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 이어지게 ‘법’도 만든다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09.07.2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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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세나협의회, 해마다 줄어든 기업 지원에 한숨…특별법 제정 추진으로 돌파구 마련해

▲ 포스코센터음악회는 인터넷을 통해 좌석권 신청을 받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포스코 제공

최근 문화계 화두 중 하나는 지난해 금융 위기 이후 경기가 급강하하면서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기업들의 지원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걱정이다. 지난주 메세나협의회가 공개한 자료에는 이런 걱정이 단순한 기우만은 아니라는 것이 나와 있다. 지난해 국내 매출액 상위 5백대 기업과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원사 등 총 6백29개사가 문화예술 활동에 지원한 금액은 1천6백59억8천만원으로 지난 2007년 1천8백77억3천만원보다 11.5%가 줄었다. 지난 2003년 이후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금이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는 흐름이었으나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 일거에 두자릿수의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 일하는 현장으로 찾아가는 행복엔진 콘서트.

하지만 상황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메세나협의회에서는 중소기업도 가세하는 등 오히려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 예술 지원 매칭 펀드의 경우 올해 예산을 잡아놓은 것이 4월 말에 신청이 마감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매칭 펀드는 중소기업이 10을 내놓으면 정부에서 10을 더해 중소기업이 지정한 예술 단체에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2007~ 08년까지 성도GL이 헤이리 오케스트라와 맺어지는 등 총 68커플이 결연을 맺고 25억여 원이 지원되었다. 최근 메세나협의회 회장에 재선임된 이건산업 박영주 회장은 “이런 사업은 정부에서 과감하게 예산을 늘려 도와줬으면 한다. 문화부장관에게도 건의했다”라고 밝혔다. 박회장은 “가을 정기 국회 때 메세나특별법이 제정되어 문화예술계에 대한 기업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가능해지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메세나협의회에서는 문화예술계 지원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으로 ‘메세나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매칭 펀드가 중기적 처방이라면 특별법은 장기적이고 근본적 처방이라는 것이다. 메세나협의회에서는 과거의 메세나 활동이 기업의 자선적 관점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면, 최근에는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한 전략적 사회 공헌 개념으로 진화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문화 경영’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에서 세제 지원책을 마련해 주기만 하면 정부 예산을 따로 들이지 않고도 문화예술계를 지원해 주고 기업 경영 활동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메세나협의회의 주장이다.

메세나협의회에서는 메세나특별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이미 공청회도 가졌다. 메세나특별법의 모델은 프랑스이다. 프랑스에서는 기업 매출액의 0.5% 한도 내에서 지원금의 60%까지 세액을 공제해 준다. 메세나협의회에서는 메세나특별법에 프랑스처럼 예술 기부 금의 세액 공제, 개인의 경우 10만원 한도 내에서 기부 금액의 90% 이상을 세액 공제, 문화예술 비영리 법인에 대한 지방세 감면, 기업의 문화예술을 활용한 교육 훈련비에 대한 세액 공제 등을 담으려고 하고 있다.

불경기로 세수가 줄어든 것이 정부의 부담이 된다면 일단 법 제정부터 하고 시행 시기는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 메세나협의회의 입장이다. 메세나협의회에서는 특별법이 제정되면 세수 감소분보다 최소한 두 배 이상의 정책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지원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메세나는 문화예술뿐 아니라 과학이나 스포츠 분야에 대한 기업의 지원 활동도 포함된다. 스포츠 분야 중 최근 들어 생활 스포츠로 뿌리를 내려가고 있는 골프 분야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이 눈에 띈다. 

세계적인 골프용품업체인 던롭 스릭슨은 7월부터 한국 중·고등학교 골프연맹에 소속된 주니어 골퍼를 대상으로 스릭슨 볼 Z-STAR, Z-STAR(X)를 50% 할인가로 판매한다. 던롭 마케팅팀 김세훈 팀장은 “최고의 기량과 성적으로 최고의 골퍼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니어 선수들을 위한 후원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앞으로도 다양한 후원 활동을 통해 응원하겠다”라고 밝혔다.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스크린 골프업체 골프존도 골프 관련 메세나 활동에 나서고 있다. 골프존은 ‘골프 꿈나무 육성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남양주 수동초등학교 박소혜 학생과 대전체육고등학교 김진호 학생에게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 여에 걸쳐 1억5천여 만원의 후원금을 지원하고 있다. 또, 남극 세종기지에 한국 대원들을 위해 골프존 시뮬레이터를 기증하기도 했다. 그동안 남극에서 체육 활동은 탁구와 헬스가 전부였지만, 지난 1월 골프존 설치 이후 날씨와 관계없이 실내에서 골프를 즐기는 것이 가능해졌다.

