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뇌부 바꾸고 남은 건 몸통…‘여진’이 온다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07.01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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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국세청, 대대적 인적 쇄신 예고 과거 10년 정권에 대한 인사 청산 의미도

검찰과 국세청에 태풍이 몰려오고 있다. 겉으로는 조용하나 내부적으로는 ‘인사 태풍’의 강도를 가늠하느라 여념이 없다. 3기수를 건너뛴 검찰총장 인선, 최초의 학자 출신 국세청장의 등장이 던진 충격파는 두 기관뿐 아니라 공직 사회 전반을 흔들었다.

특히 이번 인사를 계기로 검찰과 국세청이 ‘MB맨’으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들 기관이 임채진-한상률 등 노무현 정권이 임명했던 인사들의 그늘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하게 ‘MB 인사 체제’로 바뀌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천성관·백용호 두 예비 수장은 모두 충남 출신이다. 대학도 서울대 법대와 중앙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경북·고려대 출신인 이대통령과는 지연·학연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대통령과 남다른 연결 고리가 있는 ‘친위 인사’라고 볼 수 있다. 천내정자가 올해 초 서울중앙지검장이 된 데는 이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의 후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백내정자는 이대통령의 씽크탱크 역할을 오래 해온 인물이다. 이대통령은 국가정보원 원세훈 원장에 이어 권력 기관 수장들을 자신을 중심으로 직접 연결이 되는 인사들로 재편했다. 모두 ‘실력 있는’ 인사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대통령의 서열 파괴 인사로 인해 검찰 안팎에서는 ‘호남 지역’ 인사들이 검찰 수뇌부에서 대거 빠지게 되었다는 말이 오가고 있다. 사정 기관의 한 인사는 “천성관 내정자가 총장으로 승진하면서 물러나게 되는 선배와 동기 10명 가운데 4명이 호남 출신이다. 이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등 과거 10년 정권에 대한 인적 청산을 의미하기도 한다”라고 분석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도 “큰 폭의 인적 쇄신을 통해 검찰에 쏠린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회할 수 있다. 지난 정권과 관련 있는 인사들을 퇴진시킬 수 있다. 충청 출신인 데다가 공안통이다. 검찰 내에서 평이 좋다”라는 것 등을 천내정자가 선택된 배경으로 분석했다.

▲ 신임 검찰총장에 내정된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이 6월22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 청사로 출근하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두 내정자 모두 대통령 ‘친위 인사’

퇴진이 예상되는 호남 출신 인사는 ‘명동성 법무연수원장(20회), 문성우 대검차장(21회), 이준보 대구고검장(21회), 이귀남 법무부 차관(22회)’ 등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번에 호남 출신 간부들이 대거 물러날 것으로 보이자, 검찰 내 호남 출신들이 술렁이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향후 내부 인사에서 호남 출신들이 배제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기수 파괴 인사는 현 검찰 수뇌부에 대한 전면적인 물갈이를 의미한다. 이는 이대통령이 자신이 임명한 천내정자를 통해 검찰 개혁을 강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당장 검사장급 인사가 오는 8월로 예정되어 있다. 천내정자의 후배인 23, 24회 출신들이 각각 4~5명씩 고검장급 수뇌부로 승진할 것으로 점쳐진다.
검찰 안팎에서는 사시 23회 가운데 한상대 법무부 검찰국장(서울), 박용석 부산지검장(경북 군위), 박한철 대구지검장(경남 밀양), 조근호 서울 북부지검장(부산), 차동민 수원지검장(경기 평택) 등이 고검장급 승진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24회 가운데는 채동욱 법무부 법무실장(서울), 김진태 대검 형사부장(경남 사천), 노환균 대검 공안부장(경북 상주), 김홍일 대검 마약조직범죄부장(충남 예산) 등이 승진할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승진이 유력한 이들 가운데 황희철 서울남부지검장(광주) 외에는 호남 출신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사법 당국의 한 간부는 “천내정자의 후속 인사에서 지역 안배 차원에서 호남 출신 일부를 수뇌부로 승진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구색 맞추기 수준에 불과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 국세청장으로 내정된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가운데)이 6월22일 퇴임식 후 청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내부 사람으로는 국세청 개혁 어렵다고 판단한 듯”

국세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국세청 인사는 한상률 전 청장-허병익 차장-이현동 서울지방국세청장의 3자 구도로 짜여져 있다. 백용호 내정자는 일단 이 구도를 허물면서 자신의 관점에서 새로운 판을 짤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주목되는 것이 허병익 차장의 거취이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지금 허차장 체제가 바뀌면 조직이 흔들린다. 최소한 올해 말까지는 그대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청와대 관계자는 “새 수장이 오면 물러나는 것이 공직 사회의 기본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5개월 간의 공백기를 거친 뒤 모습을 드러낸 백용호 내정자에 대해 국세청 내부는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는 분위기이다. 국세청의 또 다른 관계자는 “그동안 하마평에 올랐던 분들 가운데 한 명이 올 줄 알았다. 이렇게 인사가 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또 다른 관계자는 “국세청의 이미지도 바꿀 겸 2년 정도 외부 사람이 청장을 하는 것도 좋다. 대통령의 측근이기에 힘이 실린다는 측면에서도 괜찮다. 내부 사람으로는 국세청 개혁을 이루기 어렵다는 측면도 고려한 것 같다”라고 관측했다.

백내정자는 이대통령이 서울시장이었을 때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을 맡았고, 대선 당시에는 이명박 후보의 자문기구인 바른정책연구원(BPI) 원장으로 활동했다. 이른바 ‘S(서울시청) 라인’으로 분류되는 이대통령의 최측근이다. 한 소식통은 “천성관 지검장이 총장으로 낙점되었을 때는 청와대에서 전화로 알려주었지만, 백내정자에 대해서는 이대통령이 직접 불러서 통보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면서 국세청 개혁에 대한 특별한 주문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이대통령과 백내정자의 친분이 두텁다는 것이다.

국세 행정 경험이 전무한 외부 인사여서, 국세청 내부에서는 “백내정자가 국세청 인맥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자유롭게 인사를 단행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백내정자가 자신의 인사 원칙과 기준에 따라 ‘소신껏’ 대대적인 물갈이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미 인사 물꼬도 트였다. 서현수 대구지방국세청장, 김광 광주지방국세청장, 김창섭 국세공무원교육원장을 포함해 세무서장급 이상 간부 18명이 6월 말 명예퇴직을 위한 사직서를 제출했다. 국세청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백내정자측에 ‘줄’을 대려는 움직임까지 감지되고 있다.

국세청의 한 인사는 “지난 2월에 정기 인사가 끝났기 때문에 대대적인 인사가 있을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향후 신임 청장이 새롭게 조직을 개편할 경우, 인사 폭이 상당히 커질 수 있다.

특히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거론되었던 지방 국세청의 축소 내지 폐지 문제를 신임 청장이 추진할 경우에는 인사 태풍이 몰아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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