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도 웃는 게 아니다
  • 로스앤젤레스·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9.06.23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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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성과와 전망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을 만나면 유난히 많이 웃는다. 이대통령은 지난 6월16일 미국 워싱턴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이어 가진 기자회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틈만 나면 웃었다. 정작 오바마는 회견 도중 미소 한 번 짓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미국 대통령을 만나 이대통령이 웃는 모습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통령 취임 직후나 다름 없는 지난해 4월 이대통령은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의 초청으로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당시에도 부시 대통령이 직접 운전하는 배터리카에 올라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백악관을 방문한 외국 정상들이 이대통령처럼 많이 웃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일본 총리들은 백악관 기자회견장에 나타날 때 긴장한 나머지 거의 예외 없이 굳은 표정을 보인다.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정상들도 미국 대통령과 나란히 선 장소에서는 헛웃음도 조심한다.

지난 1995년 7월27일 백악관에서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김영삼 대통령은 오벌 오피스 옆 기자회견장에 등장할 때 얼굴에 잔뜩 홍조를 띠었다. 함께 복도를 걸어나와 회견장에 들어선 클린턴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배석을 물리고 단독 회담을 하면서 서로 소주잔이라도 나누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두 정상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기자회견도 예정보다 한 시간가량 늦어졌다. 술잔을 나누지 않았다면 서로 핏대를 올리며 말씨름을 했다는 증거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다음 날 한국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당시 분위기를 간단하게 전했다. “내가 (정치 입문 대선배로서) 클린턴 대통령에게 (정치를 어떻게 하는지) 한 수 가르쳐주었지.” 물론 그 ‘한 수’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는 정치 해설가들 사이에서 여러 갈래로 해석되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의 얼굴 표정은 14년이라는 시간 차를 두고도 매우 대조적이다. 1995년은 클린턴 대통령이 최우선 대외 정책 과제로 삼았던 북한 핵문제가 막 해결된 다음이었다. 2009년 이번 한·미 정상회담 역시 북한 핵이 의제의 핵심이다. 북한 핵을 둘러싼 두 미국 민주당 소속 대통령(클린턴, 오바마)과 한국 보수 계열 두 대통령(김영삼, 이명박)의 만남은 거의 동일한 의제를 놓고 전혀 다른 표정을 보인 것이다. 그 차이는 두 한국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있는 것이 아니고, 미국 두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있다.

1992년 시작되어 1994년까지 이어졌던 클린턴 시절 북한 핵 문제는 북한과 미국이 제네바 합의문에 서명함으로써 마무리되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가동을 중지하기로 약속하는 대신 미국은 북한에 연간 50만t의 중유 등 에너지 공급과 5㎽ 경수로 건설을 약속했다.

당시 클린턴은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중단시키고자 했다. 무력 충돌까지 불사했지만 최대한 양보로 어떻게든 북한을 달래려는 입장이었다. 클린턴은 한반도 주변에 항공모함을 배치하는 등 북한 핵 문제가 타결되지 않을 경우 대북한 무력 행사도 염두에 두고 북한을 압박했다.

김영삼 정부는 당근과 채찍으로 묘사된 이 양면 전략의 위험을 인식하고 두 가지 모두 억제시키는 것이 대미 외교의 최대 목표였다. 제네바 기본합의문은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의 재발은 방지했지만 북한에 대한 보상은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보상의 주체는 미국이지만 가장 큰 부담을 안은 나라는 한국이었다. 1995년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로 양국 관계가 껄끄럽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대북 정책에 ‘공감’한 것으로 분석하기도

▲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6월16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

김영삼 정부 시절 한·미 관계가 부드럽지 못했던 것은 내부적으로는 진보 성향의 클린턴과 보수 성향의 김영삼 두 대통령의 이념적 차이에서 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념 차이의 배경에는 무력 행사라는 위협 수단까지 동원하며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려 했던 클린턴의 유화 정책과 북한의 술수를 못마땅해하며 반북한, 반김일성, 반김정일을 내세운 김영삼의 강경 정책 사이에 좁혀지지 않는 인식의 깊은 골이 있었다. 그로 인해 두  정상의 회담이 서로 얼굴 붉히는 자리가 되었던 것 같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1995년과 상황이 비슷하다. 북한은 원자로 가동 차원이 아니라 핵 보유의 막바지 단계를 과시하며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김영삼 전 대통령에 버금갈 정도로 냉철하고 비판적이다.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미국에게 북한에 대한 강력한 조처를 주문하리라고 예고된 것도 그 때문이다. 이대통령은 아예 6자회담에서 북한을 빼고 5자회담을 하자고 제안할 정도였다. 북한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핵실험이라는 파국의 카드를 내미는 북한의 시도가 실책임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이대통령의 이런 생각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먹혀들지 않았다면 그가 기자회견장에서 웃음을 터뜨릴 이유나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대통령의 잦은 웃음은 오바마에게 자신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 웃음은 시기상조일지 모른다. 이대통령이 오바마에게 미국의 핵우산을 요청한 것을 두고 한국 정부가 외교적 승리라고 자화자찬한 반면, 한국 내 진보 세력은 한반도 긴장 확대라고 비판한다. 이런 논란과 관계없이 미국에게는 한국을 핵우산에 묶어두는 것이 원하던 바였다. 한국 정부나 이명박 대통령의 성과나 실패로 거론할 일이 아닌 셈이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양국 공동 비전은 1992년 북한 핵문제가 본격적으로 터져나올 때부터 지속되어 온 것이다. 북핵문제와 관련한 한·미 동맹 재확인과 공동 보조 다짐 역시 한·미 관계가 가장 악화되었던 시절에도 변함 없었던 공약이다.

미국의 일부 언론은 북한 문제에 대한 오바마 정부의 정책 방향이 아직 선명하게 결정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한다. 특히 북한 김정일은 물론 쿠바의 카스트로나 이란의 아흐마디네자드와 만나겠다고 선언한 오바마가 갑작스레 김정일 타도를 외치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오바마 정부는 일단 유엔 안보리를 통해 초강경 제재 방안을 이끌어내고, 대북 금융 제재를 재개하는 등 이른바 ‘북한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수준’의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가 이를 어느 수준까지 끌어올릴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북한을 ‘악의 축’의 하나로 지목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중국이 제안한 6자회담의 테두리에 머무르다 대북 유화 자세로 전환한 것을 상기한다면 이대통령의 웃음이 섣부를 수 있다.

한·미 정상은 양국이 진보와 보수로 서로 엇갈리면서 수십 차례나 만났다. 그것이 한·미 관계가 의기투합의 결속력을 계속 이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아닐까? 이명박 대통령의 웃음이 불안해 보이고, 로즈가든의 웃음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상회담에서 대통령들의 말 한마디, 선택하는 단어 하나하나는 모두 큰 의미를 갖고 파장도 크다. 현재로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웃음이 어떤 의미와 무게를 지닐지 가늠하기 어렵다. 어쩌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며 무심코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김정일은 다르다. 이대통령의 웃음을 지금 한창 분석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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