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들썩일 ‘명품’들의 향연
  • 조용신 (뮤지컬평론가) ()
  • 승인 2009.06.1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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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체코·이탈리아 등 유럽 뮤지컬들, ‘영·미권’에 도전장 내밀고 공연 준비 한창

▲ 국내 공연을 앞두고 있는 이탈리아 뮤지컬 (왼쪽)와 프랑스 뮤지컬 (오른쪽). ⓒSMI 엔터테인먼트 제공

전통적으로 국내 뮤지컬계의 흥행을 주도해온 것은 미국(브로드웨이)과 영국(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영어권 뮤지컬들이었다. 영국산으로는 <오페라의 유령> <캣츠> <미스 사이공> <맘마미아!>, 미국산으로는 <브로드웨이 42번가> <시카고> <헤어스프레이> <아가씨와 건달들> 같은 작품들이 그동안 우리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왔다. 여기에 최근 눈부신 성장세를 바탕으로 영·미권 뮤지컬에 도전장을 내고 있는 유럽 뮤지컬이 단기간에 국내 공연계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선두 주자는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였다. 2005년 첫 내한 공연에서의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이듬해 두 번째 내한공연이 이어졌고, 2007년 10월에는 윤형렬, 김법래, 서범석, 최성희(바다) 등이 주연을 맡은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으로도 만들어져 성황리에 전국 투어를 벌이고 있다. 올해 10월에는 중국 베이징 투어 공연도 예정되어 있다.

훗날 국내 뮤지컬 역사에서 2006년 초부터 2007년 초에 이르는 1년 동안은 ‘프렌치 뮤지컬의 대공습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현지의 다국적 배우·스태프들이 직접 내한해 공연한 <노트르담 드 파리> <레딕스 : 십계> <돈 주앙> <로미오 앤 줄리엣>은 모두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창작진과 배우들이 직접 내한해 특유의 독특한 음악, 연출, 무대장치를 선보이며 이른바 ‘명품 공연’이라는 컨셉트로 관객의 마음을 파고 들었다.

한편, 라이선스 작품 제작도 이어졌다. 2006년에는 현대 사회를 풍자하는 뮤지컬 코미디로 중극장 규모의 <찬스>(코엑스 아트홀), <벽을 뚫는 남자>(예술의전당 토월극장)가 우리말로 초연된 이후 계속해서 재공연을 가지고 있다. 대형 작품들도 속속 한국화 과정을 밟았다. <노트르담 드 파리>에 이어 <돈 주앙>의 한국어 공연이 지난 2월 성남 아트센터에서 개막했고, 7월에는 서울로 입성(충무아트홀)한다. 그동안 두 차례 내한 공연을 가졌던 <로미오 앤 줄리엣>도 임태경, 신성록, 김소현 등이 주연을 맡아 오는 7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최초의 한국어 공연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신작도 줄이어 이색 무대 기대

올 하반기 공연계에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체코나 이탈리아 등 유럽발 신작 뮤지컬들의 거센 도전이 기다린다.

사실 프랑스 뮤지컬의 바람이 불기도 전에 이미 체코 뮤지컬이 소개된 바 있다. 아일랜드 작가 브램 스토커의 소설을 각색한 <드라큘라>는 신성우 주연으로 1998년에 국내 초연된 적이 있으며, 2000년과 2006년에도 재공연되었다. 체코 뮤지컬 역시 자국의 대중음악을 뮤지컬로 활용하고 있는데, 소련 연방 해체를 전후해서 당시 젊은 계층에게 크게 인기가 있었던 록음악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당시 록음악 마니아들이 서구 세계에 대한 동경을 통해 뮤지컬 작곡가로 성장했다. 하지만 체코 뮤지컬은 작가의 부재로 인해 대본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단점과 투어팀 결성이 불가능한 환경으로 인해 완벽한 형태의 투어 공연이 아닌 국내 제작진의 대본 수정을 거친 라이선스로만 소개되고 있다. 체코 뮤지컬은 최근 국내 시장에 홍수처럼 밀려들고 있다. 2007년에 초연된 <햄릿>은 이후 여러 차례의 각색 과정을 거쳐 현재는 ‘월드버전’이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인기몰이를 하고 있으며, 지난해 초연을 가진 <클레오파트라>가 현재 극장 ‘용’에서 재공연 중이다. 로맨틱 액션활극을 표방한 뮤지컬 <삼총사>는 신성우, 유준상, 박건형, 엄기준 등의 화려한 캐스팅을 발판으로 올 상반기 최고 흥행작 중 하나로 떠올랐다. 알렉상드르 뒤마가 1844년에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17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총사가 되려는 달타냥과 왕실 총사 세 사람이 겪는 모험에 국내 창작진들이 ‘철가면’의 이야기를 결합해 국내용 각색본을 만들어냈다. 또한, 1888년 런던을 공포에 떨게 했던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다룬 체코 뮤지컬 <살인마 잭> 역시 오는 12월에 공연을 갖는다.

