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처럼 세심한 의료 서비스
  • 일본 후쿠오카·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09.06.0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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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노인의료 현장 취재 / 동네 한가운데 위치해 접근성 높아…치료 초점은 ‘환자 배려’

▲ 일본 후쿠오카 시에 있는 하라 병원은 주택가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다(위). 지역 노인 환자의 접근성을 고려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2018년이면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전체 인구의 14%를 넘는 고령사회로 들어선다. 노인 비율이 20%를 넘는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가 된다. 노인 질환은 이제 의료계뿐만 아니라 온 사회가 고심해야 할 화두로 등장했다. 이미 2006년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은 어떠한가. 개호(介護) 보험을 비롯해 다양한 의료보장제도로 노후의 인생들에게 안락한 나날을 누리게 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노인의료제 도입 10주년을 맞이한 일본의 실상을 현장에서 들여다보았다.

지난 5월20일 오후 일본 후쿠오카 시(福岡市)에 있는 하라 병원(原病院)을 찾았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버스가 좌우로 방향을 틀기 어려울 만큼 비좁았다. 기자가 탄 버스는 주택가 골목을 몇 차례 돌아서야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노인병원은 일본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벤치마킹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노인병원이라면 으레 공기 좋고 한적한 교외에 있을 법하지만, 이 병원은 주택가 한복판에 있다. 그 이유를 묻자 쿠바라 이치로 병원 이사장은 뜬금없이 편의점 얘기를 꺼냈다.

그는 “편의점은 동네 어디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처럼 노인 환자를 상대하는 병원도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또, 잡다한 물건으로 구색을 갖추고 있는 편의점처럼 세심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때마침 병원차 한 대가 병원 입구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간호사가 할머니를 부축해서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이 할머니는 응급 환자가 아니다. 정기적인 진료를 받고 있다. 병원에서 할머니 집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깝다. 그렇지만,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병원을 찾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이런 노인 환자들은 병원의 ‘송영(送迎)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한다. 거동이 불편해서 혼자 왕래하기 힘든 노인을 병원차가 실어 나르는 것이다. 병원차라고 하지만 요란한 경광등이 달린 구급차가 아니라 일반 승용차이다. 좁은 골목에 적합한 소형차이다. 이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혈액 투석을 받고 있다는 이즈미 치도시 씨(83·여)는 “집에서 병원까지 거리는 약 3km이지만 내가 최근 인공 고관절 수술을 받았고 심근경색이 있어서 왕래하기가 쉽지 않다. 1주일에 3일은 병원을 찾는데 그때마다 송영 서비스를 이용한다”라고 말했다.

기자에게 병원에 대해 이런저런 소개를 하던 야마시타 세시로 원장이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손님을 초대해놓고 자리를 비울 정도로 급한 사정은 왕진이었다. 최첨단 대형 의료기기가 속속 개발되어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자취를 감춘 왕진이 일본 노인병원에서는 여전히 서비스의 한 형태로 남아 있다. 두어 시간 동안 대여섯 가정을 들러 왕진을 다녀온 그는 “1주일에 하루는 왕진을 가는데 오늘이 마침 그날이다.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 가정을 주로 방문한다. 지역 주민의 주거 환경이나 식생활 실태 등을 확인하기 위해 병원장이 직접 왕진하러 다닌다”라고 설명했다.

▲ 일본 노인 병원은 복도에 나무 마루를 깔고 물건을 일절 두지 않아 노인 환자의 보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배려한다.


1년 내내 온도와 습도 일정하게 유지시켜

일본 노인병원은 이른바 ‘내 집 같은 병원’을 지향하고 있다. 지난 5월21일 오후 후쿠오카 현 기타큐슈 시(北九州市)에 있는 코쿠라 리하빌리테이션 병원. 마침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기온이 높은 데다 습도도 높아 후텁지근했다. 그러나 병원 내부는 마치 호텔처럼 쾌적했다. 유럽의 노인병원과 요양원을 벤치마킹해서 설계했다는 이 병원은 1년 내내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호흡기 질환에 약한 노인 환자에게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이 병원 외관을 둘러보던 기자는 눈을 의심했다. 병원 외부에서 내부 시설은 물론 건물 반대편까지 훤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멘트 벽 대신 통유리를 사용했다. 시설을 예쁘게 보이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마시키 후지타 부원장은 “노인에게 병원은 가기 싫은 곳이다. 그런 노인 환자들에게는 병원 같지 않은 병원이 필요하다. 내 집 같은 분위기로 노인 환자의 불안감을 해소해야 하는 것이다. 병원이지만 의료기기 등이 눈에 띄지 않도록 해서 환자가 정신적인 안정을 갖도록 유도한다”라고 설명했다.

