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 껴안으니 힘이 ‘철철’
  • 파리·최정민 통신원 ()
  • 승인 2009.07.01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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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껴안으니 힘이 ‘철철’

▲ 유럽의회 선거에서 투표하는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부인 카를라 브루니 사르코지. ⓒAP연합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사르코지의 정치력은 불가사의하다. 6월 초에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경제 위기라는 집권 우파에게 불리한 악재에도 불구하고, 우파가 승리했다. 유권자들은 대안 없는 좌파의 부실을 이미 알아차렸다. 프랑스의 경우는 더 역설적이다. 이번 선거를 한 달 앞두고 사르코지 집권 2기를 기점으로 조사된 여론조사에서 프랑스 국민 세 명 가운데 두 명은 사르코지의 정책과 정치력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그런데 어찌된 것일까? 사르코지는 선거에서 승리했다.

프랑스 우파가 선전하는 막후에는 무엇보다 사르코지의 정치력이 있다. 좌파 인사들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여우 같은 정치력은 그 자신의 지지도가 총리보다 낮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렸다. 유럽연합 선거 직후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사르코지의 지지율은 41%를 기록해 44%를 기록한 총리보다 낮다. 사르코지 내각 인사들 가운데 국민의 환심을 사고 있는 상위 두 명의 정치인은 베르나르 크슈너 외무장관과 도미니스 스트라우스 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이다. 둘 다 사르코지가 기용한 좌파 인사들이다. 경계를 넘은 용인술이 결국, 사르코지를 돕고 있는 셈이다.

이번 유럽연합 선거 직후 마련된 중도파의 회합 모임에는 사르코지의 오른팔이며 집권당 사무총장인 자비에 베르트랑 전 고용장관이 참석하기도 했다. 현재 사르코지 내각의 장관 가운데 정부·여당이 아닌 중도파 인사로는 에르베 모랑 국방장관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앞으로 더 많은 중도파 인사가 기용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럴 경우 분열된 좌파와는 정반대로 집권 우파는 더 큰 영역을 확보하게 된다.

프랑스의 자본주의가 예리하게 사회주의와 결합되어 있는 것처럼, 프랑스 정치는 의회와 대통령의 임기를 같지 않게 함으로써 권력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고 있다. 권력의 집중을 유난히 싫어하는 프랑스인들의 기질이 드러나는 체계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최근 헌법위원회로부터 위헌 판정을 받은 ‘인터넷 삼진 아웃제’이다. 문화장관이 인터넷 강국인 한국을 모델로 삼아 마련했다고 발언했던 이 법안은 다수 의석을 가진 집권당이 통과시켰다. 야당과 여론은 국민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반발했지만 정부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이 법안에 태클을 건 것은 헌법위원회였다. 전직 대통령과 전직 국회의장 등 어느 모로 보나 현 집권 우파의 ‘어른’들로 구성된 이 기관에서 정부에 딴죽을 걸었다. 이러한 광경은 국민에게 국가 수반과 집권당의 일방 독주를 견제할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이런 것을 국민들이 인지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것은 독재가 아니라 추진력이라고 받아들여진다.

국민에게 집권당이 일방 독주 못한다는 안도감 심어줘

▲ 도미니크 드 빌팡 프랑스 총리(왼쪽)와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EPA

권력의 제도적인 분할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 권력 내부의 정치적인 합의이다. 도미니크 드 빌팡 총리는 유럽의회 선거가 끝난 뒤인 지난 6월11일 방송에 출연해 사르코지 정부의 성과에 대해 이례적으로 경의를 표시했다. 드 빌팡 총리는 같은 우파이지만 사르코지 대통령과는 정치적 숙적이다. 물론 그의 방송 나들이는 칭찬을 위해서가 아닌 그가 최근 출간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많은 국가 수반에 대해 평하면서도 사르코지에 대해서는 한 줄도 쓰지 않았던 그는, 방송에 출연해서 사르코지에 s대해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을 합쳐 이번 위기를 넘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두 옳은 말이었지만, 그가 그동안 사르코지에 대해 날선 비판을 했던 것을 상기한다면 1백80˚ 태도가 바뀐 것이었다. 오는 9월에 있을 클리어스트림 사건(프랑스 집권당 고위 인사들이 룩셈부르크 금융 기관인 클리어스트림의 비밀 계좌를 이용해 무기 판매 리베이트를 관리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한 판결을 앞두고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할 만큼 이전과는 정반대의 제스처였다.

대권은 욕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말처럼, 정치는 개인적인 권력에의 의지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이 사실이다. 사르코지의 경우도 후보 시절 “아침에 면도할 때마다 대권을 꿈꾸는가?”라는 질문에 “그때만이 아니다”라고 받아치기도 했다. 그만큼 권력은 의지의 산물이다. 그러나 그것이 욕심이 된다면 프랑스 유권자들은 놓치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프랑스 중도파의 맹주였던 프랑수아 바이루와 사회당의 세골렌 르와이얄의 몰락이다. 지난 대선에서 바이루는 18.57%를 얻었다. 결선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3위의 성적이며, 고정적인 지지층을 갖고 있음을 입증했다. 그는 대선 직후 분당해 새로운 정당을 창당했다. 그 뒤 하원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국민적 지지를 믿고 이번 유럽의회 선거까지 밀어붙였다. 하지만 이런 그의 행보를 2012년 차기 대선의 수순이라고 알아차린 프랑스 여론은 그의 목표가 사적인 것인지 밝힐 것을 요구했으며, 국민들은 그를 외면했다. 이번 선거에서 그는 겨우 8%의 지지율을 얻는 데 그쳤다. 지난 대선 때 사회당 후보였던 세골렌 르와이얄도 마찬가지이다. 대선에서 실패한 뒤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고 사회당을 접수하려다 실패한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의 지지 기반을 다듬었지만 지지도는 하위를 달리고 있다.

‘정치는 과학인가, 예술인가?’ 저명한 정치학자의 저서 제목이 아니다. 2002년 바칼로레아, 즉 프랑스 대학 입학 자격 시험의 논술 주제였다. 2002년 극우 정당의 후보였던 르펜과 겨룬 시라크는 극우만은 안 된다는 국민적 정서를 등에 업고 81%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그해의 대입 논술 시험에서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과 관련해 ‘정치를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가 입시생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생물이라고 표현되는 정치가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좌든 우든 상관없이 굴러가는 것은 이렇게 정치에 대한 인식과 지성이 일찍 자리 잡아서인지도 모른다. 정치력이 있는 국가 수반과 권력을 분점하는 시스템 그리고 국민의 의식, 이렇게 삼박자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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