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많고 알맹이 없는 오락가락 교육 정책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5.26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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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에 휩쓸려 정책 실종…사교육과의 전쟁도 하는 둥 마는 둥

▲ 이명박 대통령이 '사교육 없는 학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석성여중을 방문해, 김영숙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및 학부모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이 춤추고 있다. 너무 자주 바뀌다 보니 정책의 신뢰마저 잃고 있다. ‘학원 심야교습 금지’ 하나만 보더라도 지난 한 달 사이에 무려 다섯 번이나 바뀌었다. 지난 4월27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촉발한 ‘밤 10시 이후 학원 교습 금지’는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장관이 “충분히 사전 협의가 안 된 설익은 정책이다”라고 제동을 걸었으나, 이대통령이 교통정리를 하면서 곽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정부는 지난 4월30일 긴급회의를 열고 미래기획위의 사교육 절감 방안을 최종안으로 정했다. 이는 지난 5월18일 당정 협의에서 다시 뒤집혔다. 당정은 “획일적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전면 백지화를 선언했다. 결국, ‘3일 천하’로 끝난 셈이다. 교육 정책이 얼마나 갈팡질팡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번 ‘학원 심야 교습 금지’ 논란을 두고 안병만 교과부장관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간의 파워게임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본질을 떠나 현 정부의 실세와 교과부 수장 간의 힘겨루기에 그쳤다는 것이다. 실제 학원 심야 교습이 백지화되자 교육계와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안병만 장관의 완승’이라는 말이 퍼져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 대부분의 교육 정책이 이런 식이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교과부가 제각각이었다. ‘정책’은 없고, ‘정쟁’이 판친 결과이다. 교육계에서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볼멘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상민 자유선진당 정책위의장(교육과학기술위원회)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은 진정성이 없다. 사교육을 없애겠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사교육을 조장하는 정책을 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교육과의 전쟁’을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당·정·청이 엇박자를 보이는 것은 국정 운영이 얼마만큼 미숙한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대통령이 종합적인 처방을 신중하게 내놓아야 하는데 치열한 고민이 없이 즉흥적이고 정략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우왕좌왕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반값 등록금’ 공약도 안 지켜져

교육 정책이 자주 바뀌는 탓에 대통령 선거 때 내걸었던 공약도 ‘공수표’가 되어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유난히 ‘반값’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반값 사교육비’ ‘반값 등록금’이 그것이다. 이대통령은 “서민들의 시름을 덜어주고, 국민을 사교육비 부담에서 해방시키겠다고 했다. 돈이 없어서 공부 못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사교육을 부추기는 촉매제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반값 등록금’은 이미 물 건너간 지 오래다. 대학 등록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1천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대학생들은 수업을 제쳐두고 ‘등록금을 인하하라’며 거리로 나섰지만, 정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발뺌하고 있다. 이대통령은 지난해 9월9일에 실시한 ‘국민과의 대화’에서 한 여대생이 ‘반값 등록금’ 공약을 이행하라고 촉구하자 “내 자신이 등록금을 반값으로 하겠다는 공약을 한 일이 없다”라며 말을 바꾸었다. 정부는 뒤늦게 기초생활수급권자 자녀에게 무상장학금 지급, 소득연계형 학자금 대출, 무이자 대출 등을 내놓았지만 등록금 인하에 관한 대책은 어디에도 없었다.

공교육의 질을 높여서 사교육을 없애겠다는 방안으로 나온 것이 ‘영어 몰입 교육’이다. 일명 ‘아륀지’로 대변되는 영어 몰입 교육은 학생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몬다는 논란이 일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없던 일이 되었다. 청와대와 교과부도 삐걱댔다. 당초 인수위는 영어 공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오는 2013년까지 영어 전문 교사 2만3천여 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국내외 영어 교육 과정을 이수한 사람, 영어권 국가 석사 이상 학위 취득자, 전직 외교관과 상사 주재원 등 영어 수업이 가능한 사람들 중에서 교사를 선발하고 교원 자격증이 없어도 계약직 교사로 채용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교과부와 교원단체 등의 반대에 부딪치면서 ‘국내의 교원자격증 소지자’로 선발하겠다며 한 발짝 물러섰다.

‘영어 시험 토플 대체’도 헛물만 켠 채 물 건너갔다. 당초 인수위는 “오는 2013학년도 대입부터 수능 영어시험을 토플로 대체하겠다”라고 밝혔다가 교과부가 난색을 표명하자 2012년부터 토플식 국가영어능력시험(가칭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을 시행하되 수능 영어시험으로 대체할지는 그때 가서 결정하겠다고 했다.

전국 일제고사 부활도 두고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는 교육 격차 해소와 기초 학력 보장 등을 내세우면서 일제고사를 부활시켜,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일제고사를 실시하도록 했다. 일제고사 부활은 과열 경쟁, 사교육 유발 등을 이유로 정부가 철저히 금지했던 본고사 부활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밖에 공교육 살리기 방안으로 국제중학교 설립, 자율형 사립고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입시 경쟁을 부추기고 사교육 투자만 늘리고 있다는 반대에 직면에 있다.

국제중 전형 방식을 놓고는 ‘코미디’라는 말까지 나왔다. 올해 개교한 대원국제중과 영훈국제중은 1차와 2차 전형을 통과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최종 합격자를 결정했다. 실력이 아닌 운이 당락을 결정한 셈이다.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국제중이 ‘로또’라는 말을 듣는 이유이다.

엄민용 전교조 대변인은 “영어 몰입 교육 파동과 초등 영어 수업 확대, 국제중학교 도입, 일제고사 부활 등은 사교육비 증가를 초래한 장본인들이다. 학교와 교사가 경쟁하면 사교육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점수 내기 경쟁의 속도전에 내몰려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면서 시들어가고 더 경쟁력 있는 사교육을 찾아가게 된다. 이런 식의 교육 정책은 우리 교육을 더욱 파국으로 치닫게 할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 기조는 ‘자율과 경쟁’이다. 그런데 영어 관련 정책처럼 준비 없는 ‘자율과 경쟁’은 오히려 사교육 확대만 불러오고 있다. 지금대로라면 이러한 시행착오는 향후에도 거듭될 것으로 보인다. ‘학교 만족 두 배, 사교육 절반’이라는 거대한 캐치프레이즈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당·정·청 간 엇박자가 이어지면서 자중지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결국, 정책 실패의 희생양은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가 될 수밖에 없다.

이군현 한나라당 의원(교과위)은 “교육 문제는 조급해서는 해결이 안 된다. 약간 보수적일 필요가 있다. 사교육비 경감에 너무 매달리다 보면 공교육을 놓칠 수가 있다. 공교육 강화의 지름길은 교사의 자질과 교육 과정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원평가제를 실시하는 한편, 교사들의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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