복도와 병실 바닥은 콘크리트가 아니다. 일반 주택의 거실처럼 나무 마루가 깔려 있다. 복도는 두 대의 휠체어가 동시에 오갈 수 있을 정도로 넓다. 그 넓은 공간에 의자, 화분, 소화기 등이 일체 없다. 필요한 물건은 벽에 수납장을 만들어 비치하고 있다.

복도를 따라 도착한 곳은 4인용 병실인 705호실이다. 말이 병실이지 일반 가정집 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병실 문의 폭은 일반 문보다 두 배가량 넓어 휠체어 두 대가 교차할 수 있을 정도이다. 정사각형인 이 병실 한가운데에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을 기준으로 양쪽에 두 대의 침상이 각각 놓여 있다. 또, 두 대의 침상은 세면대를 기준으로 널찍하게 떨어져 있다. 각 침상 옆에는 서랍장과 TV 등이 갖춰져 있다. 커튼만 치면 1인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보호자가 앉을 공간도 부족한 우리나라의 병실과 사뭇 다른 구조이다. 

보통 병실 문 옆에는 환자의 이름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병원에는 환자의 이름이 없는 병실도 있다. 환자가 원하지 않으면 굳이 병실 문 옆에 이름을 달지 않는다. 대신 다른 방법으로 환자가 자신의 병실을 찾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예를 들면, 병실마다 꽃 이름과 사진을 붙여두어 환자가 알아서 찾아가도록 하고 있다.

환자가 요청하면 진료과목도 병실 내외부에 표시하지 않는다. 정신과는 1번, 내과는 2번 등 진료 과목을 숫자로 표기하기도 한다.  환자와 의료진 외에 다른 사람은 그 환자가 어떤 치료를 받는지 알 수 없다. 사회와 가정에서 소외된 노인이 자존심까지 무시당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병원 곳곳마다 거실과 부엌이 있다. 거실에서 게임을 즐기고 차도 마신다. 부엌에서 요리도 할 수 있다. 간호사만 없다면 일반 가정집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노인병원도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시설인데 굳이 이런 부분까지 신경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마시키 후지타 부원장은 “입원해 있는 노인 환자를 되도록 빨리 가정으로 복귀시키는 것이 병원의 목표이다. 그런데 오래 입원해 있던 노인을 치료가 끝났다고 해서 갑자기 가정으로 돌려보내면 적응하지 못해서 제2의 질환을 얻을 수도 있다.  때문에 병원이 가정집과 같은 환경을 유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병원 입원 환자 중에서 가정으로 복귀하는 비율은 70%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20% 안팎이라고 한다.

▲ 일본 기타큐슈 시에 있는 코쿠라 리하빌리테이션 병원의 메인 로비. 이 병원은 ‘가정집 같은 병원’을 추구하고 있다(왼쪽). 노인 환자들이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오른쪽).



재활치료실도 한 곳에 모아 치료받기 쉽게 해

이처럼 높은 비율을 달성한 배경에는 독특한 재활치료 방법이 있다. 사실 일본 노인병원의 재활치료법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환자에게 적용하는 방식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일본 노인병원들에서는 이런 작은 부분이 환자 치료에는 큰 효과를 보인다고 한다.

이 병원의 재활병동을 찾았을 때 20여 명의 노인이 치료를 받고 있었다. 재활치료는 목적과 수단에 따라 물리요법(PT·운동기능 회복), 작업요법(OT·지적수준 회복), 언어요법(ST·언어장애 해소), 심리요법(PT·정신장애 해소)으로 나눈다. 우리나라는 각 치료에 따라 재활치료실을 따로 두고 있다. 여러 가지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는 각각의 재활치료실을 찾아다녀야 한다. 그러나 코쿠라 리하빌리테이션 병원의 재활치료실은 한 개 층에 자리 잡고 있다. 환자가 이리저리 돌아다닐 필요 없이 한 곳에서 치료받는다.

이같은 구조에는 단지 공간적인 편리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물리치료사에 따르면 전문가와 환자가 혼재되어 함께 호흡하는 공간은 환자 치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물리치료와 언어치료를 받는 환자가 있다고 하자. 그 환자를 담당하고 있는 물리치료사가 치료를 받는 환자의 모습을 관찰한다. 물리치료사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환자는 치료를 열심히 받고 있는 모습을 은연 중에 나타내고 싶어진다고 한다. 동기 부여가 되는 셈이다.

환자가 수개월 재활치료를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가정으로 복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병원 의료진이 퇴원을 앞둔 환자의 가정을 미리 방문한다. 환자가 가정으로 돌아가도 무리 없이 적응하고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인지 확인하는 절차이다. 심지어 계단의 높이까지 확인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 12cm 높이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재활치료를 받은 환자가 있다고 하자. 하지만 집에 있는 계단의 높이가 14cm라면 환자는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집 계단의 높이를 12cm로 낮추거나, 환자가 14cm 높이의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다시 재활치료를 받은 후에야 비로소 가정으로 복귀할 수 있다.