 


ⓒ시사저널 임영무
박영주 메세나협의회 회장 인터뷰

최근 메세나협의회 8대 회장으로 재선임된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68)을 만났다. 지난 1978년 이건산업 대표에 취임한 그는 20년 전부터 국내 중소기업에서는 유례가 없던 ‘이건음악회’를 시작해 20년째 계속해 오고 있다. 2005년에는 세계적인 메세나 인사에게 수여하는 ‘몽블랑 예술후원자상’을 받았다.

앞으로 중점 사업은.

 ‘메세나특별법’ 제정이다. 프랑스의 메세나특별법이 모델이다. 금년 내에 특별법을 통과시켜 기업뿐 아니라 개인도 메세나 지원이 가능하고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문화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메세나특별법 같은 제도적 장치가 꼭 필요하다.

경제가 어려워 민간 차원의 지원 활동이 위축되는 것 아닌가.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중소기업 매칭펀드만 해도 누가 할까 걱정했는데, 서로 하겠다고 나서는 데가 많았다. 이런 사업은 정부에서 과감하게 예산을 늘려 도와줬으면 한다. 

한국은 왜 개인 기부가 드문가.

국내 기업의 역사는 보통 30~40년이다. 기업 규모가 지난 20년 동안 엄청나게 커졌다. 급작스레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오너에게는 경영권 유지 자체가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다. 주가도 뛰고 증자 규모도 커지다 보니. 이런 성장 속도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개인 기부가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다.

어릴 때 받은 예술적 감동이 평생을 간다. 선친 덕에 어려서부터 피아노 교육을 받았고, 어릴 적에 가야금 명인(강태홍)이 선친의 초청으로 집에 머물며 가야금 선율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런 기회를 어린이들에게 되돌려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연장에는 자주 가나.

골프장보다 더 많이 간다. 일요일이면 굴다의 피아노 연주를 즐겨 듣는다. 공연도 자주 보러 간다. 현대 무용 공연을 보러 가면 젊은 층과 여성들만 많아서 로비에 나오면 좀 어색하다. 그래도 내가 장년층 대표 관객이려니 하고 버틴다.(웃음)

 


소비자와 ‘문화’ 함께 나눈다

리움미술관이나 LG아트센터는 문화에서 대기업의 후원이 얼마나 좋은 성과를 맺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삼성과 LG라는 대기업의 절대적인 후원에 힘입어 이 두 공간은 양과 질에서 우리나라 미술계와 공연계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또,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음악계 영재 발굴에 큰 역할을 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지원이 소홀했던 무용과 국악 분야에는 CJ그룹과 크라운해태제과그룹의 문화 키움 활동이 돋보인다.  
  문화 나눔 분야에서도 현대차그룹이나 포스코, 한화그룹 등이 더 많은 사람이 문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고 있다. 포스코의 경우 자체적으로 여섯 개의 공연장을 시민과 근로자, 학생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특히 1999년부터 매달 서울포스코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포스코센터음악회는 클래식부터 국악, 록, 트로트, 발라드까지 다양한 음악인이 등장하는데 매번 1천2백석 규모의 좌석이 꽉꽉 찰 정도로 반응이 좋다. 문화 시설이 부족한 포항과 광양에 포스코가 세운 효자아트홀과 백운아트홀은, 포스코가 주도하는 포항의 국제불빛축제와 광양의 난장국악축제와 더불어 기업이 지역 사회의 문화 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이다. 포스코는 문화계 인재 키우기도 특색 있게 진행하고 있다. 스틸아트공모전이 그 예이다. 지난 2006년부터 시행된 이 상은 철을 주제로 하거나 소재로 다룬 모든 미술 작품에 열려 있다. 공모전을 통과한 20명에게 작품 제작비 3백만원을 지급하는 등 지원 조건이 좋아 미술계 신진 작가들의 관심이 뜨겁다. 삼성물산이 벌이고 있는 혼혈아동 지원 사업이나 무궁화 사랑 운동은 메세나 운동의 또 다른 면이다. 삼성물산은 펄벅재단과 함께 소외 계층인 혼혈아동의 여름캠프를 지원하고 자원봉사자를 파견해 공연장이나 미술관 체험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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