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실적 부풀리기’ 여전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9.06.0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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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국내 기업들의 공개 자료 분석 결과 / 신뢰 지수 평균 73.7…78곳이 낙제점

ⓒ그림 김우정

개미 투자자들은 기업들이 발표한 경영 계획이나 실적 전망을 보고 투자를 결정하지만, 국내 상장기업 5개 중 한 곳은 투자자에게 약속한 실적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기업의 경우에는 아예 실적을 부풀려 발표해 투자자들을 속이기도 한다.

이같은 사실은 큐더스IR연구소가 최근 3년간 기업들이 발표한 실적 전망치와 달성률을 비교한 결과 드러났다. 연구소측은 분석 자료를 신뢰성 지수로 환산해 공개했다. 그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실적 전망치를 발표한 3백36곳의 평균 신뢰성 지수는 73.70으로 고교 내신 점수로 치면 ‘미’에 해당한다. 시장 평균을 상회한 기업은 1백93곳(57.44%)이며, 미달한 곳은 1백43개사(42.6%)였다. 신뢰성 지수가 50 미만인 기업도 전체의 20% 정도인 78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승욱 큐더스IR연구소 소장은 “아직도 상당수 기업이 투자자와의 약속보다는 실적 부풀리기에 치중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결과이다”라고 설명했다.

김소장은 “지난 2007년 주식 활황기 때까지만 해도 기업들은 실적 전망치를 공개했지만 지난해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자료 공개마저 꺼리고 있다. 결국, 투자자들의 신뢰도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상장기업 1천7백46곳 중 지난해 실적 전망치를 발표한 곳은 총 3백36곳으로 지난 2007년 대비 31.4%나 감소했다. 올해는 그 절반 수준인 1백52곳만이 실적 전망치를 발표했을 뿐이다. 

올해 실적 전망치 발표 기업 수, 전년 대비 ‘절반’으로 줄어

모든 기업이 경영 활동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전체 기업의 40%에 달하는 1백34곳이 신뢰성 지수 91~100 사이에 있다. 투자자들에 대한 약속을 비교적 충실히 이행한 것으로 평가되는 80 이상 기업은 1백74곳에 달한다. 이는 IR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인식이 나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연구소측은 설명하고 있다.

업종별로는 은행·보험·저축·여신 등 금융권의 신뢰성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3년치 평균이 92.66으로 40개 업종 중에서 유일하게 90을 넘었다. 제지업이나 영화·영상·음악 제작업은 50 아래 있었다. 특히 제지업은 33.86으로 조사 대상 중에서 가장 낮게 나타났다. 

개별 기업별로는 신뢰성이 가장 높은 기업은 글로비스와 현대제철, 태웅 등 3곳이다. 이들 회사는 최근 3년 연속 신뢰성 지수가 100을 기록했다. 특히 태웅은 코스닥 업체로는 유일하게 3년 연속 100을 기록해 주목된다. 2년 연속 신뢰 지수 100인 기업도 10곳이나 된다. 금호석유화학과 유한양행, 현대상선, 현대중공업, LG생활건강, LG화학, 그린손해보험, LIG손해보험, 모아텍 등이다. 

신뢰성이 낮은 기업 중에도 유명 기업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시사저널>이 큐더스IR연구소의 홈페이지(csri.co.kr)를 통해 조회한 결과 삼성테크윈, 크레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금호타이어, 유니슨, 프라임엔터, 디지털큐브, 크로바하이텍, 아이디에스, 웹젠 등이 50 미만의 지수를 보였다. 기업의 유명세와 투자자의 신뢰도가 별개임을 알 수 있다. 

일부 기업의 경우 실적 부풀리기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전문 업체인 유니슨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지난 2006년 1천억원, 2007년 1천2백억원의 매출을 전망했다. 그러나 달성률은 매년 50% 정도에 그쳤다. 2008년의 경우는 신재생에너지 부문 4천100억원을 포함해 4천9백억원으로 잡아  매출 규모를 전년에 비해 무려 10배 가깝게 부풀려 발표했다. 하지만 2008년 매출은 고작 2백억원에 그쳤다.

