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이룬 DJ의‘노무현 구상’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9.07.0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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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전직 대통령의 공동 시국 선언 추진한 정황 드러나

▲ 5월28일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가 서울역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를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 몸의 절반이 무너져 내린 느낌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비통함을 감추지 못한 채 오열했다. 지난 5월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 휠체어에 탄 채 불편한 몸을 이끌고 헌화를 마친 김 전 대통령은 유족과 마주하자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군사정권 시절 사형선고를 받고도 최고 권력자와 당당히 맞섰던 김 전 대통령의 눈물에는, 과거는 물론 미래를 함께하고자 했던 동지를 잃은 슬픔이 깊게 배어났다.

김 전 대통령은 정권 교체와 재창출을 함께 일구어낸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모종의 공동 작업을 구상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동교동의 한관계자는 “DJ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에 공동 선언 등을 구상했던 것은 맞다”라고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박지원 민주당 의원도 “시국 선언 의중을 가지고 계셨다”라고 말했다. DJ가 노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서거하자 “날개 한쪽을 잃은 것 같다”라며 비통해 한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이제 늙고 병든 몸으로 혼자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DJ가 구체적으로 어떤 구상을 세웠던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주변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두 전직 대통령의 공통 관심사인 영·호남 간 동서화합, 남북 문제 등이 주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통령은 그동안 민주 진영의 통합을 강조해왔다. 그 틀 속에서 친노(친노무현) 그룹의 역할을 기대했다고 한다. 정권이 바뀌면서 제기되고 있는 남북 관계와 민주주의 위기 등에 관한 구상도 포함되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DJ를 잘 아는 한 인사는 “김 전 대통령이 이러한 구상을 하게 된 배경에는 민주주의와 서민 경제, 그리고 남북 관계가 위기에 처했다고 인식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 전 대통령은 서거 정국 이후에도 이문제들과 관련해 이명박 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박연차 사건 등 상황 좋지 않아 실행 못해

하지만 ‘공동 선언’ 구상이 매끄럽게 진행되 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의 한 측근 인사는 “실행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사건 등에 묶여 있는 상황이었다. DJ의 구상이 봉하마을에 전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전했다. 강도 높은 검찰 수사로 인해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두 전직 대통령을 둘러싼 세력 간에 형성되어온 미묘한 갈등도 논의를 진행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가운데 예상치 못했던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구상 자체가 물거품이 되고만 셈이다. 박지원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지 않았다면 두 전직 대통령이 함께 할 일이 많았을 것으로 보느냐”라는 물음에 “그랬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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