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이냐, ‘귀가’냐 부활한 친노의 고민
  • 김영화 (한국일보 기자) ()
  • 승인 2009.07.0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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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당 논의 진척 없어…지방선거 앞두고 복당 가능성

▲ 5월29일 경복궁 뜰에서 엄수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한명숙 공동장의위원장의 조사가 낭독되는 동안 이강철 전 대통령특보, 민주당 백원우 의원, 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 강금원 창신섬유회장(앞줄 왼쪽부터) 등이 슬퍼하고 있다.


친노무현(친노) 진영이 돌아왔다. 참여정부 실패론과 이명박 정권 들어 시작된 잇단 검찰 수사로 코너에 몰렸던 친노 진영에 유권자들의 시선이 다시 쏠리고 있다. 물론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이라는 외부 변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스스로를 폐족(廢族; 조상이 큰 죄를 지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자손)으로 규정하고 바짝 엎드려 있던 반년 전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극적인 부활이다.

현재 정치권, 특히 야권에서는 친노 진영의 정치 세력화 여부와 정치권 복귀가 현실화한다면 그 시기와 방법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놓고 입방아가 한창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이들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며, 만만찮은 정치력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 장의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한명숙 전 총리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 불리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의 경우, 한나라당 소속인 오세훈 현 서울시장과 맞대결을 벌인다면 두 사람 모두 승리가 가능하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왕실장’으로 불렸던 문재인 전 비서실장의 경우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에 맞설 마땅한 대권 주자가 없는 데다 내년 지방선거에 나갈 인재 발굴을 앞두고 한 사람이라도 아쉬운 민주당의 처지에서는 이들의 거취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친노 신당 창당설이 나오자 민주당이 크게 술렁인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다.

신당 창당설은 한 인터넷 신문의 보도가 단초가 되었다. 이 신문은 “유 전 장관의 팬클럽인 시민광장 회원 등 30여 명이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여의도백화점 맞은편 한 빌딩에서 비공개로 ‘신당 추진 서울사무소 개소식’을 가졌다”라고 보도했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 49재(7월10일) 이후 대국민 창당을 제안하고 9월 창당준비위 발족, 11월 창당이라는 구체적 로드맵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보도의 골자이다.

친노 진영 가운데 일부가 신당 창당을 고민 중이었던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도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노대통령 서거 전에 몇몇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신당 창당은 주로 개혁당 출신 인사들과 친노 그룹인 참여정치연구회(참정연) 출신 일부 인사들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그룹의 핵심이 바로 유 전 장관의 측근들이라고 한다. 특히 영남 지역 인사들의 경우 “민주당 간판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를 수 없다”라며 신당 창당을 선호하는 기류가 일정 정도는 있다. 참정연 출신의 한 인사는 “노 전 대통령 서거 하루 전날인 5월22일 일부 친노 인사들이 속리산에서 워크숍을 가졌고, 여기에서 창당 문제가 거론되기는 했다. 창당은 치열한 논쟁을 통해 의견 수렴을 해야 하는 사안인데도 먼저 신당 창당설이 불거져 곤혹스럽다”라고 말했다. 모임 직후 발생한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창당 논의가 올스톱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실체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친노 진영 내부에서 신당 창당이 통합과 전국정당화를 강조한 노 전 대통령의 뜻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아 독자 세력화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특히 안희정 최고위원, 서갑원·조정식·백원우 의원 등 민주당에 남아 있는 친노 핵심 인사들이 아직은 신당 창당에 거리를 두고 있는 점은 변수이다. 한 친노 인사는 “자칫 개혁 진영의 분열 혹은 영남 신당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 내부의 생각이 다 달라 신당 창당이 동력을 갖기는 어려워 보인다”라고 말했다.

신당의 구심점으로 지목된 유 전 장관측은 아직은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이다. 유 전 장관측 관계자는 “당분간은 노 전 대통령 추모 사업과 집필 작업에 전념할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49재 이전에는 가급적 정치적 언급을 삼간다는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탈당파 친노 그룹의 또 다른 구심점인 이해찬 전 총리는 최근 포털 사이트 다음 ‘대장부엉이’ 카페에 글을 올려 정치 현안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는 등 향후 활발한 움직임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그와 가까운 한 민주당 인사는 “이 전 총리도 신당 창당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유 전 장관 등 친노 인사가 들어오면 당 시끄러워져”

친노 진영의 향후 행로와 관련해, 신당 창당이 아니라면 남은 길은 민주당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당 중심의 민주 개혁 세력 대통합론’이라는 프레임 아래 친노 인사들과 민주당의 만남을 주선하는 등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지난 6월16일 민주당 정세균 대표, 한명숙·이해찬 전 총리, 김원기 전 국회의장,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 박지원 의원, 안희정 최고위원 등과 가진 점심 자리가 그 예이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이 전 총리에게 “현재의 정국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겠느냐”라고 물었고, 이 전 총리는 “지금은 민주당 중심으로 잘 합쳐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민주당이 영남이나 친노 그룹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스스로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답했다는 것이 김 전 대통령의 측근인 박지원 의원의 전언이다. 민주당이 먼저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이 전 총리 역시 민주당 복당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박의원은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이해찬 총리가 가까운 장래에 민주당으로 들어오실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라고도 했다. 그는 또 “문재인 전 비서실장에게도 부산시장 출마를 표명해보라고 권했다”라고 공개하는 등 친노 인사의 복당 문제를 적극적으로 띄우고 있다.

하지만 친노 인사들의 복당과 관련한 민주당 전반의 기류는 다소 복잡한 편이다. 일단 부정적 입장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 특히 중도 보수 진영에서는 열린우리당 시절의 분열과 갈등을 떠올리며 우려한다. 심지어 “유 전 장관 등 친노 인사가 들어오면 당이 시끄러워진다”라고 대놓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전반적으로 반노(反盧) 정서가 희석된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정세균 대표가 나서서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당 차원에서 ‘민주 정부 10년 재평가’ 작업을 시작하기로 결의하는 등 당이 친노 인사들을 받아들일 공간이 이전보다는 커졌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다. 참여정부 시절 산업자원부장관을 지낸 정대표가 정서적으로 친노 진영에 대해 우호적인 편이라는 점도 복당 가능성을 높여준다. 시나리오 차원이기는 하지만 내년 지방선거에서 한명숙  전 총리가 서울시장, 유시민 전 장관이 대구시장 또는 경북지사, 김두관 전 장관이 경남지사, 문재인 전 실장이 부산시장으로 출마해야 한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나오는 것은 결국, 이들의 복당이 성사될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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