한편, 올 8월에는 국내 최초로 이탈리아산 웰메이드 뮤지컬 한 편이 소개될 예정이다. 동화작가 카를로 콜로디의 원작을 바탕으로 이탈리아 뮤지컬 제작사 란시아 컴퍼니가 제작한 <피노키오>가 이탈리아 제작진과 배우들과 함께 내한 공연을 펼친다. 이 작품은 프랑스·체코 뮤지컬과는 달리 브로드웨이식 춤과 노래가 드라마를 이끌면서도 유럽 스타일의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면모와 동화적인 코믹함도 갖추어 색다른 체험이 기대된다. 특히 패션의 나라답게 아기자기하고 생동감 넘치는 색채로 가득 찬 의상과 무대 디자인도 즐거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프랑스 뮤지컬은 원조격인 <스타마니아>의 한국어판 제작이 내년 하반기를 목표로 추진되고 있어 당분간 붐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애초 올 하반기에 투어팀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무산된 뒤 바로 라이선스판 제작에 들어간 것. <스타마니아>는 1979년 초연된 프랑스 역사상 최초의 대중적 창작 뮤지컬로 정치 권력에 대한 저항과 심오한 사랑을 SF적인 분위기의 개성 있는 무대 장치를 통해 표현한 문제작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유럽 뮤지컬의 특징

유럽 뮤지컬들에는 국경을 넘나드는 공통적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대부분 고전 명작을 적극적으로 각색한다는 점이다. 구약성서를 비롯해 셰익스피어, 빅토르 위고, 알렉상드르 뒤마 등 대문호의 베스트셀러를 뮤지컬의 기본 뼈대로 삼고 여기에 적절한 축약과 재구성을 통해 현대적 각색을 내놓는다.
두 번째 특징은 음악적인 구성 면에서 드라마와의 세밀한 결합보다는 화자(話者)의 내면 세계를 노래하는 데 치중한 대중음악(샹송, 록) 콘서트 컨셉트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이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뮤지컬이 유럽의 오페레타에서 출발해 1백50여 년 동안 레뷔, 보더빌, 벌레스크, 민스트럴 등의 많은 진화 단계를 거치며 드라마적 완성도와 대사의 비중을 높여온 데 비해 유럽에서는 본격적으로 뮤지컬을 발전시켜온 기간이 짧다 보니 대사가 극도로 절제된 음악 중심의 오페레타 스타일에 가깝다.

세 번째는 해피엔딩의 뮤지컬 코미디를 선호하는 영·미권 뮤지컬과 비교해 대다수의 유럽 뮤지컬들은 현대 오페라의 영향으로 주인공들이 죽는 비극이 대부분이다. 커튼콜 때는 이들이 마치 환생이라도 한 듯한 연출로 관객에게 한 발짝 다가서서 비극을 완화시킨다. 특히 프랑스 대형 뮤지컬의 커튼콜에서는 관객들이 무대 앞으로 다가와서 사진을 찍으며 환호하게끔 유도하는데, 이는 콘서트 컨셉트와 비극적인 결말을 동시에 병치시킨 결과이다. 

이처럼 프랑스, 체코, 이탈리아에 이르기까지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글로벌한 취향의 본토 유럽의 뮤지컬들이 올 하반기 우리 관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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