영상 및 음악 제작업체인 프라임엔터테인먼트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프라임엔터는 지난 2006년 9백억원, 2007년 1천7백억원, 2008년 2천4백억원으로 매년 성장 계획을 밝혔다. 실제 매출은 3년 연속 4백억원 안팎에 머물렀다. 이 회사는 2006년 말 매출 목표 달성이 여의치 않자 연도별 매출액 전망을 각각 4백억원, 8백20억원, 9백40억원으로 수정 발표했다. 2007년에 또다시 매출액 전망을 4백억원과 4백30억원으로 낮추었다.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코스닥 업체들의 전형적인 실적 부풀리기 사례들이다. 매출 계획이 실제 매출과 30% 이상 차이가 나면 거래소로부터 제재를 받는다. 이를 피하기 위해 뒤늦게 정정 공시를 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코스피와 코스닥 기업의 신뢰 지수는 이번 조사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지난해 지수가 100인 기업은 23곳이다. 이 중 21곳이 코스피 기업이었다. 코스닥 기업 중에서 100인 기업은 2곳에 불과했다. 실적 전망치를 발표한 상장 기업(1백76곳)의 신뢰성 지수를 비교해도 차이는 확연하다. 코스피의 평균은 80.28을 기록했다. 코스닥은 신뢰성 지수가 66.47로 코스피와 13점 이상 차이가 났다.

특히 코스닥 기업은 코스피 기업보다 더 시황에 편승해 IR 활동도 들쑥날쑥한다. 주식시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2007년 당시 실적 전망치를 발표한 기업은 코스피 2백9곳, 코스닥 2백81곳이었다. 코스닥이 코스피보다 72곳이나 많았다. 그러나 지난해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주식시장이 반 토막 나면서 상황이 역전되었다. 코스피의 경우 실적 전망 발표 기업이 1백76곳으로 18.75% 감소했다. 반면, 코스닥은 1백60곳만이 발표해 전년 대비 35%나 줄어들었다.

▲ 신뢰 지수 : 기업이 최근 3년간 발표한 실적 전망치에서 어느 정도 달성률을 보였는지를 보여주는 수치이다. 매출(S)과 영업이익(O), 당기순이익(N) 달성률을 합산한 뒤, 기업이 발표한 항목의 수(n)로 나누어 산출한다. 이 가운데 매출과 영업이익 달성률만 발표했을 경우 2로 나누어 계산한다. 목표를 100% 또는 그 이상 달성하면 신뢰 지수는 100이 된다.

코스닥 기업의 신뢰 지수는 천차만별…투자시 ‘옥석’ 가려야

물론 신뢰 지수 상승률이 높은 기업 역시 코스닥에 몰려 있다. 반도체 및 LCD 장비업체인 에버테크노의 경우 지난 2008년 전년 대비 상승률이 3백62.32%로 전체 1위를 차지했다. 광학필름 전문 업체인 신화인터텍이나 디스플레이 장비 부품업체인 아바코(191.97%), 홈캐스트(144.26%), 토비스(133.10%) 등도 상승률이 비교적 높은 코스닥 IT 업체들이다. 김소장은 “투자자들이 코스닥에 직접 투자를 할 때 ‘옥석 가리기’가 필요한 이유는 신뢰 지수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큐더스IR연구소의 조사에서는 신뢰성이 높은 기업일수록 주가 또한 평균보다 높게 형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10개사를 대상으로 최근 3년간의 주가를 비교한 결과 상승기에는 종합주가지수보다 빠르게 상승했다. 또, 주가 하락기에는 종합지수보다 완만하게 떨어졌다. 조용준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투자자들이 신뢰 지수가 우수한 기업에만 투자해도 종합주가지수 상승률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 지난해 금융 위기로 시장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게 되자 자체 정보의 공개를 꺼리는 기업들이 많았다. 투자자에게 경영 정보를 모르게 하는 기업이 신뢰를 받을 수 없다. 건전한 투자 풍토의 조성을 위해 기업들이 성실하고 적극적인 IR 활동에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서울 여의도 LG트윈빌딩에서 열린 LG전자 실적 설명회에서 LG전자 IR팀장인 정용재 상무가 2009년도 시장 상황 예상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10대 그룹도 지난해 실적 전망을 발표하는 데 인색했다. 10대 그룹 상장 계열사 70곳(12월 결산 기준·금융 계열사 제외)을 분석한 결과 30개 기업(42.86%)만이 지난해 실적 전망치를 발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뢰 지수는 전반적으로 높았다. 전체 70개 기업 평균이 89.79로 IR 우수 기업으로 평가받는 90점에 근접했다. 계열사 중에서 3곳 이상 발표를 하지 않은 GS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 한화그룹, 롯데그룹을 제외해도 평균 84.07의 양호한 신뢰도를 보였다.

