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인사’는 그만, 대통령의 인사 철학 먼저 챙겨라
  •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
  • 승인 2009.07.2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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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근 선호하는 권력 논리, 자기편 허물 덮어주는 연고주의 문화가 문제…인사 추천과 검증 체제 분리해 객관성 유지해야

▲ 김윤태 (고려대 교수 · 사회학)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 했던가?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사퇴로 나라가 떠들썩하다. 인사가 망사(亡事)가 되었다. 청와대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 건설업자 스폰서에게 15억원을 빌린 천후보자의 비리 의혹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내건 ‘친서민’ ‘중도 강화론’도 큰 타격을 입었다. 사실 천성관 후보자와 백용호 국세청장의 지명은 출발부터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천후보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 가까운 사이이고, 백청장은 소망교회 출신이라는 지적 때문에 다시 ‘측근 인사’ 시비가 도마에 올랐다. 이미 정권 초기부터 ‘강부자’ ‘고소영’ 내각이라는 지적은 측근만 중용하는 협량한 인사를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다. 이로 인해 이명박 정부의 신뢰도가 급속하게 추락했다. 심지어 정부 출범 초기에 인사청문회에서 “땅을 사랑했다” “남편이 선물로 오피스텔을 사주었다”라고 말하는 장관 후보자의 모습은 국민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세금 탈루 의혹으로 많은 인물이 중간에 탈락하자 “이 정부에는 사람이 그렇게 없나?”라는 말이 나왔다.

이명박 정부의 위기는 사실 인사의 실패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도덕적 기준이 국민의 기준에 너무 미치지 못하는 인물을 내각에 임명하면 정부의 권위가 실추될 뿐 아니라 정책의 추진력도 사라진다. 그래서 내각의 임명은 고도의 정치 행위이다. 고위 공직자의 검증이 엄격하기로 유명한 미국은 헌법과 제도적 장치에 따른 인사 검증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1960년대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백악관에 인사국을 설치한 이래 엄격한 인사 검증 작업을 추진해 왔다. 미국에서 인사청문회 대상은 행정부의 경우 차관보급 이상 정무직을 포함해 각종 정부위원회 위원장, 각국 대사, 군 장성 등 5천여 명에 달한다. 대부분의 대통령 후보는 취임 5개월 전부터 인수위와 함께 인사팀을 가동한다. 또한, 추천과 검증이 분리되어 공정성을 유지한다. 일단 추천을 받은 사람은 경력, 세금 납부, 재정 상태 등 자신의 신상에 대해 직접 기술해야 한다. 오바마 행정부의 인사 검증 항목은 7쪽 분량에 63개 항목을 적어낸다고 한다. 그 다음 백악관 인사 책임자가 직접 각료 후보자를 만나 후보자의 신상에 대해 샅샅이 캐묻는 절차가 기다린다. 다른 한편으로 국가 기관의 철저한 인사 검증이 작동한다. 연방수사국(FBI)은 신원 조회, 국세청은 세무 조사,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윤리강령 위반 등을 철저하게 조사한다. 연방수사국은 마약 복용, 교통규칙 위반, 범칙금 납부 등 2백개가 넘는 사안을 확인한다. 서로 다른 국가 기관들의 조사 과정 결과는 상호 검증하는 경쟁 체제를 유지한다. 이렇게 검증을 거친 복수의 후보자들 가운데 대통령이 인종, 성별, 지역 안배 등도 중요하게 고려해 지명을 한다. 백악관의 검증 절차 다음으로 의회의 인사 자료 열람, 언론의 검증, 의회 청문회 의결 등 3단계 인사 검증 과정을 더 거쳐야만 최종적으로 각료 임명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엄격한 인사 검증을 뚫고(?) 부적격한 인물이 내정되는 경우도 있었다.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국토안전부장관에 지명된 버나드 케릭은 1주일 만에 사퇴했다. 뉴욕경찰청장을 지냈던 케릭이 불법 이민자를 유모로 고용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국가 기관의 인물 검증이 끝나기도 전에 부시 대통령은 케릭을 “우리 편이다”라고 말하면서 인사 검증의 칼끝이 무뎌졌다는 지적이다. 오바마 정부 출범 때에도 톰 대슐 보건장관 지명자가 낙마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민주당 원내대표 톰 대슐을 의료 개혁의 적임자로 점찍어 뒀다. 톰 대슐이 보건장관으로 지명을 받은 후에야 세금 미납 사실이 알려졌고, 백악관은 이를 무시하고 지명을 강행했다가 결국, 여론의 압력에 굴복했다. 각료 지명은 인사 검증을 철저히 거친 다음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청와대에 인사국 설치하고 사전 검증 기간도 충분히 가져야

▲ 7월13일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민주화 이후 한국의 인사 검증 체제도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각 중앙부처 장관 외에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 4명의 권력 기관 수장이 주요 대상이다. 국회에서 인사청문회가 실시된 이래 청와대 인사 검증의 중요성이 커졌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인사 검증을 주로 담당한다. 하지만 제도적 장치가 능사는 아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청와대에 인사수석실을 설치하고 인터넷 추천 제도까지 도입했지만 김병준 교육부총리 파문처럼 부실하게 인사를 검증한 사례는 많았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는 인사 검증 기간이 짧아 제대로 이루어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3일 만에 30명을 검증했다는 말도 있다. 이러니 주민등록만 확인해도 알 수 있는 일을 그대로 지나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왜 이명박 정부에서 불충분한 인사 검증이 속출하는 것일까? 한국의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 정무직 공무원은 1백10여 명에 불과한데도 부실 검증은 그치지 않고 있다. 많은 전문가는 인사 검증 체제의 보완을 지적한다. 하지만 인사 검증 체제보다 대통령의 인사 철학이 더 중요하다. 특히 측근을 선호하는 권력의 논리와 자기편의 허물을 덮어주는 연고주의 문화가 문제로 지적된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측근을 낙점해 내각에 임명하는 인사 추천 방식은 인사 검증 체제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대통령이 지명한 인물은 ‘우리 사람’이라는 그룹 씽크(group think)에 휩싸여 제대로 인사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의 남자’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거의 반역에 가까운 일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고위 공직 후보자를 검증하는 기준이 일반 국민의 도덕적 기대보다 낮다면 큰 문제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라는 식으로 도덕성 문제를 소홀히 했다가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의 허물을 지적하기 꺼려하는 한국 문화에서 제대로 된 인사 검증이 소홀해지기 쉽다. 청와대의 부실한 인사 검증을 바로잡기 위한 제도적 보완도 시급하다. 첫째, 검증된 각계 인재의 객관적 신상명세를 확보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수만 명의 온라인 인재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백악관에서 활용한다. 둘째, 충분한 인사 검증 기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각료 교체가 잦더라도 3일 만에 후보자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다. 최소한 한 달 이상 사전 검증을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면 오히려 ‘깜짝 인사’를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셋째, 추천과 검증을 분리하여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비서실장과 권력 실세가 인사 추천의 전권을 행사하면 편중 인사, 정실 인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백악관처럼 청와대도 인사국을 설치해 인재 선택과 검증 절차를 담당해야 한다.

위와 같은 사항을 포함해 국회는 고위 공직자 인사 검증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인사 검증 절차를 복잡하고 어렵게 만든다면 대통령의 인사도 더욱 신중해질 수 있을 것이다. 고위공직자의 임명은 국가의 대사(大事)이다. 청와대는 철저히 능력, 소명감, 도덕성을 고려해 고위 공직자를 내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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