결승전이 축구사에 큰 획을 긋게 되는 이유는 이렇듯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당대 최고 선수’를 다투는 호날두와 메시의 맞대결이라는 점도 틀림없이 그러한 이유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지난 시즌 42골을 작렬시키며 축구판의 모든 상을 휩쓸었던 호날두 그리고 올 시즌 지금껏 37골을 터뜨리면서 이제는 완연히 자신의 시대임을 알려온 메시의 승부는 어쩌면 시공간을 초월한 ‘조지 베스트 대 디에고 마라도나’의 대결과도 같이 흥미 만점 그 자체이다. 둘은 다소간 다르다. 호날두가 우수한 신체 능력, 헤딩 솜씨, 프리킥 능력에 강력한 양발과 함께 분위기를 탈 경우에 나타나는 폭발력을 앞세우는 반면, 메시는 언제 어디서든 수비수를 당혹스럽게 하는 드리블과 볼 컨트롤, 천부적인 센스, 팀플레이와 꾸준함으로 맞선다.

이 역사적인 한 판에 임하는 감독들 중 좀더 골치 아픈 쪽은 아무래도 과르디올라이다. 마르케스가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에서 알베스, 아비달이 징계를 받는 통에 ‘임시변통 수비진’을 구성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 투레가 피케와 더불어 중앙 수비를 맡고 푸욜이 오른쪽으로 갈 공산이 크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왼쪽 수비이다. 어쩌면 과르디올라는 노쇠한 시우비뉴, 불안한 카세레스가 아닌 케이타를 이 위치로 돌리는 방안을 선택할지도 모르겠다. 이에 더해 부상으로부터 회복 중인 이니에스타, 앙리의 상태에도 신경이 쓰인다. 맨유의 퍼거슨은 미드필드 및 공격의 최상의 조합을 찾기 위해 골몰했을 법하다. 맨유는 지난 아스널 2차전에서처럼 미드필드를 두텁게 가져가면서 빠른 역공을 펼쳐 바르셀로나의 배후를 무너뜨리는 한편, 세트플레이에서의 강점을 극대화하려 할 것이다. 퍼거슨이 호날두에게 최전방 공격수와도 같은 역할을 맡긴다면 호날두를 위한 지원군으로 누구를 선택했느냐에 따라 퍼거슨 감독의 용병술이 드러난다.

이 대목에서 박지성의 활용 여부가 작지 않은 관심사로 떠올랐다. 물론 ‘적도 속이고 아군도 속이는’ 용병술의 대가 퍼거슨의 심중을 경기 전에 정확히 예측하기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박지성의 결승전 선발 출전 가능성은 지난 시즌에 비해 꽤나 높아진 것으로 평가받았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선제골을 비롯해 박지성이 준결승 2차전에서 펼쳐보인 효율적인 활약상은 그가 바르셀로나를 상대로도 다시 한 번 유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예상을 가능케 해준다. 게다가 박지성이 이미 지난 시즌 준결승 바르셀로나와의 경기들에서 좋은 내용을 과시했다는 사실 또한 플러스 요소이다.

박지성의 선발 출전 여부를 놓고 최대의 변수로 떠올랐던 인물은 다름 아닌 테베스. 임대 만료를 앞두고 있어 어쩌면 이번 결승전이 맨유 유니폼을 입고 뛰는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는 테베스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테베스의 최근 경기력은 매우 좋은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테베스가 루니와 마찬가지로 수비 가담에서 고도의 적극성을 지니고 있는 공격수라는 사실이 변수의 근원. 박지성의 선발 기용이 좀더 안전한 선택지일 수 있다 하더라도, 수비에도 적극적인 테베스를 초반부터 기용하면서 역으로 바르셀로나의 수비 부담을 가중시키려 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이번 챔스 결승전에서 박지성의 선발 출전 전망은 과거보다 높았지만 ‘의표 찌르기’를 즐기는 퍼거슨 감독의 성향으로 인해 시합 당일까지 변수가 존재한다고 말해야 한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10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축구 대결을 보는 셈이다. 우리의 척박한 축구 환경에서 자라난 한 젊은이가 그 꿈의 무대에 오르는 데 제 몫을 다했다. 전반적으로 훌륭했던 박지성의 올 시즌을 돌아볼 때, 그는 이 무대에 설 자격이 이미 충분하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올 시즌 리그 우승으로 맨유에서만 일곱 번째 트로피(프리미어리그 3회, 챔피언스리그 1회, 클럽월드컵 1회, 칼링컵 2회)를 들어올린 박지성은 이 역사적인 결승전에서 그라운드를 밟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는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경기를 하는-이란의 알리 다에이는 바이에른 뮌헨 시절 출전에 실패했다-영예도 추가하게 된다. 2005년 여름, 티셔츠를 팔기 위해 영입되는 것 아니냐는 일부의 우려 속에 꿈의 구장 올드 트래포드에 입성했던 한국의 젊은이가 보란 듯이 여기까지 왔다. ‘아시아 축구사의 전설’ 문턱에까지 말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