10대 그룹 중에서 신뢰 지수가 가장 높게 나타난 곳은 현대·기아차그룹이었다. 조사 표본이었던 7개 계열사가 모두 지난해 초 실적 전망치를 발표했다. 전망치 대비 달성률 또한 92.68%로 시장 평균보다 20% 포인트 정도 높게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3년 연속 신뢰도 100을 기록한 곳은 불과 세 곳이었다. 그중 두 곳인 글로비스와 현대제철이 모두 현대·기아차그룹 계열사이다.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하이스코, 비앤지스틸 등 나머지 계열사도 3년 연속 90 이상의 신뢰도를 보였다.

롯데·SK·GS도 ‘우수’…삼성·금호·한진, 평균에 못 미쳐

LG그룹의 경우 지난해 실적 전망치를 발표한 계열사 다섯 곳 모두가 신뢰 지수 100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순수하게 신뢰도 측면에서 보면 10대 그룹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이다. 특히 LG생활건강과 LG생명과학의 경우 2년 연속 만점을 받았다. LG화학이나 LG데이콤, LG전자 등 나머지 기업 역시 지난 2007년부터 2년 동안 90 이상의 높은 신뢰 지수를 기록했다.

SK그룹은 조사 대상인 13개 계열사 중에서 4개 기업만이 실적을 발표했다. 실적 전망치 발표 비율로는 10대 그룹 중에서 롯데(14.29%), GS(28.57%)에 이어 3번째(30.77%)로 낮았지만, SK에너지, SK텔레콤, SK네트웍스, SK브로드밴드 등의 신뢰 지수가 90 이상으로 나와 평균 97.43을 기록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해 6개 계열사가 모두 실적 전망치를 발표했지만, 신뢰 지수는 66.37로 시장 평균보다 낮게 나타났다. 대우건설과 금호석유화학, 대한통운이 90 이상을 기록했지만, 금호산업(54.7), 금호타이어(38.5), 아시아나항공(33.3) 등이 낮아 평균이 전반적으로 내려앉았다. 한진그룹 역시 한진과 한진해운이  각각 98.1과 86.4를 기록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이 50으로 처져  평균 78.17을 기록했다.

삼성그룹은 10대 그룹 평균은 물론이고, 시장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69.82를 기록했다. 삼성의 경우 지난해 실적 전망치를 발표한 6개 기업 중에서 제일모직과 삼성전자만이 90 이상의 신뢰도를 보였다. 나머지 삼성SDI와 삼성테크윈, 삼성전기, 크레듀, 삼성엔지니어링 등은 대부분 신뢰 지수가 50 안팎에 머물렀다. 

이밖에 롯데그룹의 경우 평가 대상인 7개 계열사 중에서 유일하게 롯데쇼핑 만이 실적 전망치를 발표했다. 신뢰 지수는 97.6이었다. 현대중공업과 한화그룹은 계열사인 현대중공업과 한화가 각각 100을 기록했다. GS그룹은 GS건설과 GS홈쇼핑이 실적을 발표했는데, 신뢰 지수는 각각 98.6과 99.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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