일본 노인병원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간호사와 개호사(介護士·전문 간병인 개념)의 연령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 병원의 간호사 평균 연령은 37세이며 개호사의 평균 연령은 30대 초반이다. 우리나라 간병인은 대부분 40대 이상이 많다. 노인 환자의 수족이 되어야 하는 만큼 젊은 사람이 육체적으로 유리하다. 특히 개호사는 우리나라 간병인과 달리 전문 교육 기관에서 양성된 전문 인력이다.

‘백의 현상(white coat phenomenon)’이라는 말이 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던 환자가 백색 가운을 입은 의사나 간호사만 보면 혈압이 올라가고 심적 부담을 느끼는 현상이다. 백의 현상을 없애기 위해 간호사와 달리 개호사는 흰색 가운을 입지 않는다. 면 티셔츠에 면바지를 입고 있다. 명찰만 없으면 개호사와 노인 환자의 관계는 손녀와 할머니처럼 보인다.

한 의료재단이 병원·복지시설 동시에 운영하기도

흔히 일본의 노인의료는 우리나라 노인의료의 청사진이라고 한다. 약 20년 뒤면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본의 노인의료를 가감 없이 우리나라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이다. 

예를 들어 환자를 돌보는 의료인이 젊으면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세대 차이가 생기므로 노인 환자의 감성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이는 일본 의료계도 고민하고 있는 문제점이다.

일본 노인 의료시설의 대세는 ‘의료 복합체’이다. 한 의료재단이 병원과 복지시설을 동시에 운영하는 것이다. 퇴원한 환자 중에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정도로 중하지는 않지만 가정에서 지낼 정도로 건강하지 않은 노인이 있다. 또, 보호자 없이 혼자 지내야 하는 노인 환자도 있다. 이들은 병원이 운영하는 복지시설에서 생활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요양원과 비슷한 시설이다. 

그러나 의료와 복지의 전문성을 모두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전문성 확보 측면을 고려한다면, 의료시설은 의료 전문가가, 복지시설은 복지 전문가가 운영해야 한다. 

김덕진 대한노인요양병원협의회장은 “우리나라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한 지 1년이 지나는 동안 노인병원이 7백여 곳 이상으로 늘었다. 그러나 진료비가 현실적이지 않아 수익성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는 일본도 직면하고 있는 문제이다. 일본 노인의료는 어느 정도 검증되어 있으므로 도입할 때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일본의 정서와 환경이 다른 만큼 우리 실정에 맞게 다듬어서 도입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시사저널 임준선
우리나라와 일본의 노인의료 차이점은 무엇인가?

일본의 노인의료가 지역 사회에 뿌리를 내린 것이라면 우리나라는 중앙 정부에서 판을 짜고 지방에 접목시키는 모양새이다. 자칫 지방의 형편과 특색이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의료와 복지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다. 일본은 의료시설과 복지시설을 통합한 의료 복합체로 가닥을 잡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의료와 복지를 구분하고 있다. 서로 장단점이 있으므로 우리 실정에 맞게 따져볼 일이다.

의료 복합체가 우리나라에도 적합한가?

과거에는 병원이 치료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다리가 아픈 환자는 수술을 통해 통증만 해결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걷지 못하는 일은 나중 문제였다. 이때 필요한 것이 재활의학이다. 지금은 의료와 복지가 맞물린 치료가 필요한 시점이다.

방문 진료(왕진)가 필요한가?

노인의학회도 왕진의 필요성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보건소 의사는 지금도 왕진을 다니는데, 독거노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가정에 가보면 환자의 식습관, 생활 환경을 확인할 수 있어 치료 방향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된다. IT와 의료기기의 발달로 휴대용 진단기기도 개발되어 있는 만큼 왕진을 다닐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다. 다만, 의사가 일일이 모든 집에 다니는 것은 비효율적일 수 있어 적절한 방법을 찾을 필요는 있다.

노인 관련 시설에 대한 용어가 혼란스럽다.

노인병원, 노인요양병원, 치매요양병원, 요양병원, 요양시설, 요양원 등 다양한 용어가 혼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전문가도 혼란스럽다. 앞으로 정부가 용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간단히 말해서 병원은 의료가 주된 목적이라면 요양시설은 복지에 무게를 두고 있다.

노인병원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어떤가?

노인병원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노인병원을 ‘현대판 고려장’으로 생각하거나 심지어 혐오 시설로 여기기도 한다.  노인병원은 지역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의료시설로 인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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